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국민을 위해 늘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곳이 국가정보원 사람들이다. 국정원은 대통령 지근거리에서 국가의 운명과 국민의 생명을 좌우하는 정보들을 취급하기에 막전막후 최고의 권력기관인 이유다. 최근 이런 국정원에 대한 신뢰가 신임 박지원 사령탑의 모호한 국회 첫 업무보고로 땅에 떨어졌다.

 

자타가 공인하는 대북통이라는 박지원 원장이 북한의 민감한 권력변화와 관련해 현실과 맞지 않는 이른바 ‘가공 단어’를 쓰며 횡설수설한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신정(神政)에 버금가는 1인 절대권력체제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통치 스트레스 때문에 위임통치를 한다고 했다가 북한 전문가들로부터 일제히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라는 봇물 질타를 받았다. 국정원은 체면 몰수하고 핑계를 대기 바빴다.

 

‘위임’이 권력분산은 아니라고 시답지 않은 봉합수술을 하면서 ‘통치 스트레스’라는 말도 김정은 위원장의 자신감 일환이라고 급하게 덧칠을 했다. 참으로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는 이상한 장면의 연출이다. 사건의 전후를 보면 국정원은 마치 존엄한 상급자를 위한 대변인 같은 행동으로 ‘경외하는 해석’을 하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될 ‘건강이상설 이상무’를 보탰다.

 

1인 권력구도에 변함이 없다는 변명이 구구하다보니 ‘책임 돌리기’란 말로 스텝이 또 꼬였다. 권한은 주지 않고 책임만 돌리는 방식은 치졸한 통치방식인 탓이다. 존엄에 대한 비하가 걱정된다는 보도까지 나와 씁쓸함이 더해졌다. 급기야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박지원의 썰전’이라고 비아냥대면서 ‘정치인의 관종병’ 아니냐는 식으로 원색 비난했다. 박 원장은 국정원 데뷔무대에서 씻을 수 없는 얼룩을 묻히며 여지없이 체면을 구기고 말았다.

 

김대중 정부에서 국정상황실정을 지낸 장성민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 이사장조차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라는 식으로 응수했다. 그는 현재 김정은 리더십이 행방불명됐다면서 통치행위를 할 수 없는 코마상태로 거동 불능이라는 정보를 접했다고 반대논리를 강하게 폈다. 두 사람은 청와대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DJ 가신그룹에 있었기에 혼란스럽다. 장 이사장이 접한 자신감 넘치는 정보의 출처가 어딘지 대단히 궁금해진다.

국정원의 정보 신뢰도가 이번 일로 크게 추락했기에 그동안 도외시됐던 김정은 코마설이 새삼 무게감을 얻는다. 문재인 정부도 지속 제기되는 건강이상설에 전혀 이상이 없는 식으로 발표해 왔지만 동시에 의구심을 품게 만든다. 책임을 분산했다는 북한의 △대남·대미분야 △경제분야 △군사분야 등은 이른바 ‘권력 트로이카’ 운전대다. 북한을 누구보다 잘 알고 언제든 접촉할 지인들이 많다고 자부해 온 국정원장이 북한 권력심부의 진짜 운전자가 코마 등 건강이상이 아니라면 운전대를 넘기기 어려운 부분을 놓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중시킨다.

 

어이없는 갈지(之)자 행보를 한 ‘박지원 셈법’은 국정원이 누구를 위한 권력기구인지 의아하게 만들었다. 국정원장 임명 때부터 과거 반문재인을 외쳤던 정적을 오른팔 권력으로 둘 수 없었기에 문재인 정부와 ‘이상한 동거인’이 될 것이라고 여론이 분분해 오던 차였다. 임명권자자까지 혼란을 줄 일이 끝내 벌어져 향후 대북정책이 안개 속에 빠질 것이라는 공포감을 준다. 속칭 정치9단의 엉뚱한 국정원이 될까 걱정스럽다. 역사를 보면 국가정보 수장이 늘 쿠테타와 권력암투 및 배신의 아이콘으로 등장해 왔다. 국가 정보의 혼선과 독점은 국민에게 닥쳐 올 거대한 위기와 직결된다. [스카이데일리 논설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