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간의 여행을 마친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의 거인(巨人) 임성기 한미약품그룹 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했다. 그는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의 글로벌 진출 토대를 닦고 산업 전반의 기술 발전을 주도한 인물로 제약업계의 ‘큰 별’이다.

 

3일 한미약품에 따르면 임성기 한미약품그룹 회장이 2일 새벽 숙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80세.

 

고인은 조그만 ‘동네 약국’을 시작으로 1조 매출 제약사를 키워낸 제약업계 거인으로 지목되는 인물이다. 고(故) 임 회장은 1940년 김포에서 태어나 중앙대 약대를 졸업한 뒤 1967년 서울 동대문에서 ‘임성기약국’을 열며 제약업계에 발을 내딛었다. 이후 1973년 ‘더 좋은 약을 우리 손으로 만들자’는 포부로 한미약품을 창업했다. 임 회장의 나이 33세 무렵의 일이다.

 

한미약품의 문을 연 고인은 1990년대까지는 특허가 만료된 제네릭 의약품(복제약)의 판매에 집중하며 회사 성장기반을 다졌다. 그러면서도 ‘한국형 연구개발(R&D) 전략을 통한 제약강국 건설’이라는 일념으로 매년 매출의 20%가까이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해 온 것으로 알려진다.

 

임 회장은 제약업계의 흐름에 발맞춰 단기적으론 개량신약 개발에 힘썼고 장기적으로는 혁신신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이른바 ‘투 트랙’ 전략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확보했다. 평소 “R&D 없는 제약기업은 죽은 기업, R&D는 나의 목숨과도 같다”는 임 회장의 확고한 신념이 깃든 선택이었다.

 

한미약품은 2000년 의약분업 시행 직후 본격적인 성장가도를 달렸다. 국내 대부분 기업이 투자를 축소할 때 임 회장은 과감한 투자 등 공격적인 경영으로 빠르게 사세를 확장시켜나갔다. 신약을 연이어 출시하며 글로벌 혁신 신약 개발의 초석을 닦았다.

 

고인의 이런 노력은 한미약품이 개량 신약 개발, 의약품 기술 수출 등 국내 제약사 최초 기록을 써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미약품은 1989년 국내 제약사 최초로 스위스 제약사 로슈에 항생제 제조 기술을 수출했다. 2009년에는 고혈압 치료제 개량 신약 ‘아모잘탄’을 선보이기도 했다. 아모잘탄은 세계 50여 국가에 수출될 정도로 ‘글로벌 히트 상품’으로 우뚝 섰다.

 

임 회장의 열정은 2015년 또 한 번 빛을 냈다. 한미약품은 2015년 한 해에만 해외 제약사에 자체 신약개발 물질들을 기술수출(라이선싱 아웃)하며 단숨에 글로벌 스타기업으로 우뚝 섰다. 당시 기술수출 규모만 8조원에 달한다.

 

일생을 제약업계 발전에 헌신한 임 회장의 행보를 목도한 제약기업들은 R&D 투자를 늘리기 시작했다. 국내 제약업계엔 개량·복합 신약 개발 열풍이 불기도 했다. 이는 오늘날 ‘K바이오’의 기반이 됐다는 평가다. 고인의 발자취가 제약업계 흐름 자체를 바꿔놓은 셈이다.

 

고인은 2009년 인터뷰에서 “제약 산업이 한국의 미래 성장 동력이 될 것이다”고 자신했다. 그의 말처럼 오늘날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은 글로벌 시장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다.

 

임 회장의 타계로 회사 빈자리는 그의 자녀들이 채울 전망이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부인 송영숙씨와 아들 임종윤·임종훈씨, 딸 임주현씨가 있다. 이 중 장남 임종윤 씨는 후계자로 일찌감치 지목된 인물이다. 현재 한미약품그룹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대표이사로 활약 중이다.

 

장녀 임주현씨는 현재 한미약품 부사장직을 맡고 있다. 차남 임종훈씨는 지난 2017년 한미약품 사내이사로 선임돼 현재 경영기획 부사장직을 수행 중이다. 임종훈 부사장은 그룹 관계사인 한미헬스케어와 벤처캐피탈인 한미벤쳐스 상근 대표직도 맡고 있다.

 

고 임성기 회장의 장례는 고인과 유족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른다. 발인은 6일 오전이다. 빈소는 확정되는 대로 추후 공개될 예정이다. 유족 측은 조문과 조화는 정중히 사양한다는 뜻을 밝혔다.

 

[강주현 기자/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