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 사업이 한창 잘되고 있을 때였어요.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청년 네다섯 명이 제 가게를 찾았죠. 근데 한 청년이 아무 메뉴도 주문하지 않는 거예요. 그 청년을 슬쩍 살펴보니 물만 홀짝이고 있더라고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주문을 안 했구나 싶어 마음이 짠해지더라고요. 그래서 그 청년이 무안하지 않게끔 다른 친구들이 먹는 메뉴 하나를 더 만들어 가져다줬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부모 없이 할머니랑 단 둘이 사는 청년이더라고요. 그 청년이 얼마 전 군대에 갔는데 그날 제가 너무 고마웠다며 제 가게 떡볶이가 그렇게 먹고 싶다고 할머니께 울며 말하더래요. 그 얘기 듣고 어찌나 고마웠는지 저도 눈물이 다 나더라고요. 그 청년처럼 제 가게를 찾는 사람들이 분식을 먹으며 맛과 정을 느낄 수 있었으면 참 좋겠어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 국민에게 사랑받는 음식이 있다. 바로 분식집 단골 메뉴인 김밥, 라면, 떡볶이 등이다. 분식은 쉽고 간편하게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격도 저렴해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다. 소위 가성비가 좋아 양도 푸짐해 식사 대용으로도 손색이 없다. 우리 주변 어디서나 분식집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건 분식의 국민적 인기를 말해준다. 

소비자 입장에서야 분식집이 많은 게 언제든 원할 때마다 방문할 수 있다는 장점이 되겠지만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으로선 매우 염려되는 부분이다. 너무 경쟁이 치열해서다. 프랜차이즈 분식 브랜드도 여럿인데다 개인이 운영하는 경우도 매우 많다. 더구나 분식이란 게 누구나 잘 아는 맛이다 보니 조금만 맛이 없어도 금방 손님이 줄곤 한다. 이에 요식업계 중에서도 특히 맛을 잘 유지해야 하는 게 분식이다.

이러한 레드오션과 다름없는 분식업계에 과감히 뛰어든 사람이 있다. 요식업에서 일했던 것도 아니고 멀쩡히 다니던 직장에서 나와 분식집 사장이 되겠다고 도전한 지 5년 만에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맛있다고 입소문 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곽오숙 대표다.

곽 대표는 서울 성북구 보문동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분식집 ‘딸기하우스’의 사장이다. 모든 메뉴를 직접 만들어 마치 집밥을 연상케 하는 맛이 포인트다. 저렴한 가격에 양도 푸짐해 지역 주민들 사이에 맛집으로 정평이 났다. 그래서 곽 대표가 요식업계에 오래 종사한 것으로 착각하는 손님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곽 대표는 분식집을 운영한 지 올해로 6년 차에 불과하다. 사장 경력으로 치면 젊은 사장님인 셈이다.

“분식집을 하기 전엔 간호사로 23년을 일했어요. 희생하고 헌신하는 간호사라는 직업이 꽤나 멋지기도 했고 적성에도 맞았어요. 제가 배려심이 많고 친절한 편이거든요. 조금이나마 환자들이 덜 아프고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매사에 세심하게 신경 썼어요. 그렇게 성실하게 임한 것밖에 없는데 어느새 수간호사 자리에 올라 있더라고요. 당시 최연소 승진이었죠.”

맛과 서비스,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분업화와 전문화를 꾀하기로 한 곽 대표의 계획은 주효했다. 간호사를 그만 두고 분식집 사장으로 거듭나기까지 주어진 시간은 고작 두 달이 채 되지 않았던 만큼 직원 개개인이 각자 잘하는 것을 맡기로 한 전략은 곽 대표가 지역 맛집으로 빠르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사람을 관리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 없었어요. 하루는 시장에 들러 필요한 식재료를 사고 있는데 직원 한 명이 갑자기 당장 오늘부터 일을 할 수 없다고 통보를 하더라고요. 다른 직원 구할 때까지 도와달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못 한다고 딱 잘라 말하는데 눈앞이 캄캄해지는 거예요. 그 직원과의 통화가 끝났을 때가 아마 점심을 앞두고 있었을 시간이었을 거예요. 점심시간에 손님이 엄청나게 찾아올 텐데 당장 요리며 서빙이며 누가 하나 걱정이 되니 그저 눈물만 났죠.”

“비단 그 직원뿐만 아니라 별의별 이유로 갑작스럽게 그만두는 직원이 참 많았어요. 제가 분식집을 시작한 지 5년이 지나 이제 6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그동안 오고간 직원만 100여명은 족히 될 거예요. 그렇게 많은 직원을 만나면서 함께 성장해나가길 꿈꿨는데 사람이란 게 제 마음처럼 안 되더라고요.”

그러나 곽 대표는 짧은 시간이지만 수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이른바 ‘진국’인 사람을 볼 줄 아는 눈이 생겼다며 방긋 웃었다. 자기가 마음 놓고 가게를 비우더라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들을 드디어 찾았다고 했다. 곽 대표는 현재 일하는 직원들이 바로 진국이라며 그들과 함께 미래를 그려나가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분식집을 갓 열었을 때 길 건너편에 40년도 더 된 유명한 돈가스집이 있었어요. 제 가게는 파리만 날리는데 저 가게는 얼마나 맛있길래 사람들이 줄을 서 가며 먹나 싶어 시샘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했죠.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그 가게의 돈가스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 저 역시 줄서서 먹어 보기도 하고 제 메뉴에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밤을 새우며 연구했어요. 그렇게 메뉴를 수없이 개선해 나가면서 제 가게 만의 맛을 만들어나갔죠. 손님들이 제 노력을 알아주셨는지 두 달여가 지났을 땐 길 건너 돈가스집을 선호하던 사람들이 제 가게에 찾아와 맛있다고 엄지를 들어주시더라고요. 참 뿌듯했어요.”

“가게에서 판매하는 분식은 전부 제가 직접 개발한 메뉴들이에요. 유명 프랜차이즈 분식과 비교해서 전혀 밀리지도 않을뿐더러 더 맛있다고 칭찬받는 음식이 대부분이죠. 그래서 지금 함께하고 있는 직원들과 2호점을 낼 예정이에요. 조금씩 사업을 키워나가다 보면 어느샌가 분식업계에서 내로라 하는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사업을 시작하면서 주변의 반대와 수많은 시행착오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5년 전의 저처럼 지금의 저도 포기하지 않고 미래를 만들어나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