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인국공)는 협력업체 소속 비정규직 보안검색요원을 공사가 직접 채용해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비정규직 보안검색요원은 특별한 채용 절차나 자격요건 없이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수시 채용됐던 직군이다. 아르바이트생이 한 순간에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 정규직 신분으로 거듭난 셈이다.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도 손색없는 아르바이트생의 드라마틱한 인생 역전 스토리는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서 시작됐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사흘 뒤인 2017년 5월 12일 인국공을 찾아 1호 정책인 ‘공공 부문의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 발표 장소가 인국공이었으니 당연히 정책 시행 1호 기관도 인국공이 될 것으로 점쳐졌다. 당시만 해도 정책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았다. 국민 대다수가 사회적 동의를 얻어 국민 모두가 납득할 만한 방식으로 진행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로부터 정확히 3년 1개월 만에 시쳇말로 ‘놀라 자빠질’ 방식으로 정책이 시행됐다.

 

중·고교 6년, 대학 4년에 취업 준비기간까지 최소 10년 이상을 밤잠 설쳐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공기업 명함이 대통령의 백지수표가 돼 자격을 갖추지 않은 ‘아무나’에게 뿌려졌다. 심지어 현행법에 어긋나는 제약을 없애고자 신분까지 바꿔주는 편법도 서슴지 않았다. 인국공은 보안검색 근로자를 직고용하면 특수경비원 신분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경비업법을 피하기 위해 청원경찰로 신분을 전환시키로 했다. 대통령 공약 이행을 위해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공기업이 법치주의를 비웃는 결정을 스스럼없이 내렸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국민들의 반응은 당초 예상을 크게 뛰어넘고 있다. 반발 수위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다. 무엇보다 그동안 개인적인 부분에 몰두하느라 사회 문제엔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청년들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누구도 결코 건드려서는 안 될, 청년들의 ‘역린(逆鱗)’ 을 건드렸다고 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지금의 청년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공정한 경쟁, 노력한 만큼 얻는 차등 보상을 목숨만큼 귀하게 여기며 살아온 이들이다. 타인이 노력해서 얻은 결과에 대해서는 순응하고 본인도 역시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한 세대다.

 

TV 속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의 태도만 봐도 청년세대의 가치관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낸 한 유명가수가 럭셔리하우스와 수천만원 가량의 명품, 수억원대의 외제차를 공개해도 청년세대는 보이지 않는 노력을 인정하며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노력을 통해 얻은 부나 명성은 일종의 전리품처럼 당연하게 여긴다. 전리품을 과시하는 ‘플렉스(Flex)’라는 단어까지 만들었다. 겸손을 최고의 미덕이라 여기는 기성세대가 보기엔 해괴망측하고 건방져 보이겠지만 지금의 청년세대에겐 경쟁과 노력, 차등보상이 정의고 공정이다.

 

대신 노력 없는 보상, 노력의 정도와 상관없는 천편일률적인 보상에 대해서는 상상 이상의 거부감을 드러낸다. 과격한 언어, 노골적인 비판 등도 서슴지 않는다. 때론 집단행동도 불사한다. 인국공 사태에 대해 청년세대가 보이고 있는 반응이 딱 그렇다. 청년세대는 인국공의 정규직 전환이 노력 없는 댓가, 경쟁사회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권력의 횡포라고 규정짓고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땀 흘린 만큼 보상을 얻는다는 절대 불변의 진리, 식물과 동물마저 순응하는 위대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권력의 오만함이라고까지 표현한다.

 

인국공 사태와 관련해 청년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수위 높은 비판을 쏟아내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바로 두려움 때문이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밤잠 설치며 공부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새벽이슬을 맞으며 도서관을 찾았던 노력들이 권력에 의해 부정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말이다. 노력이 무시되는 사회, 청년정신이 사라져버린 병든 사회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두려움이 강한 거부반응으로 대신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여당이 세부적인 사안을 논하며 해명하기 바쁜 인국공 사태의 진짜 본질은 바로 청년정실 말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