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의미로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는 숙어도 있다. 죽고 나서야 약도 아니고 처방전이 나왔다는 뜻이다. 어떤 만병통치약이라도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 결국 같은 의미다.

 

최근 우리나라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최소한의 사회적 통제로 진정시키는데 성공하면서 세계 각국으로부터 찬사를 듣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만든 코로나19 진단키트는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한 진단시약 업체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대비 36배 이상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소식이다. ‘K방역’이라는 이름값에 어울리는 성과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방역에 성공한 이유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유력한 원인으로 꼽히는 것 중에 하나는 ‘소 잃고 외양간을 잘 고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대대적으로 감염병 대응 역량 강화를 위해 질병관리본부를 중심으로 한 시스템을 개선한 덕에 코로나19 대응에 성과를 거둔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실패를 교훈 삼아 성공을 거둔 질병관리본부의 사례와 달리 거듭된 실패에도 꿈쩍하지 않는 조직도 있다. 바로 금융감독원이다.

 

라임자산운용의 1조원대 환매 중단 사태에 이어 투자자들의 돈이 묶이는 사건이 또 다시 발생했다. 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의 환매 중단 규모는 현재 384억원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향후 최대 5000억원대로 불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탁과 판매를 맡은 관련 금융사들은 이번 사태를 사전에 막을 방법이 없었다고 호소하고 있다. 펀드 명세서까지 위조돼 관련사가 펀드 부실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화살은 감독 책임을 지고 있는 금감원으로 향하고 있다. 금감원이 지난해 사모펀드 전수조사에서 옵티머스의 사모사채 비율이 높은 점을 보고 최근까지도 모니터링 해오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사전에 막지 못한데 대한 비난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사모펀드가 보유자산을 금감원에 보고할 의무가 없는데다 코로나19로 현장 검사가 미뤄지던 중 이번 환매 중단 사태가 터졌다고 설명한다. 뒤늦게 금감원은 지난 19일부터 옵티머스에 대한 현장검사에 착수했다.

 

그동안 금감원의 전력(?)이 비난의 강도를 높이는 점도 있다. 불과 1년여 전에 채용비리와 관련된 직원 4명이 유죄 실형 선고를 받고, 5명은 자체 징계를 받았다. 몰래 서울 강남 유명 학원에서 10년 가까이 학원강사를 해온 금감원 직원도 적발돼 정직 처분을 받았다.

 

이런 채용비리와 방만한 운영으로 얼룩진 과거 때문에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해 보다 강하게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부 지정 공공기관이 되면 경영공시가 의무화되어 임직원 임금, 직원 복리후생 제도 등 경영 실태가 낱낱이 공개된다. 예산 집행, 조직 운영 등에서도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아예 금감원을 ‘반관반민’이 아닌 공무원 조직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 인사적체가 심해 ‘역피라미드’ 꼴 인력 구조를 보이고 있는 금감원에 15~20년 앞을 내다보고 순차적으로 공무원 신분의 직원으로 충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행히 23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사모펀드 1만여개를 전수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 4월 일부 사모펀드와 관련한 제도를 보완한 만큼 추가로 규제를 강화할 생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일각에서는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형사상 책임을 더 강하게 묻는 등 사후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질병관리본부의 예에서 보듯이 소 잃고 외양간을 안 고쳐서 제2, 제3의 라임 사태가 벌어지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질본의 대응이 생물학적 생명을 여럿 구했다면, 금융당국의 대응은 사회적 생명을 구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