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서 지금까지 부르던 ‘프레지던트(President:주석)’라는 호칭을 거둬들이고 있다. 국민의 대표로서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통해 국가를 이끌어간다는 의미의 ‘프레지던트’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CNN은 9일(현지시간) 관련기사에서 시 주석이 현재 지니고 있는 타이틀이 너무 많아서 “아무 위원회 의장(Chairman of Everything)”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시 주석은 당 총서기, 국가주석, 중앙군사위 주석 외에도 10여개의 자리와 호칭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각종 최고위원회 수장을 차지하고 권력을 휘두르는 시 주석에게는 ‘프레지던트’라기 보다는 ‘독재자’ 혹은 ‘전제군주’와 같은 호칭이 더 어울린다는 것이 국제적 평가라고 CNN은 전했다.

 

미국에서는 ‘적 호칭 법안’ 정도로 번역이 되는 ‘Name the Enemy Act’라고 이름이 붙은 법안이 지난달 7일 공화당 소속 스콧 페리 하원의원에 의해 발의됐다. 법안의 내용은 연방정부의 공식 문건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수장을 칭하는 데 있어서 중국공산당중앙위원회 총서기(혹은 총서기)’ 이외의 호칭을 금한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미국 고위관리들이 공식석상에서 중국과 시 주석에 대한 호칭이 점차 바뀌고 있어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이 서로 상대국 영사관을 폐쇄하면서 양국 갈등이 최고조로 달했던 올해 7월 이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크리스토퍼 레이 연방수사국(FBI) 국장 등이 시 주석을 가리키면서 그동안 사용하던 ‘프레지던트(주석)’라는 표현 대신에 ‘총서기(General Secretary)’로 불러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시 주석 뿐 아니라 ‘차이나(중국)’을 부르는 호칭에도 변화가 포착됐다. 미 관리들이 ‘중국’ 대신에 ‘중국공산당(CCP)’이라는 칭호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국가 혹은 국민과 공산당을 분리해서 본다는 신호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같은 시 주석과 중국공산당에 대한 미 고위관리들의 호칭변화는 미중 갈등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면서 “시 주석 통치를 부당화하고 중국 공산당과 인민 사이의 틈을 벌리려는 의도가 깔린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미국 의원과 관리들이 시 주석에게 ‘프레지던트’라는 호칭을 거부한 이유는 ‘프레지던트’의 어원을 살펴보면 이해가 된다. 영어에서 ‘President’는 ‘회의 등을 주재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preside’와 같은 뿌리를 가진 단어로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 즉 ‘의장’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국민이 민주적으로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을 전제로 하는 ‘프레지던트’ 호칭을 쓰는 것은 그렇지 않은 시 주석에게 이 같은 전제를 인정해주는 꼴이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각국의 수장을 표현하는 호칭은 다양하다. 우리나라, 미국, 프랑스 등의 ‘대통령’을 비롯해 일본·영국·캐나다·호주 등은 ‘총리’, 대만은 ‘총통’이라 칭한다. 대통령과 총통은 영어로 ‘President’로 표현되고 총리는 ‘Prime Minister’이다.

 

그런데 ‘대통령’이란 표현은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호칭이다. 네이버 한자 사전을 보면 클 ‘대(大)’, 거느릴 ‘통(統)’, 거느릴 ‘령(領)’을 쓴다. 국민이 민주적 방식으로 권한을 부여한 대표로서의 ‘프레지던트’라는 원문의 의미와 동떨어진 뉘앙스를 지닌 단어를 민주주의 국가 원수의 호칭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고,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로 되어 있다. 모든 권력의 주인인 국민이 대표를 뽑아 그 권한을 양도했는데, 그 대표의 호칭이 ‘크게 거느리는 자’라는 뜻이어서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일설에 따르면 ‘대통령’이라는 호칭은 중국과 일본의 옛 무관 벼슬을 가리키는 ‘통령’에 ‘대(大)’를 붙여 만들어진 용어인데, 일본에서 미국 ‘프레지던트’를 지칭한 표현을 우리나라가 그대로 가져와서 쓴 것이라는 설명이다.

 

미국에서 중국의 시 주석에게 ‘프레지던트’라는 호칭이 맞지 않는다는 이의가 제기된 시점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제왕적 권력 이미지를 풍기는 ‘대통령’이라는 호칭에 대해서도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 해 우크라이나에서는 인기 드라마 ‘국민의 종’ 주인공을 맡았던 코미디언 출신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국민의 종’이란 정당을 창당해 출마에 나섰다.

 

국민이 대표를 뽑을 때는 민의를 대변하는 심부름꾼을 찾으려는 것이다. 국민 위에 군림하며 ‘크게 통치하는 자’가 아니라 ‘국민의 종’이라는 뜻을 가진 호칭이 이에 어울릴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