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주름잡던 왕년의 가전왕국 일본이 참 초라하다. 그 자리를 꿰차고 들어간 한국의 삼성과 LG는 가전의 계보와 세계사를 다시 썼다. 글로벌 경제불황, 국내 정치적 외풍, 코로나 등이 겹겹이 몰아친 위기 상황에서 양대 가전기업의 국산 TV는 지난 1분기 전 세계 시장 절반을 넘게 석권하는 쾌거를 올렸다.

 

한국기업이 51.1%의 점유율로 사상 첫 과반의 헤게모니를 잡은 반면 무리한 황새걸음으로 추격해 온 중국은 그 절반도 안 되는 21.2%에서 가뿐 호흡을 멈췄다. 그로기 상태로 기진맥진하고 있는 일본은 14.3%로 존재감을 간신히 드러냈을 뿐이다. 개별기업만 봐도 삼성이 32.4%, LG가 18.7%를 장악한 반면 일본 가전의 자존심이자 간판인 소니는 7.1%로 체면치레만 근근이 했다. 무려 14년간 세계 1등의 자리를 지켜온 삼성의 TV는 마치 무적이다.

 

소비자 호감도가 높은 75인치 이상 대형TV는 삼성 하나만으로 50.4%를 찍으며 경쟁국 중국과 과거의 가전대국 일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LG까지 합하면 글로벌 소비자들은 대형 TV 3대중 두 대를 통해 동방의 소국 ‘KOREA’를 안방에서 만난다. 대륙의 역사가 불러 온 조용한 아침의 나라다. 하지만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는 권력의 핍박에서 삼성과 LG는 정경유착, 유신, 재벌 등의 역사적 낙인으로 늘 숨쉬기 힘들다. 쇠사슬 같은 죄의식에 묶인 채 수출 최전선에서 늘 싸운다.

 

‘TV KOREA’는 인종차별과 무명이라는 혹독한 무시를 이겨낸 인고의 맷집이자 피눈물의 보답이다. 지난해부터 와르르 무너지는 수출 컨테이너들을 다시 불러 모으는 기폭제 역할까지 한다. 올 들어 총 수출이 급감하면서 5월 들어 10일까지 참담할 만큼 최악이었다. 전년 동기 대비 무려 절반 가까운 46.3% 급락했다. ‘TV 낭보’는 마치 이 같은 수출무덤에서 들려오는 부활의 소리다.

 

수출은 그래서 우리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실제로 선진국을 자처하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가 우리에게 무릎을 꿇었고 한때 초강대국인 러시아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국토면적은 세계 107위에 불과하고 인구도 27위 수준인 나라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 중 유일하게 보여준 이해할 수 없는 괴력이다. 하지만 세계 6~7위를 유지해 왔던 한국의 수출순위는 조만간 급추락할 시그널들로 가득하다.

 

수출은 우리의 최대 전략무기다. 아무것도 없던 후발주자였기에 국가주도 규모의 경제로 불리는 대기업 전략이 아니면 승산이 제로에 가까웠던 싸움이었다. 매시매초 전쟁인 이윤창출 전선에서 한가한 탐욕이 교차하는 다수결 존중의 경제민주화가 무서운 전염병으로 위협한다. 헌법 제199조 ‘경제의 민주화’는 정치적 잣대를 접붙이면서 수출전사들을 옥죄는 전가의 보도가 됐다. 악랄한 해석이 계속되면 세계인의 TV KOREA는 멀지 않아 일본과 소니의 전철을 피하지 못한다. [스카이데일리 논설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