“장애인들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 인식개선이 시급해요. 예산을 아무리 쏟아 붇는다 하더라도 우리사회에 남아있는 차별과 편견의 시선이 있는 한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가장 중요한건 사회 환경과 인식의 변화가 선행돼야 하고 공급자 중심이 아닌 수요자 중심의 장애인 복지 정책이 밑받침돼야 장애인 복지가 올바르게 설수 있다고 봐요.”

 

한국지체장애인협회를 맡고 있는 김광환 중앙회장(63)은 지난 32년 동안 장애인 복지의 전반적인 정책과 제도개선에 앞장섰고 누구나 차별 없는 진정한 사회통합을 구현하기 위해 줄곧 한 길을 걸어왔다. 한국지체장애인협회(지장협)는 17개 시도협회와 230개 시군구지회, 46만명의 회원이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국내 최대 장애인당사자 단체일 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최고의 자조조직(self-help organization)으로 손꼽힌다고 김 회장은 설명했다.

 

김 회장은 무엇보다 지장협이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사에 길이 남을 가장 큰 업적을 세운 점은 장애인의 사회참여와 인식개선에 앞장서는 선구자적 사명을 수행한 것이라고 자부한다. 그는 중증 장애인의 경우 시설에 수용되거나 시설에 거주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던 사회의 편견과 통념을 지장협이 일거에 무너뜨린 역할을 감당했다고 덧붙였다.

 

 

지장협은 장애인에 대한 사회인식개선, 사회참여확대, 권익 및 자립을 도모하여 장애인의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1986년 창립됐다. 지장협은 장애인에게 희망의 동반자로서 사회변화의 주역이 되어 국가발전에 기여한다는 미션을 품고 활동해왔다.

 

서울 영등포구에 자리한 지장협 사무실에 들어서자 김 회장이 따뜻하게 기자 일행을 맞아줬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불편한 기색 없이 겸허한 태도와 어투, 자세 등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몸에 밴 듯 했다. 몸은 다소 남들보다 불편할 수 있으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마인드에서 솟아나는 에너지는 그와 마주한 사람의 마음에도 전달되는 듯 했다. 김 회장은 어렸을 때 장애를 얻은 이야기와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이 자리까지 우뚝 설 수 있었던 과정을 차분하게 풀어나갔다.

 

“3살 때 갑작스러운 소아마비에 걸려 장애를 갖게 됐어요.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제가 몸이 불편하니 금은방을 차려주시겠다며 금은세공 기술을 배우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공무원이시던 아버지는 항상 공부를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면서 4년제 대학은 반드시 나와야 한다고 강조하셨어요. 제가 선택한 진로는 사실상 아버지의 영향력이 컸다고 봐요.”

김 회장은 대학졸업 후에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학부 졸업 후 취업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 당시엔 장애인들에게 취업이란 가장 큰 난제로 여겨졌죠. 그러던 1990년 우연히 용산구 남영동을 지나가다가 ‘한국지체장애인협회’ 간판이 눈에 들어왔어요. 호기심에 안으로 들어가 상담을 하게 됐어요. 그곳에서 협회 설립자이신 故장기철 회장님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회장님께서도 저처럼 몸이 불편하셨거든요."

 

“그런 일이 있은 후 장 회장님이 제게 같이 일해 보자면서 매일 전화가 왔어요. 사실 그때 만 해도 저는 교사가 되는 게 꿈이었죠. 교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대학을 갔지 장애인 단체에서 근무하려고 공부를 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 때문에 선뜻 대답을 못하고 망설였죠. 결국 거듭된 회장님의 제안을 수락해 지장협에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2018년 5월 기준으로 장애 인구의 경제활동 참가율과 고용률은 각각 37.0%, 34.5%로 전체 인구에 비해 절반 정도 낮은 상태를 보이며 우리 사회에 아직까지 장애인 차별이 만연하다는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김 대표는 인터뷰 도중 통계자료를 보여주면서 이러한 장애인들의 자립 현실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취업문제와 자영업 등 장애인들이 생활고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아요. 이러한 문제를 급우선적으로 풀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죠. 장애인이 자립을 해야 사회구성원으로서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잖아요. 정부에서 장애인 의무고용제를 운영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기업들이 기준에 미달돼요. 장애인 고용확대 및 인식개선과 장애인근로자를 위한 제도개선 마련이 시급히 필요한 시점이에요.”

 

김 회장은 장애인이 느끼는 절망감에는 1980년대 이전에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식 속에 은연 중 장애인에 대한 엄청난 편견과 차별이 도사리고 있었던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을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이러한 어려움을 불행으로 보지 말고 하나의 기회로 삼으라고 조언했다.

 

“장애를 자기 인생의 비극이나 불행으로만 보지 말고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도전의 기회로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삶의 전기가 됐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인생을 적극적으로 바꿔나가는 계기로 삼기를 바라는 마음이죠. 몰론 장애 때문에 또 다른 아픔을 겪어야 하는 경우도 많이 있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아픈 것은 아니에요. 가장 중요한건 허황된 것으로 보일 수 있는 꿈을 현실로 만들어 가겠다는 의지예요. 저의 경우에는 소아마비가 한쪽 다리에 심하게 왔고 청년시절 다리를 심하게 절기는 했지만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다니며 조직을 결성하는데 일조했죠. 그 당시에는 승용차는 물론 차비도 없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애를 갖게 된 후 절망감을 느끼며 외부활동에 대한 두려움과 소극적 태도를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자신과의 내적 싸움의 진통과 비우호적인 외부환경은 부정적 사고와 비판적 의식을 심화시키고 현실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갖게 되는 것이 다반사다. 김 회장은 이런 경우 장애인 스스로 사회적 역할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애인 스스로 노력해서 나름의 정신문화를 바꿔 나가는 것이 중요해요. 예를 들어 내가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에 무슨 역할을 하며 어떤 의미가 될 것인가를 생각하는 마인드가 중요해요. 저는 직원들과 회의시간에 늘 ‘우리 단체가 새로운 장애인 정신문화를 창출하는 협회가 되자’고 강조해요. 장애인이라고 해서 좌절하고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사회에 나와 사회변화의 주역이 되고 자립하겠다는 의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봐요.”

 

장애인단체가 탄생하기 이전에는 자신만의 불행으로 생각하고 장애를 숙명처럼 받아들여 배타적이고 편협한 의식이 고착화된 장애인들이 많았다. 누구나가 장애를 입으면 한번쯤은 떠올렸을 법한 생각이지만 자신의 운명이 혹시 저주받은 운명이 아닌가라는 비관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비장애인도 혹 있을 수 있는 잠재적 장애인이라는 인식에 미치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는 쉽게 무너진다. 김 회장은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모색하는 일에는 장애인·비장애인 구분이 무의미하다고 강조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장애의 유무가 있을 뿐 다른 것은 없어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고 장애인 당사자가 의지를 모으고 단결된 목소리를 내어 사회를 변화시키고 이를 선도한다면 누구나 차별 없는 진정한 사회통합을 구현할 날이 올 거라고 믿어요. 앞으로 저희 단체는 장애인들을 위한 권익증진에 앞장서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고 결실을 맺어 장애인 복지 전체의 발전을 선도할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