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에 불과해요.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나이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죠. 그래서 머리 희끗한 할아버지가 웹툰에 도전하게 된 거예요. 연재한 지 아직 얼마 안 된 신인 작가지만 웹툰을 통해 독자들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준다는 게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요. 작가로서 막 첫걸음을 뗀 만큼 아직 성취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아요. 오늘은 제게 남은 날의 첫날이니까요.”

이른바 웹툰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우리의 일상에 모바일 환경이 자리 잡으면서 스마트폰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쉽게 웹툰을 즐길 수 있어서다. 만화 형식이라 보기도 어렵지 않다. 그러나 한낱 만화라며 웹툰을 유치하다고 치부하면 큰코 다친다. 드라마, 영화 등으로 재탄생할 만큼 스토리도 탄탄하고 재미까지 갖추고 있어 웹툰을 즐기지 않는 이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상당하다.

웹툰의 인기가 크게 높아지면서 웹툰 작가에 대한 열망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웹툰 작가는 젊은 세대의 전유물이라 보는 시각이 많다. 아무래도 젊은 세대가 모바일 환경에 훨씬 익숙하다 보니 쉽게 가질 수 있는 선입견이기도 하거니와 실제로도 대부분의 웹툰 작가가 젊은 층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웹툰 작가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민 노익장이 있어 화제다. 바로 이인재 아남항공 회장(76)이다.

“제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귀여운 손자가 있습니다. 하는 짓이 어찌나 예쁜지 손자 녀석이랑 얘기도 많이 하고 놀아주기도 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하루는 손자를 무릎에 앉혀 놓고 대화를 하려고 했는데 글쎄 손자 녀석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거예요. 뭘 그리 열심히 보나 살펴봤더니 웹툰을 보고 있었어요. 저와는 대화할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는지 웹툰을 재밌게 보는 손자에게 내심 서운하기도 하더라고요.”

“그때 문득 깨달았어요. 제 눈높이에서 손자와 얘기하려 하지 말고 손자 눈높이에 맞춰 대화를 시도해봐야겠다고요. 대화의 물꼬를 무엇으로 틀까 고민하던 차에 손자 녀석이 좋아하는 웹툰으로 시작하면 되겠다 싶더군요. 제가 연재한 웹툰을 손자가 재밌게 읽으면 그림체나 등장인물, 내용에 대해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과감하게 웹툰 작가에 도전했죠.”

웹툰 작가로선 이제 갓 출발한 신인이지만 이 회장은 국내 항공업계에서 내로라하는 베테랑이다. 이 회장은 대한항공에 입사한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에서 오랜 기간 주재원으로 근무했다. 바레인 지점장을 끝으로 퇴사한 이 회장은 항공 총 대리점을 운영하며 현재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항공업계에서 일하다 보니 해외에 나갈 일이 많았어요. 출장으로 80여개국을 여행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생기더군요. 박물관, 유적지 등을 방문해 다양한 국가의 역사를 몸소 배우고 느꼈지만 우리나라 역사만큼 대단한 나라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은 아시아 대륙 동쪽 끝 작은 반도 국가에 불과해요. 그러나 외세의 수많은 침략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국난을 극복해 왔어요. 단순히 위기를 타개하기만 한 건 아녜요. 산업과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오늘날 세계 경제 대국으로 거듭나기까지 했어요. 이런 나라는 세계 어느 곳을 찾아봐도 없어요. 정말 대단한 거죠.”

“우리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졌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더군요. 예상보다 많은 젊은이가 우리나라의 역사를 다소 낮춰보는 경향이 있어요. 마치 서구 선진국의 역사는 대단하고 우월한데 우리 역사는 그에 비하면 다소 소박하고 열위에 있다고요. 그 사실이 참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젊은 세대의 인식을 바꿔주고 싶었어요.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마주해 자긍심을 일깨울 수 있도록요.”

어떻게 하면 젊은 세대가 부담 없이 역사 인식을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한 이 회장은 소통이 최고의 해법이라 판단했다. 다만 젊은 세대와의 세대 차이를 줄여줄 방법이 마땅하지 않았는데 손자로부터 영감을 받은 웹툰이야말로 제격이라 생각했다. 이 회장은 젊은이들의 마음에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역사 속 가장 위대한 위인인 이순신 장군을 모티브로 웹툰을 연재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우리에게 친숙한 이순신 장군은 7년간 지속된 임진왜란 당시 수많은 왜구를 물리친 대단한 위인이에요. 만약 이순신 장군이 그들을 막아내지 못했다면 조선은 물론이고 명(중국), 안남(베트남), 샴(태국), 루손(필리핀), 천축국(인도)까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욕에 무참히 점령당했을 거예요. 만약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16세기 아시아 정세는 지금과 매우 달라지게 됐을 거라고 봐요. 오늘날의 세계 지도가 상당히 달라졌을지도 모르죠. 이순신 장군은 아시아의 역사를 바꾼 영웅이나 진배없어요. 이러한 영웅 이순신을 젊은이들에게 소개하고 그의 발자취를 쉽게 느낄 수 있도록 웹툰을 연재하고 있죠.”

지난달 초 카카오페이지에 연재를 시작한 이 회장의 웹툰 ‘1592 이순신 레전드의 대화’는 연재된 편수가 아직 6편에 불과한 데도 벌써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독자들은 ‘이순신 장군에 대해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됐다’며 감사를 표하기도 하고 ‘다음 화까지 어떻게 기다릴지 모르겠다. 얼른 다음 화가 업로드됐으면 좋겠다’며 열렬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이 회장은 웹툰의 첫머리에 대한 칭찬이 기분 좋으면서도 쑥스럽다고 멋쩍게 웃었다.

“광화문 광장에 있는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의 동상에서 혼령이 깨어나면서 웹툰이 시작해요. 동시대를 살지는 않았지만 후세에 광화문 광장이라는 한 공간에 머물고 있는 두 위인이 서로 대화를 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주고 받을지 상상한 데서 아이디어가 나온 거죠. 두 위인은 현대인처럼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서로의 업적을 높이 평가해요. 마치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가 두 위인을 평가하는 것처럼요. 이러한 부분이 참신하고 기발했다며 칭찬해 주시는 독자들이 많더라고요. 감사했죠.”

그러나 웹툰을 연재하기까지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고 이 회장은 회상했다. 당초 한두 달이면 웹툰 연재를 위한 준비가 끝날 줄 알았으나 스토리와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그림을 그려줄 만화가를 섭외해 팀을 꾸리는 데에만 1년이라는 시간이 족히 소요됐다. 준비는 얼추 마쳤으나 연재가 시작돼서도 어려움은 많았다.

“웹툰 작가에 도전하기 전엔 웹툰을 연재하는 데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 못 했어요. 스토리와 시나리오에 맞게 만화를 후딱 그려내 온라인에 업로드하는 간단한 과정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연재하려고 보니 시간이 너무 부족한 거예요. 왜 다른 웹툰들이 일주일에 한 편씩 업로드되는지 이제야 알게 됐어요.”

“팀 멤버들이 없었다면 제가 그리던 웹툰 작가의 꿈은 결국 제 마음속에만 머물렀을 거예요. 젊은 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웹툰 작가에 도전한 제 뜻에 크게 공감하고 힘을 모아준 김종두 갓툰 대표와 안중걸 만화가 등 드림팀에 참으로 감사드려요.”

이 회장은 이번 웹툰이 이순신 장군의 이미지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길 소망했다.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프랑스와 에스파냐 연합 함대를 격멸시킨 영국의 해군 영웅 넬슨이 세계인의 칭송을 받는 것처럼 이순신 장군 역시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위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이 과정에서 우리 국민 모두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확립하고 우리나라 역사를 자랑스러워하도록 긍지를 심어주고 싶다고 했다.

“이순신 장군은 역사적으로 상당 부분 저평가돼 있어요. 조선과 왜(일본), 명의 이해관계가 얽힌 3개국 간 국지적인 전쟁을 막은 인물이라는 거죠. 더 이해하기 어려운 건 이순신 장군의 역사적 위치를 우리 스스로 낮게 정립했다는 거예요. 일본과 중국만 해도 이순신 장군을 상당히 높이 평가해요. 비록 적장이고 타국의 장수이나 임진왜란 당시 보여준 병법과 리더십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인정하는 거죠. 그런데 왜 우리는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을 깨닫지 못하고 낮게 평가하는지 아쉬울 따름이에요.”

“2014년 영화 ‘명량’이 개봉해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멋지게 그려내면서 많은 국민이 명량해전을 기억하게 됐어요. 그러나 임진왜란 때 가장 치열했던 해전 중 하나인 부산대첩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죠. 하물며 제대로 된 기념비조차 없어요. 이렇듯 우리는 이순신 장군을 올바로 평가하고 기억하기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아요. 참 안타까운 부분이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어요. 우리는 이 말을 곱씹고 우리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 그래서 제가 웹툰을 연재하게 된 거죠. 잊지 않기 위해서요.”

이 회장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배우고 느낀 지식과 지혜들을 후대에 전해주고 싶다고 했다. 8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인생의 경험을 다음 세대의 주인공인 젊은 세대에게 알려주는 것이야말로 ‘사계절 중 겨울에 접어든’ 이 회장 자신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소크라테스가 이런 말을 했어요. ‘너 자신을 알라.’ 간단하면서도 묵직한 이 명언은 한 가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알아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을 읽지 않아요. 아니 읽지 못하는지도 몰라요. 스스로를 파악하기 위해 눈을 뜨고 마주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죠. 몇몇 젊은 친구들은 방법을 모른다고 할 수도 있겠군요.”

“그런데 정체성을 확인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아요. 과거에서 답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고 익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에요. 선조들이 보여준 행동을 통해서 우리의 정체성을 탐구할 수 있으니까요. 역사 속 위인이 시련과 역경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살펴보면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도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제가 웹툰을 연재하기로 한 것 아니겠어요? 웹툰을 통해 소통하며 젊은 세대의 정체성을 찾아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