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부터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올 2분기 우리나라 조선업계 맏형 기업인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부문 실적은 급격한 하향곡선을 그렸다. 현대중공업그룹 조선지주사 한국조선해양의 조선 부문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8.6%나 감소했다. 한국조선해양 자회사인 현대미포조선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배비 무려 61.8%나 급감했다. 글로벌 1위 기업이 이정도니 여타 기업의 상황이야 말 할 것도 없다.

 

국내 조선업계의 위기는 단순히 특정 기업의 일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대표적인 노동집약적 산업인 만큼 실직자가 대거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고객 대부분이 외국기업이라는 점에서 경상수지 하락도 피하기 어려워진다. 국가경제 기여도 측면에서 봤을 때 단순히 내수에만 의존하는 일반 유통업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국가경제에 ‘재앙’에 가까운 피해를 불러오는 조선업계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의 전폭적이 지원과 각 기업들의 뼈를 깎는 노력이 동시에 요구된다. 특히 업계 1위이자 글로벌 1위 기업인 현대중공업그룹에겐 막중한 책임감이 부여된다. 업계 선도기업으로서 조선강국의 위상을 바로세우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현대중공업그룹의 내부 상황은 위기 극복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 어려운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현대중공업그룹은 극심한 내홍에 시달리고 있다. 노사 갈등이 수년 째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노사 갈등은 노동집약 산업인 조선업에 있어 최대 장애물로 지목되는 사안이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지난해 임금교섭을 1년 2개월이 넘도록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다. 무려 62차례나 노사가 한 테이블에 앉았지만 성과는 전무한 상황이다.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서 노사 간 갈등의 골만 깊어지는 형국이다.

 

표면적으로는 처우를 둘러싼 갈등으로 비춰지고 있지만 현대중공업그룹 노사 갈등의 이면에는 최고경영진에 대한 노조의 불신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최고경영진의 재력이나 배경, 경영행보가 직원들의 상식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데서 생겨난 불신이라는 게 현대중공업 노조의 반응이다. 오너급 전문경영인 권오갑 회장은 노사 간 불신을 낳은 장본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실제로 권 회장은 그룹 오너가 아님에도 샐러리맨은 평생 모으기 힘든 재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현대중공업그룹이 극심한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개인적으로는 부동산을 통해 수백억원에 달하는 돈을 벌기도 했다. 이런 권 회장의 그룹 내 위상은 오너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보다 막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상 절대권력에 가깝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현대중공업 한 고위 임원에 따르면 현재 그룹 내에서는 이른바 ‘권오갑 라인’이 아니면 고위 임원 자리는 물 건너갔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조선업은 오랜 기간 우린나라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해왔다. 일자리부터 수출까지 어디하나 기여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이런 조선업을 이끄는 선도기업이 바로 현대중공업그룹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위기는 단순히 개별 기업을 넘어 한국경제 전체의 위기로 봐야한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최대 위험요소로 지목되는 노사 갈등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현대중공업그룹 노사 갈등 해소의 실마리는 권 회장에게 있다. 방법은 용퇴 결단뿐이다. 다행히 현대중공업그룹엔 적임자도 존재한다. 가삼현 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가 주인공이다. ‘권오갑의 복심’이라는 치명적 결함을 지니곤 있지만 오랜 기간 현대중공업에 몸담으며 전문성과 입지를 쌓은 덕분에 조직 내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녔다. 무엇보다 그에게선 권 회장 특유의 ‘귀족’ 이미지를 찾아보기 어렵다. 권오갑 절대권력 체제를 대신할 ‘가삼현 新체제’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