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부관참시라고 할 친일·반민족 인사를 대상으로 한 이른바 ‘파묘법’을 보면 발의한 여당의원들이 애국적 의도를 드러내고 있지만 심각한 국론분열을 촉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보-혁 간 애국의 잣대가 대척점을 이루며 극심한 정의 논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는 점이다. 결국 국가 정체성 논란까지 다시 불을 지폈다.

 

실제로 미래통합당을 비롯한 보수 우파는 일제히 파묘법을 격렬히 비판하면서 애국으로 포장된 친일청산 논리가 반국가적·반국민적 기만전술이라는 반격까지 하고 있다. 보수 우파는 작금의 친일논리가 순수성을 잃은 채 좌파논리에 경도된 개념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노림수가 있다는 입장을 보인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애국이란 선의를 가장한 최악의 사술(邪術)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명의 여당 의원들이 주도하고 있는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국립묘지법) 개정은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친일·반민족 인사를 파묘해 다른 곳으로 이장하는 내용을 골간으로 한다. 권칠승 의원과 김홍걸 의원 등에 의해 유사한 법들이 대표 발의됐다. 권 의원실의 경우는 친일반민족행위 대상자가 12명이라고 밝히면서 고 백선엽 장군까지 파묘 대상에 포함시켰다.

 

김원웅 광복회장까지 거들었다. 그는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친일파와 결탁했다’고 운을 떼며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조차 ‘민족 반역자’라고 했다. 현충원에 친일반민족 인사 69명이 있다며 파묘를 시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파묘법에 대해 개별의원들의 사안으로 아직은 국한시키고 있다. 지도부와 교감한 일이 없다고 하기는 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함께한 자리에 광복회장이 거들고 수십명 의원이 함께 하고 있는 파묘법을 지도부가 간과했을 리 없다.

 

친일청산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로세우는 일이 맞다. 하지만 그 확대된 개념은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일에 맞닥뜨린다. 진보진영의 논리로 보면 이승만 전 대통령을 부정하지 않고서는 친일청산 논리가 시작조차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간간히 건국일 논란을 촉발시킨 것이 그 대표적인 방증이다. 국가 정체성을 흔들어야 가능한 친일청산 논리가 파묘법으로 맹위를 떨치는 셈이다.

 

최근 8·15 경축사에서 문 대통령은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분단으로 인한 미완의 광복을 통일 한반도로 완성하고자 했던 김구 선생’이라는 말을 했다. 누가 봐도 김구 선생이 건국 대통령이 되기를 희망하는 발언이면서 이승만 건국 대통령에 대한 부정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해방 후 통일국가를 건국하고자 했던 김구 선생의 노력은 이해하지만 당시 김일성의 거침없는 야욕은 우리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치열한 현실이었다. 그만큼 김일성은 막강 소련이라는 막후 스탈린의 외세를 등에 업고 있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미국의 힘을 빌리기는 했어도 국제연합(UN)이 인정한 유일한 합법정부를 세웠다. 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다. 분단이라는 비극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재론조차 필요 없다.

 

오늘의 김씨 3부자 세습왕조를 만든 장본인이 분단의 씨앗을 뿌린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하지만 해방 이후 북한에게는 진보진영발로 이상한 주석이 줄곧 달렸다. 김일성 권력은 해방 후 친일파가 잔존하고 득세한 남한과 달리 외세의 간섭을 받지 않은 채 친일청산을 완성했다는 논리가 진보진영 내에서 공유됐다.

 

이들 사이에서 해방전후사의 좌파적 인식에 종속이론, 해방신학 등이 곁들여지자 북한은 한반도에 핏빛이 서린 일제강점 비운의 역사를 씻은 공이 있다고 여겨지기까지 했다. 그들에게 친일청산을 방해한 외세는 결국 반세기 가깝게 공지의 적으로 규정됐다. 미국은 그렇게 아직도 좌파적 인식으로 대한민국의 공적이란 인식이 망령처럼 떠나질 않는다. 그 연장선상에서 토착왜구라는 신조어가 친일청산의 명분을 쥔 권력에 강하게 힘을 보태고 있다.

 

자본가를 무차별 척살하고 사유재산을 몰수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 낙원 건설이란 현란한 현판 아래 외견상 김일성의 친일청산이 가능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비극을 낳는 살인적 명분이 됐을 뿐이다. 모두가 공평하게 잘살아야 한다는 공산주의 휴머니즘을 앞세운 허울 좋은 권력야욕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살육전이 친일청산의 속살이었다. 그 결과는 결코 아름답지 않고 참혹했다. 이후 북한에는 일제보다 훨씬 잔인무도한 현대판 왕조권력이 자랐다.

 

외골수 정의에 빠진 친일청산 논리는 문 정부 이후 친북노선 미화로 확대됐다. 엄밀히 동포를 탄압하는 ‘3부자 권력’을 돕는 친북논리가 평화로 회자되는 것은 애초부터 어불성설이다. ‘친 김씨 정권’ 노선은 반인륜적이면서 반통일적이라는 사실이 최근 몇 년간 엄정히 증명됐다. ‘북핵’의 완성이 분단의 고착화라는 것으로 어느새 현실화 됐다. 동시에 우리 국민의 핵위협 안보위기는 역대 최대로 가중됐다.

 

친일청산 기조로 평등한 나라의 꿈을 실현하고자 했던 행보가 5000만 국민을 위협하는 북한정권의 연장으로 결론이 났다. 이젠 도무지 길이 안 보인다. 친일청산 깃발을 내릴 수는 없고 그렇다고 마냥 올리고 있기에는 민망하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인식은 치열한 현실을 보지 않은 채 이상적인 과거에 묻혀 있어 안타깝다.

 

그는 여전히 ‘모두가 함께 잘 살아야 진정한 광복이다’고 했다. 언뜻 보기에 좋은 말이지만 현실을 간과한 격렬한 수사다. 아름다운 듯 한 국정철학이 늘 불시착하는 배경이다. 모두가 잘 사는 기준이 정말 모호하다는 것이다. 사실 이를 명쾌히 정의하기는 불가능하다. 자유를 근간으로 한 공화국을 헌법상 국체로 하는 대한민국에서는 듣기만 좋을 뿐 실현가능성 제로다.

 

아니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나라는 단기간 내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번영을 일궜다. 차별이 있더라도 모두가 ‘더’ 잘사는 나라를 이미 구현했다. 이를 실현하지 못했거나 더 잘살게 됐지만 평등을 우선하다 빈국으로 떨어진 나라들이 전 세계 도처에 있다. 우리가 진정한 광복의 기준을 이루려면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인지 보다 분명하게 의중을 밝혀야 한다.

 

결국 친일청산으로 회귀한다. 친일파들이 여전히 득세한다는 차별의 논리가 굳세게 관통하고 있음이 보인다. 속칭 토착왜구를 뿌리 뽑기 위해서는 결국 김일성식 사유재산 몰수만이 근본처방이지만 가능한 이야기인가. 나아가 현충원에 안장된 유골까지 파내 이장하는 것이 근본적인 친일청산인지 재삼 묻고 싶다.

 

이 같은 일들이 외견상 치 떨린 일제 만행의 역사에 위안을 삼을 수 있다고 해도 더 큰 현실을 외면한 부메랑을 봐야 한다. 여전히 의도하든 안하든 주적을 미국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자발적 외통수를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친 북·중·러 라인을 또한 타지 않으면 안 되는 대단히 위험한 단선을 마구 달리는 구도다. 그 마지막 방점에 있는 친일청산이란 타깃이 무시무시한 핵위협을 우리의 현실로 끌어 들이는 단초가 됐음을 자성해야 한다.

 

친일청산은 언젠가 해야 할 과제가 맞지만 우리의 현실을 감안하지 않는 몽상은 늘 화근이 돼 돌아왔다. 극일만이 유일한 친일청산의 길임을 곱씹어야 한다. 극일은 냉정히 자유시장에 기반한 경제력과 한미동맹 범주의 자주국방력이란 두 축이 좌우한다. 이들 기둥을 현실과 전혀 걷도는 방식을 들이대 허수아비로 만들면서 친일청산을 하고자 하는 것은 그 구호가 권력을 위한 방패막이로 전락했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