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오프라인 유통시장의 침체 등에 따라 롯데그룹은 유례없는 위기와 마주했다. 실적부진이 심화됐고 이를 타계할 미래성장동력조차 마땅치 않아 내부는 물론 외부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대중들 사이에서 ‘일본계 기업’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점도 롯데그룹의 악재 중 하나다.

 

결국 롯데그룹은 이례적인 비정기 임원인사를 실시하며 위기 극복에 나섰다. 지난 13일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 그룹 생존과 미래 성장을 모색한다는 명분으로 창사 첫 비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인사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부분은 그동안 그룹 2인자를 넘어 실세라고까지 평가받던 황각규 롯데지주 대표이사(부회장)가 전격 퇴진이었다. 황 부회장의 빈자리는 이동우 롯데하이마트 대표이사(사장)이 채우게 됐다.

 

롯데그룹이 나름 크고 작은 변화를 꾀했지만 그룹 안팎에서는 실질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표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롯데그룹 리더십에 실질적 변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황 부회장이 물러났다곤 하지만 롯데지주 이사회 의장으로서의 역할은 계속 수행하는데다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들이 핵심 요직을 차지하고 있어 황 부회장의 그룹 내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벼랑 끝 신동빈, 파격 세대교체 첫 제물 ‘복심 황각규’ 지목

 

위기에 빠진 롯데그룹이 파격적인 그룹인사를 단행했다. 이달 비정기 임원인사를 통해 롯데지주 대표이사를 비롯 계열사 수장들을 교체했다. 롯데지주 경영전략실은 경영혁신실로 개편했다. 신임 대표이사들은 새로운 리더십을 그룹에 접목시킬 것으로 보인다. 경영혁신실은 그룹 미래 전략과 신규 먹거리 등을 모색하는 데 힘쓸 전망이다.

 

이번 임원인사는 롯데그룹의 창사 첫 비정기인사다. 매해 연말 정기인사를 반복해온 롯데그룹 입장에선 상당히 파격적인 결정으로 해석된다. 그만큼 그룹 내 위기의식이 팽배하다는 의미로도 분석된다. 앞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코로나 사태 등으로 그룹 경영환경이 악화되자 비상경영회의를 통해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위기 상황이 예상되는 만큼 비즈니스 전략을 효과적으로 변화시켜야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황각규 부회장 퇴임 등의 파격인사 역시 신 회장의 의중이 깊게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룹 위기극복 및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해서는 대대적인 세대교체가 시급하지만 그만큼 반발도 예상되는 만큼 지주사 수장부터 희생시켰다는 평가다. 황 부회장 스스로도 그룹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했다는 뜻을 전하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롯데그룹 핵심 요직 차지한 황각규 사단…명목상 세대교체 의구심 솔솔

 

신 회장이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위해 황 부회장을 희생양으로 삼았지만 여전히 그룹 안팎에서는 이번 임원인사로 그룹 혁신을 도모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황 부회장이 롯데지주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곤 하나 이사회 의장으로서의 역할은 계속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룹 핵심 요직에 황 부회장 측근으로 평가되는 인물들이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는 점도 ‘반쪽짜리 세대교체’라는 평가를 이끌어 내고 있다.

 

재계 안팎에선 마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 등 황 부회장 출신학교 동문이거나 호남석유화학(롯데케미칼), 롯데그룹 정책본부(경영혁신실) 등에 몸담았던 인물들을 이른바 ‘황각규 라인’ 인사로 분류한다. 황 부회장이 몸담았던 조직에서 함께 일했던 경험이 있다는 데서 공통점을 가진다.

 

임병연 롯데케미칼 기초소재사업 대표(부사장)는 서울대 화공과-호남석화로 이어지는 대표적인 황 부회장 측근 인사로 지목된다. 임 부사장은 서울대 화공과를 졸업하고 호남석유화학에 입사해 롯데그룹에 발은 내딛은 인물이다. 이후 롯데그룹 정책본부 등을 거쳤고 2018년 임원인사를 통해 롯데케미칼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황 부회장이 걸어온 길을 답습하고 있다는 점에 비춰 차기 그룹 실세로 평가된다.

 

롯데케미칼 통합대표이사로 있는 김교현 화학BU장(사장)도 황 부회장 측근 인사로 평가받는다. 김 BU장은 1984년 호남석화에 입사하며 롯데그룹과 인연을 맺은 인물이다. 오랜 기간 황 부회장과 함께 손발을 맞췄다. 김 BU장은 롯데케미칼 대표이사(사장)를 역임하다 2018년 임원인사서 화학 BU장에 선임됐다.

 

롯데글로벌로지스, 롯데비피화학 등 그룹 계열사 수장 자리도 호남석화 인사들이 꿰차고 있다. 박찬복 롯데글로벌로지스 대표이사(부사장), 김용석 롯데비피화학 대표이사(전무) 등은 호남석화에 몸담았던 경력이 있다. 오성엽 롯데지주 커뮤니케이션실장(사장)도 호남석화 출신 인사다. 오 사장은 그룹 경영혁신실에서도 일하며 황 부회장과 인연을 쌓았다.

 

정책본부 출신 인사도 핵심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남익우 롯데GRS 대표이사(전무)는 마산고 출신이자 정책본부에도 몸담았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황 부회장과 공통점을 갖는다. 남다른 인연에 황 부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것으로도 알려진다.

 

이 밖에 이번 임원인사를 통해 자리를 옮긴 인물 면면을 살펴봐도 호남석화, 정책본부 출신 인사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롯데인재개발원장으로 내정된 윤종민 롯데지주 경영전략실장(사장)과 롯데물산 대표이사로 내정된 류제돈 롯데지주 비서팀장(전무) 등은 정책본부에 몸담았던 이력이 지녔다. 롯데액셀러레이터 대표이사로 내정된 전영민 롯데인재개발원장(전무)도 정책본부 출신 인사다. 또 롯데경영혁신실장으로 내정된 이훈기 롯데렌탈 대표이사(전무)는 호남석화 출신 인사다.

 

반면 신임 롯데지주 대표이사로 내정된 이동우 사장은 그룹 안팎에 존재감을 알렸던 전력이 많지 않아 우려가 뒤따른다. 2012년 롯데월드 대표이사 재임시절 조리사에게 폭언했던 사실이 2017년 여론에 알려졌던 사례 정도만이 대중들의 뇌리에 남아있다. 이런 이 사장을 두고 일각에서는 ‘황각규 사단’을 통솔할 만한 리더십을 갖췄는지 의문이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파격적인 임원인사에도 그룹 리더십 교체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여기에 롯데하이마트가 2017년 이후 실적부진을 거듭했다는 점도 이 사장에게 부담으로 남는다. 롯데하이마트는 2017년 매출 4조993억원, 영업이익 2075억원 등의 실적을 거둔 이후 줄곧 내리막을 걷다 지난해 매출 4조264억원, 영업이익 1099억원 등의 실적을 내는 데 그쳤다. 올해는 상반기 매출 2조410억원, 영업이익 888억원 등 실적으로 전년 대비 반등에 성공하긴 했다. 하지만 그룹 미래성장동력 확보를 명분으로 신임 롯데지주 대표이사에 내정된 인물의 활약치고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는 평가가 나온다.

 

[강주현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