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의 3기 신도시 추진에 대한 반발 여론이 예사롭지 않다. 이미 대규모 주택 단지가 속속 들어서고 있는 고양시의 경우 반발의 목소리가 특히 거세다. 기존 1기신도시는 물론 이제 막 입주가 시작된 고양 삼송·원흥 지역까지 시세 하락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어서다. 이들 지역에 비해 서울과 가까운 곳에 대규모 주택단지를 품은 3기 신도시가 조성된다면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다는 게 고양시민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경기도 고양시에 자리한 일산신도시는 지난 1989년에 계획이 발표되고 1992년부터 입주를 시작한 1기 신도시다. 한 때 뛰어난 자연경관과 우수한 주거환경으로 높은 인기를 누렸으나 서울과 다소 떨어져 있는데다 인구증가로 교통체증까지 겹치면서 점차 쇠퇴하고 있다.

 

건물의 노후화도 심각하다. 일산의 아파트들은 대부분 당초부터 상한에 가까운 용적률로 건축돼 재건축을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 그동안 용적률을 상향해달라는 요구가 끊이지 않았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일산과 서울 사이에 위치한 고양 삼송·원흥 지역에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서 서울에 더 가까운 새 집으로 이주하는 사람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대부분 일산에 살던 사람들이었다. 삼송지구 내 부동산 관계자들은 서울에서 투자를 목적으로 문의가 오는 경우보다 실거주 목적을 위해 일산에서 넘어오려는 경우가 월등히 많았다고 입을 모았다.

 

삼송지구 내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곽진영 대표는 “입주 초반엔 서울에서 갭투자를 목적으로 오는 문의가 많았지만 요즘엔 경기도 등에 거주하는 신혼부부가 많다”고 설명했다. 삼송지구 로얄듀크아파트 인근 L부동산 관계자는 “대단지아파트뿐만 아니라 전원주택에 대한 문의도 많이 들어오는 편인데 주로 일산에서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삼송·원흥으로 이주하는 인구가 늘면서 기존 일산신도시에선 상가 공실이 눈에 띄게 증가하는 추세다. 일산동구 장항동에서 의류소매업을 하는 이다영(39·여) 씨는 “최근 코로나로 인해서 어려워진 것도 있지만 1~2년 전부터 꾸준히 공실이 늘어나는 추세였다”며 “매출은 말할 것도 없이 떨어져 보증금도 건지지 못하고 떠나는 상인도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 기존 일산구도심과 삼송·원흥은 거래·시세 등에서 현격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한국감정원의 통계에 따르면 2011년에는 고양시 아파트 거래량 중 삼송·원흥이 위치한 덕양구의 거래량은 4910건으로 구도심인 일산동구(7361), 일산서구(7026건) 등에 비해 적었다.

 

그러나 삼송지구 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된 2012년을 기점으로 덕양구가 거래량에서 일산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삼송지구 대부분 단지의 입주가 완료된 2017년 덕양구 아파트 거래량은 1만5535건으로 고양시 전체 거래량의 절반을 넘게 차지했다.

 

덕양구는 아파트 거래량뿐 아니라 시세도 상승세를 기록 중이다. 부동산 정보제공업체 경제만랩에 따르면 지난해 1월 일산동구·일산서구·덕양구의 3.3㎡당 아파트 평균매매가격은 각각 1368.6만원·1277.9만원·1322.6만원으로 일산동구가 고양시에서 아파트 가격이 가장 높았다. 하지만 지난달엔 덕양구가 3.3㎡당 1377.5만원을 기록하며 고양시 1위를 차지했다.

 

개별 아파트 시세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고양시 일산동구 식사동 소재 위시티블루밍5단지 123.23㎡는 지난해 1월 5억4000만원에 거래됐고 지난달에는 6000만원이 오른 6억원에 주인이 바뀌었다. 반면 고양시 덕양구 삼송동 소재 삼송2차아이파크 84.749㎡는 지난해 4월 6억1500만원에 거래됐으나 1년이 지난달엔 1억6500만원이 오른 7억8000만원에 거래됐다.

 

삼송·원흥 지역은 인구가 몰리면서 부동산 시세가 오름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곳 주민들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하다. 삼송·원흥과 서울 사이에서 3기 신도시인 창릉신도시 개발이 확정되면서 기존 일산구도심과 같은 처지에 내몰릴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어서다.

 

삼송지구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이명기(58) 씨는 정부의 주택공급정책에 불만을 제기했다. 그는 “삼송지구는 병원이나 마트가 들어와야 할 자리에 오피스텔이 들어서면서 주거시설만 가득한 베드타운으로 변모하고 있다”며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도시계획을 애초에 잘못한 탓인데 이런 상황에서 창릉신도시가 개발되면 결국 이곳도 일산구도심과 같은 처지에 내몰릴 것이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기존 지역의 슬럼화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의 규제 완화를 통한 재개발·재건축가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협회 회장(경인여대 교수)는 “대부분의 1기 신도시들은 20년이 지나고 부흥기를 지나 쇠퇴가 시작되는 시점에 다다랐다”며 “일산은 건물의 노후화가 가장 큰 문제인 만큼 정부가 리모델링이나 재건축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창릉신도시가 불러올 효과에 대해서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지만 삼송의 선례를 봤을 때 창릉에 신규주택이 공급된다면 경기도 타 지역은 물론 기존 원흥·삼송에서의 이주수요가 몰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일산 등 오래된 도시는 도시의 노후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만큼 재개발·재건축 등의 대처가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엄도현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