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국가정보원 후보자가 2000년 6·15남북정상회담 대가로 북한에 30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한 비밀문서에 서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해당 문서의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주호영 미래통합당(통합당) 원내대표는 27일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6·15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4·8남북합의서의 비밀합의서라며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라는 이름의 문건 사본을 공개했다.

 

이 문건에는 남한이 2000년 6월부터 3년 간 북한에 25억 달러 규모의 투자 및 경제협력 차관을 사회간접자본 부문에 지원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인도주의 정신으로 5억 달러를 제공한다는 내용도 적혔다. 이 중 5억 달러 물밑지원은 노무현정부 시절의 대북송금 특검팀 수사와 판결로 확인된 사안이다.

 

주 원내대표는 28일 YTN라디오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문건 진위에 대해 “믿을 수밖에 없는 전직 고위 공무원 출신이 그것(문건)을 사무실에 가져와 청문회 때 문제 삼아달라고 해서 공개했던 것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박 후보자가) 원본을 제시할 수 있냐고 하는데 만약 서류가 진실이라면 평양에 한 부 있고, 우리나라에 한 부가 아주 극비문서로 보관돼 있지 않겠나. 어떻게 우리가 원본을 입수하겠나”라고 말했다.

 

하태경 통합당 의원 등은 같은 날 기자회견을 열어 박 후보자 임명 유보를 촉구했다.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이면합의서(4·8 남북 경제협력 합의서)의 진위가 확인될 때까지 국정원장 임명을 유보해야 한다”며 “이게 진짜 문서라면 북한도 갖고 있을 것이고 박 후보자는 북한에 휘둘릴 수 있다. 확인 없이 (박 후보자를) 임명할 경우 국가안보에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하 의원 등에 따르면 박 후보자는 비공개 청문회에서 30억 달러 지원 논의 자체는 인정했다. 박 후보자는 공개 청문회에서 “사실이 아니다”, “조작된 것이다”, “기억에 없다”라고 밝혔던 입장과는 달리 “ADB(아시아개발은행)·IBRD(세계은행) 등 민간사업가나 이런 투자 자금으로 20억~30억 달러의 북한 투자가 가능하지 않겠냐는 원론적 이야기를 했다”고 밝혔다.

 

하 의원은 “이런 (30억 달러 지원) 얘기를 했다는 건 인정한 것이다”며 “하지만 (박 후보자는) 합의문은 절대 작성하지 않았다고 했다. 합의문에 있는 내용은 언급했지만 실제 사인은 하지 않았다는 게 박 후보자 답변이다”고 전했다.

 

박 후보자는 28일 입장문을 통해 “합의서는 허위·날조된 것으로 주 원내대표에 대해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며 “사본을 제보했다는 전직 고위 공무원의 실명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한편 김대중 대통령이 과거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한에 ‘문건 전달’을 언급한 사실이 확인돼 주목된다.

  

2000년 7월 19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은 소니 에프론 LA타임스 도쿄지국장과 인터뷰에서 “쿠알라룸푸르 회담에서 미사일 수출 포기 대가로 북한이 30억 달러를 요구한 데 대해 실망하지 않았나”라는 질문에 “나는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핵·미사일 문제에 대해 한국 측 입장을 분명히 했다”며 “핵·미사일 문제에 관해 문서로 써서 이를 북한 측에 전달했다”고 답했다. 미국과 북한은 같은 해 6월 29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미사일회담을 개최했다.

 

김 전 대통령은 해당 문서가 어떤 내용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미사일 수출 포기 대가라는 전제가 붙었지만 북한의 30억 달러 요구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 답변 과정에서 언급된 것이라 주 원내대표가 공개한 문건과의 동일성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주 원내대표 공개 문건은 고(故)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대북송금 특검팀에 제출했다는 자필진술서에 담긴 한국 정부의 20억~30억달러 규모 대북지원 제안과의 연관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박 후보자 측은 “그런 (비밀합의서) 문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