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는 누구와의 관계인지를 설정해야 할 것 같아요. 북한 정권과의 관계인지, 아니면 북한 주민들과의 관계인지를요. 서독 정부는 항상 동독 정권을 동독 인민들로 가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삼았지 동독 정권과의 관계를 위해 펼친 정책은 없어요.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서 한국이 빠졌는데 우리의 문제인 인권에서 우리가 빠진다는 건 역사에서 있을 수 없는 참혹한 일이라고 봐요. 북한인권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건 가짜죠. 인권문제가 없는 남북관계는 있을 수 없어요.”

 

평양 출신인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52)는 탈북민이 드물던 1992년 한국에 들어왔다. 북한의 악명 높은 정치범수용소인 요덕수용소에서 사선을 뚫고 기적처럼 탈북에 성공해 한국에 정착한 이후 한양대를 졸업한 뒤 조선일보 기자·연구위원, 북한민주화위원회 부위원장, 한국자유총연맹 북한지부장 등을 역임하고 2007년 북한전략센터를 설립하는 등 북한인권 운동에 앞장선 선구자적 인물이다. 다수 지상파 시사프로그램과 종합편성채널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등에 출연하면서 대중적으로도 높은 인지도를 얻고 있다.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오로지 북한인권 한 길만 걸어온 강 대표는 특히 북한 내 정보확산을 가장 먼저 주도한 인물로도 알려진다. 2005년에는 워싱턴D.C.를 방문해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과 면담하고 북한인권 문제를 국제적으로 공론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런 강 대표가 생각하는 남북관계 해법은 무엇일까. 스카이데일리는 강 대표와의 만남을 위해 7월의 어느 날 오후 수도권 모처로 향했다. 인터뷰에서 그동안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강 대표의 탈북과정 비화도 들을 수 있었다.

 

 

“제가 (한국에) 올 땐 중국에서 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탈북이라는 것 자체가 거의 없었던 시절이었죠. 한국 방송을 청취하다가 보위부에 체포돼 정치범수용소에서 매일 죽음의 고비를 넘겼어요. 제가 파묻은 시체만 300구가 넘어요. 사생결단을 하고 탈북했는데 중국에서 6개월 동안 보위부의 추격을 받으면서 간발의 차로 벗어났어요. 대련(랴오닝성 다롄시)에서 한국인 선장님의 도움을 받아 밀항선을 타고 기적적으로 탈출했죠.” 

  

강 대표는 평양에서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곤하지 않게 살던 평범한 청년이었다고 한다. 그의 운명을 바꿔놓은 건 방송이었다. 북한에서 해외, 특히 한국 방송을 청취하다 발각될 경우 여지없이 사상범으로 규정돼 중형에 처해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슬 퍼런 5공 시절에도 단순히 북한 방송을 청취했다는 이유만으로 공개처형을 당하거나 처형에 준하는 처벌을 받은 사례는 없었다. 그러나 오로지 수령의 ‘유일사상체계’만을 학습해야 하고 수령의 노예가 되어야 하는 북한은 달랐다.

 

“히틀러의 아우슈비츠, 스탈린의 시베리아수용소를 합쳐놓은 것 같은 악성 수용소가 북한 정치범수용소예요. 수감자들은 만성 영양실조였고 공개처형은 일상이었어요. 정치범들은 사람 취급을 못 받았죠. 제가 있을 때만 해도 같은 수용소 안에 살려주는 그룹이 따로 있었어요. 제가 있었던 혁명화구역은 전부 죽는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완전통제구역은 말 그대로 완전히 격리돼서 처벌받는 곳이죠. 생활이나 노동 강도 자체는 비슷해요. 차이점은 우리(혁명화구역)는 살아서 나올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는 거고 거기(완전통제구역)는 없다는 거죠. 아이들이 강제노역을 하다가 죽으면 (다른 아동들을) 그 자리에서 일을 시키고요. 정말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곳이예요.” 

 

강 대표는 요덕수용소에서의 삶을 조심스레 묻는 기자에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당시 상황들을 풀어놨다. 수십 년도 더 된 과거 일이지만 강 대표의 뇌리에서 영원히 잊히지 않을 충격적인 시절이었던 것으로 보였다.

 

“저를 안내한 조선족이 (공안에) 고발하겠다고 해서 다투고 도망간 적도 있었어요. 이동하다가 공안에 단속을 당해서 체포될 뻔 하기도 했죠. (중국) 세관을 통과할 때는 한국 선원증을 빌려 썼는데 그때도 걸리면 (북한에) 끌려가는 거니까 아슬아슬한 상황이 많았어요.”

 

 

그는 탈북과정도 순탄하지 않았다고 했다. 탈북 자체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지금과 달리 중국 내 선교단체 등의 도움도 기대하기 어려웠기에 더더욱 가시밭길이었음이 분명했다. 중국은 유엔난민협약 회원국임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 초 북한과 맺은 ‘탈주자 및 범죄인 상호인도협정’ 등을 이유로 탈북민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공안(경찰)에 적발되는 즉시 북한으로 돌려보낸다. 북송된 탈북민은 한국행 기도가 드러날 경우 정치범수용소에 갇히거나 공개처형에 처해진다. 이러한 경험들이 오늘날의 대쪽 같은 ‘인권투사 강철환’을 만든 것 같았다. 

  

 

 

강 대표는 남북한 사회를 모두 경험한 사람으로서 두 곳의 차이점에 대한 질문에 단호히 비교할 가치가 없다고 말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북한에서 해외여행 등 모든 행위가 통제되는 이유는 모든 주민이 정권의 거짓말에 속을 만큼 늘 ‘우매’해야 독재를 유지할 수 있어서다. 여행은 경험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 정권의 세뇌교육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는 게 강 대표의 설명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을 2005년 만나서 북한인권 문제를 전 세계에 확산시켰던 거예요. 지금도 가슴이 뿌듯하죠. 여러 보고서를 내면서 우리가 대북정책을 올바른 길로 방향제시를 해주고 그런 것들이 (현실로) 이뤄질 때도 기억에 남아요.”

 

강 대표는 잊히지 않는 순간으로 단연 부시 전 대통령과의 만남을 꼽았다. 강 대표는 미국 방문 과정에서 “북한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북한 내 정보확산 추진”이라는 아이디어를 처음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다. 강 대표 역시 북한 정권의 세뇌교육 대신 해외 정보를 접한 것을 계기로 탈북한 뒤 북한인권운동가의 길을 걸어 지금에 이르렀다. 

 

“사실 지금이 가장 최악이예요. 탈북민들이 인권활동을 하는 걸 정부가 달가워하지도 않고요. 이런 환경이다 보니 지금이 심리적으로 가장 위축되고 가장 힘든 시기예요. 해외에서 지원받아서 일하는데 코로나까지 겹치다 보니 일이 지연되는 어려움도 있어요. 그렇지만 소규모이긴 해도 우리 국민도 도움을 주고 있어서 힘을 얻어 일하고 있어요.”

 

강 대표는 가장 어려웠던 순간으로는 망설임 없이 ‘현재’를 꼽았다. 비단 강 대표뿐만 아니라 북한인권 운동에 매진하는 많은 탈북민이 지금이 가장 힘들다고 토로하는 게 현실이다. 정부는 6월 유엔에서 채택된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참여하지 않았다. 또 최근에는 대북전단을 살포한 한 단체가 통일부에 고발당하고 사무실이 압수수색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북한 주민들은 옛날보다 더 안 좋은 상황에서 허덕이고 있어요. 그 사람들을 대변하기 위해 여러 활동을 하는 건 저는 하나의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정보확산 사업을 더 확대하려 해요. 북한 내부가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최악의 위기로 가고 있는 이 때가 북한 변화의 분기점이라고 봐요. 불행히도 되지도 않는 핵 협상, 이벤트만 하다 보니 근본적·질적 변화가 북한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어요. 민간 주도로 북한 내부가 바뀔 수 있도록 하는 활동과 북한 정권이 자행하는 범죄를 기록해서 국제사회에 알리고 악행을 막을 수 있는 사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강 대표는 젊은 세대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도 있다고 했다. 그는 △성취감 제고 △인권문제에 대한 관심 △남북통일에 따른 경제적 수혜 인식 등을 강조했다.

 

“진보의 가치 중 자유와 인권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 오늘날 자유와 인권이 가장 무시당하고 있어요. 젊은 세대는 성취감을 잃고 정치권이 주는 것에만 만족하는 그런 삶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공무원 시험에만 청년들이 몰리고 창업 등 새로운 꿈에는 관심이 없죠. (북한)인권문제도 마찬가지고요. 북한이 해방되고 한국이 커지면 일자리가 많아지고 경제가 성장하는 것, 이런 것들이 청년들의 희망이 됐으면 해요.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북한인권문제를 시대정신으로 인식했으면 하는 게 저의 바람이죠.”

 

[오주한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