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저에게 일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항상 가슴 뛰게 하는 예술이죠. 좋아하는 영화를 직업으로 삼은 것이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영화는 기쁨이나 슬픔 등 다양한 감정을 통해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매력이 있어요.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추억을 만들어주기도 하구요. 좋은 영화를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는 일은 그래서 보람도 있죠.”

 

‘노예12년’ ‘가장 따뜻한 색 블루’ ‘비긴 어게인’ ‘라라랜드’ ‘러빙 빈센트’ ‘슬럼독 밀리어네어’ ‘톰보이’ 등 웬만한 영화팬이라면 알 법한 외화들이 영화를 사랑하는 한 영화배급인의 손을 거쳐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전해졌다. 90편이 넘는 작품들을 직접 배급하고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윤정한 영화특별시SMC 대표이사(43)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영화업계에 발을 들인 지 올해로 20년째인 베테랑 영화전문가다.

 

6월 초여름 햇살이 눈부신 어느 날, 강남역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윤정한 대표는 반갑게 기자일행을 맞이했다. 그가 배급을 담당한 수많은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인터뷰 내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흥미롭고 유익했다.

 

“다음달 1일이면 제가 영화배급사인 영화특별시SMC를 설립한 지 1년이 돼요. 현재 7월9일에 개봉하는 신작 ‘소년시절의 너’ 개봉 준비에 집중하고 있어요. 한 영화가 어떤 사람에게는 인생영화가 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영화 한 편을 선정할 때 많은 고민을 하죠. ‘굿 윌 헌팅’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예전에 저희 이모님이 보시고 좋은 영화가 있으니까 한 번 보라고 권하셔서 보게 됐어요. 지금까지도 다시 봐도 좋은 영화여서 저에게는 인생영화이기도 하죠.”

 

윤 대표는 대학생 시절에는 공대생이었다. 24세에 군 제대를 한 뒤 평소에 좋아하던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어서 동대문 MMC극장(현 cgv동대문)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이 영화와의 첫 인연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영화 관람을 좋아했기 때문에 극장에서 하는 일을 즐겼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후 극장에서 슈퍼바이저, 지점 매니저를 거쳐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면서 극장의 다양한 업무를 10년 동안 담당했다고 설명했다.

 

“제가 평소에도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어서 극장에서 하는 업무가 많이 힘들지는 않았어요. 제가 근무하던 시절에는 필름상영이 많아서 영사사고가 많았죠. 저희들이 잘 수습하면서 어려운 점들을 해결했어요. 극장에서 일한 10년은 지금의 저를 있게 한 소중한 경험이었죠.”

 

이후 그는 영화 배급일을 해보고 싶어 10년간 다니던 극장을 과감히 퇴사하고 한 수입배급사에서 잠깐 근무하다가 2012년부터 유명 수입배급사인 판씨네마로 옮겨가 8년간 80~90편의 작품을 배급하고 홍보하는 일을 하게 됐다. 그곳에서 배급팀장을 맡기도 했는데 그는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비긴 어게인’ ‘라라랜드’ ‘노예12년’을 꼽았다.

  

‘비긴어게인’ ‘라라랜드’ 성공 주역의 윤정한 대표… 영화배급사 설립 1년

 

“제가 배급을 담당했던 영화 ‘비긴 어게인’은 ‘원스’로 30만 관객을 동원한 존 카니 감독의 신작으로 많은 화제를 모았었죠. 그 당시 한국영화 대작들이 많이 개봉하는 상황이라 상영관이 적은 편이었어요. 사실 ‘가을에 개봉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도 했지만 저는 ‘여름에 음악 영화도 잘 될 수 있지 않겠느냐’라는 나름의 자신이 있었어요. 상영 초기에 어려운 점도 없지는 않았지만 갈수록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지금까지 340만명의 관객을 기록하고 있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작품이죠.”

 

윤 대표가 가장 애착이 가는 영화로 꼽은 작품은 아카데미 6개 부문을 수상한 뮤지컬 영화인 ‘라라랜드’이다. 이 작품은 2016년 12월에 개봉하며 360만명을 동원하며 괜찮은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아쉽게 1위를 못 했으나 올해 3월 재개봉하면서 박스오피스1위를 차지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제가 배급한 작품인 ‘라라랜드’는 영화시장 성수기인 12월 개봉이라 블록버스터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고 그래서 2016년에 IMAX로 개봉을 했어요. 흥행에 대해서는 잘 될 거라는 확신은 가지고 있었죠. 감독의 전작인 ‘위플래쉬’가 국내에서 흥행하기도 했고 엠마 스톤과 라이언 고슬링 등 배우들도 좋았구요. 특히 아름다운 영상미와 영화에 나오는 음악들이 정말 좋았어요.”

 

윤 대표가 배급했던 작품 중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소재로 한 세계 최초 유화애니메이션 작품인 ‘러빙 빈센트’는 작품의 예술성으로 승부를 본 작품이다. 윤 대표는 당시 흥행에 대한 큰 기대는 하지 않고 관객수는 5만명 정도 예상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이 영화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접근해 마케팅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고 그 점이 잘 통하면서 40만명이 넘는 놀라운 흥행성적을 거뒀다고 설명했다.

 

물론 아쉬움이 남는 작품들도 있었다. ‘서칭 포 슈가맨’은 열심히 홍보한 작품이었지만 예상 외로 흥행 성적이 저조했고, 2017년 여름 개봉한 뤽 베송 감독 연출의 SF액션블록버스터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 역시 감독이 내한하는 등 홍보에 힘썼으나 아쉽게 관객 수 51만명에 그쳤다고 윤 대표는 설명했다.

 

2019년 5월 애니메이션 영화 ‘어글리 돌’ 이후 정들었던 판씨네마를 퇴사하고 자신만의 새로운 꿈과 도전을 위해서 같은 해 7월에 지금의 배급사를 설립한 윤 대표는 ‘영화특별시SMC’이라는 독특한 회사명에 대해 설명했다.

 

“제가 설립한 회사인 영화특별시SMC는 사람들이 봤을 때 기억에 남는 회사명을 지어보고 싶었죠. 우선 좋은 영화를 선별해서 관객에 소개하겠다는 의도로 영화특별시라고 지었고 글로벌 시대에 맞춰서 SMC(Special Movie City)라는 약자를 뒤에 붙여서 만들었어요.”

 

윤대표가 생각하는 최고의 영화 마케팅은 ‘남들이 하는 일을 하지 않고 나만의 색깔을 찾자’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준비하는 영화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재미가 있어서 흥행성이 높은 영화도 좋지만 대중의 기호에는 맞지 않더라도 작품성이 좋은 작품도 많이 소개하고 싶다고 밝혔다.

 

“올해 제가 배급한 영화 중에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있어요. 이 영화가 개봉할 당시 저는 극장에서 일하고 있었죠. 그때 꽤 인상깊게 와 닿았던 작품인데 우연한 기회로 저희가 배급을 맡게 됐어요. 코로나로 힘든 시기이긴 하지만 아카데미 수상 작품처럼 좋은 영화를 재개봉해서 개봉 당시에 못 본 분들이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이럴 때 영화를 배급하는 사람으로 보람을 느끼기도 하죠.”

 

영화는 다양한 렌즈를 통해 인생을 들여다 보고 또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윤 대표는 인생을 다루는 영화뿐 아니라 그 영화를 다루는 직업 역시 삶의 의미를 찾는 보람 있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의미라고 생각해요. 모든 부분에서 의미를 느끼며 일을 하려고 하거나 노력하죠. 그리고 영화업계 선배로서 후배들에게는 영화업계가 들어오기 쉽지는 않지만 들어오면 재밌는 일도 많고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으니 적극적으로 도전하라고 권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