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의 신변이상설이 재차 고개를 들면서 국회사회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있다. 앞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잠시 사그라들었던 신변이상설은 대역을 내세웠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다시 힘이 실리고 있다.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신변이상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5일 고노 다로 일본 방위상(국방장관)은 외국특파원협회(FCCJ) 초청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건강상태가 의심스럽다”며 “건강설, 사망설 등 다수 보도가 나오는데 그 중 어느 지점일 것이다”고 밝혔다.

 

일본의 대북정보력은 현재 미국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상당 수준의 대북첩보 자산을 운용 중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민트(IMINT·영상정보) 차원에서는 2018년 6월 다네가시마우주센터에서 H2A로켓에 실어 발사한 첩보위성 ‘레이더 6호’를 가동하고 있다. 휴민트(HUMINT·인적정보) 차원에서도 북한 내부에 다수의 정보원을 확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일본 측 방위상 발언은 한동안 잠잠했던 김정은 신변이상설에 다시 불을 지폈다. 앞서 김정은은 4월 11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주재한 뒤 5월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할 때까지 약 3주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특히 북한에서 중요한 기념일로 여기는 4월 15일 김일성 출생일 관련 행사에도 불참해 신변이상설은 급속도로 확산됐다.

 

당시 태영호 미래통합당(통합당) 의원은 미국 CNN방송에 출연해 “한 가지 분명한 건 김정은이 스스로 일어서거나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이다”고 말했다. 같은 당 지성호 의원도 “99% 확신한다”며 김정은 사망설에 힘을 보탰다. 두 사람은 김정은이 비료공장 준공식에 등장하자 예측이 빗나갔다며 사과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 국에서는 김정은 신변이상설이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준공식에 나타난 김정은이 카게무샤(影武者), 즉 대역일 수 있다는 ‘대역설’이 등장해 신변이상설에 더욱 힘을 싣고 있다.

 

그동안 민주화세력, 국제사회 등 안팎으로 암살 위협에 시달리던 독재자가 대역을 둔 것으로 확인된 사례는 여럿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약 30년 동안 이라크를 철권통치한 사담 후세인 일가가 꼽힌다. 사담 후세인의 장남으로 한 때 유력한 후계자였던 우다이 후세인은 라티프 야히아라는 사람을 대역으로 뒀다.

 

야히아는 1987년 대통령궁으로 호출된 뒤 우다이의 대역을 강요받자 거부했지만 4일간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결국 우다이의 얼굴대로 성형수술을 하고 4년 동안 우다이 행세를 했다. 이 일은 2013년 6월 헐리웃 영화 ‘데블스 더블’로 각색돼 개봉되기도 했다.

 

김정은의 부친 김정일도 대역을 둔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2006년 10월 한 정보당국자는 언론에 “김정일이 자신을 닮은 배역을 두 명 활용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이 당국자에 따르면 대역들은 성형수술은 물론 행동 하나하나를 김정일과 똑같이 하도록 훈련받았다.

 

한국에도 김정일 대역이 있었다.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북한처장, 남북회담사무국 상임연구위원 등을 지낸 고(故) 김달술 씨가 주인공이다. 그는 성형수술만 하지 않았을 뿐 하루 종일 김정일처럼 생각하고 김정일처럼 행동하도록 교육받았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김 씨와 리허설을 했는데 실제 만난 김정일이 김 씨와 거의 똑같은 질문을 해 깜짝 놀랐던 일화는 익히 유명하다.

 

김정은 대역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김정일의 직계 후계자인 김정은도 자연스럽게 카게무샤를 뒀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정은의 과거 의미심장한 발언이 근거로 거론된다. 김정은은 2018년 4월 평양에서 열린 남측예술단 ‘봄이 왔다’ 공연 관람 후 “평양시민들에게 이런 선물 고맙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하겠다”고 말했는데 김정은이 김정은에게 메시지를 전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해석돼 대역 의혹이 불거져 나왔다.

 

 

 

 

김정은 신변이상 여부는 아직까지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북한의 인정, 미국의 발표 외엔 공식적인 확인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급격한 위상 제고 등 기존에 없던 이상징후가 발생하는 점은 분명하기 때문에 북한 급변사태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권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20대 국회 후반기 외교통일위원장을 지낸 윤상현 무소속 의원은 “정부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혹시 모를 북한 급변사태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 출신인 태영호 통합당 의원은 “북한 급변사태 발생 시 내부 권력투쟁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은 급작스러운 김정은 유고 시 여동생 김여정, 숙부 김평일 등에 의한 권력투쟁이 발생해 핵·탄도미사일·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에 대한 정권 통제력이 약화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1974년 2월 공표된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 즉 적화통일을 맹신하면서 외교를 불신하는 군부 내 급진파가 WMD를 확보하고 한국·미국·일본 등에 대한 선제공격 혹은 테러에 나설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과거 북한군이 정권 통제에서 벗어난 사례가 몇몇 있었다. 1995년에는 함경북도 청진시 나남구역에 주둔했던 6군단이 정치장교 주도 하에 레짐체인지(정권교체)를 목표로 쿠데타를 기도했다가 진압당한 적 있다. 앞서 1992년에는 소련 프룬제군사아카데미(현 러시아군사종합아카데미) 출신 유학파들이 사열식에서 전차포로 김일성·김정일을 암살하려 했다가 발각돼 무산되기도 했다. 모두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권력이 이양되는 과도기에 발생했다.

 

남북 공멸로 이어질 수 있는 이 같은 사태를 사전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핵과 관련된 정부 대북정책 전환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북한을 전담하는 국정원 1차장 출신인 남주홍 경기대 명예교수는 “‘북핵 문제 해결은 협상만으로는 풀기는 이미 불가능하며 어떤 형태이든 레짐체인지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주펑 난징대 교수 지적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고 강조했다.

 

[오주한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