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팬데믹 시대에 국가와 산업 전반의 디지털화를 추진하는 ‘한국형 뉴딜(디지털 뉴딜+그린 뉴딜)’ 계획이 발표됐지만 정작 IT강국 한국은 인프라·특허를 제외하고는 모두 세계무대에서 뒤쳐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인공지능(AI) 시장이 빠르고 성장하고 있는 만큼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의 투자지원, 빈약한 인력풀, 규제에 막힌 산업여건 등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은 국가별 인공지능(AI) 수준을 비교한 ‘글로벌 AI 인덱스’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가 우수한 ICT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AI 산업 성장이 더딘 것으로 나타났다고 15일 밝혔다. 글로벌 AI 인덱스는 2월 세계경제포럼(WEF, World Economic Forum)에서 발표됐다. 여기서 우리나라의 AI 생태계 수준은 54개국 중 종합순위 8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세부 항목별로 살펴보면 총 7개 부문 중 인프라와 개발을 제외한 5개 부문에서 인덱스 점수는 중하위권 수준으로 나타났다. 특히 인재, 운영환경, 정부전략 및 벤처현황은 평균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7개 부문은 인재, 인프라, 운영환경, 연구수준, 개발, 정부전략, 벤처현황 등이다.

 

우리나라는 인프라 부문에서 84.9점으로 5위, 개발 부문에서 73.1점으로 3위를 기록했다. 인프라와 개발은 각각 △슈퍼컴퓨팅 역량, 네트워킹 인프라의 규모와 안정성 등 △오픈소스 인공지능 플랫폼 특허와 활동 수준, ISO AI위원회 현황, 혁신적 신제품과 프로세스 개발 등을 의미한다.

 

연구수준 분야에서는 22.4점으로 22위, 벤처현황에서는 3.3점으로 25위, 인재 부문에서는 11.4점으로 28위, 운영환경에서는 47.1점으로 30위, 정부전략에서는 23.1점으로 31위를 기록했다. 연구수준은 전문연구의 규모(논문 수)와 영향력(출판물 인용정도), 연구자들의 역량 등을 의미한다. 벤처현황은 AI 기반 스타트업, 벤처기업 수와 규모, 자금 지원 등 인공지능을 둘러싼 산업 환경이다. 인재와 운영환경, 정부전략은 각각 △AI 운용을 위한 전문인력 확보 및 역량 수준 △데이터 거버넌스 등 AI기술 구현에 용이한 규제환경, 비자처리 및 AI에 대한 신뢰와 대중의 인식 수준 등 △AI 관련 국가전략 내용과 발표, AI를 긴급성 있게 다루는 정부의 의지와 투자지원 계획 등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타격에도 불구하고 전세계 AI시장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 비춰보면 일련의 조사 결과는 상당한 우려를 동반한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IDC는 최근 전 세계 AI시장 규모를 2020년 총 1565억달러(한화 약 186조원)로 지난해에 비해 12.3% 증가할 것이며 2024년에는 3000억달러(한화 약 356조원)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같은 기관에서 발표한 한·중 AI시장 전망에 의하면 2023년 기준 중국은 119억달러(한화 14조원), 한국은 6400억원 규모 성장을 예상하면서 우리나라 AI 시장규모가 중국의 약 4.5%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예측했다.

 

전경련은 세계최초 5G 도입 등 우수한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산업성장이 더딘 첫째 이유로 정부 차원의 정책지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으로 지적했다. 일례로 2017년 중국은 ‘차세대 AI 발전계획’에 3년간 1000억위안(17조원)을 투자키로 한 반면 우리나라는 ‘AI 국가전략’에서 향후 10년간 1조3000억원의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우리나라가 내놓은 계획은 AI 선진국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관련 업계의 평가다. 최근 5G 산업 육성에 있어서도 우리 정부가 민간과 함께 투자하기로 한 30조원 역시 중국의 투자금액은 1조2000억위안(208조원)과 비교하면 규모의 차이가 현격히 드러난다.

 

우리나라 AI산업 성장에 있어 AI 인재도 부족한 것으로 지적된다. 전 세계적으로 AI 인재확보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미국은 기업 주도로 중국은 국가 주도로 AI인력 육성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글로벌 AI 인재 리포트 2019’에 의하면 2018년 세계 최고급 AI 인재 2만2400명 중 미국과 중국에서 각각 1만295명(46.0%), 2525명(11.3%)의 인재가 활동하는 반면 한국은 405명(1.8%)에 불과했다.

 

운영환경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영국은 유망기업에 대한 파격적 법인세 감면(28%→19%), 해외 인재유치를 위한 비자 규제를 완화 등 친기업적 환경 구축으로 세계 3대 유니콘 스타트업 보유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한국은 빅데이터 활용을 위해 데이터3법(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법, 정보통신망법)이 통과됐음에도 불구하고 가명정보 활용범위와 수준, 주체 등의 모호성, 단순 규정위반에도 형사처벌까지 적용하는 등 과도한 법적책임까지 데이터 활용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기업에 부담으로 남아있다.

 

김봉만 전경련 국제협력실장은 “올 한해 코로나19로 인해 글로벌 경제가 위축되며 산업 전반의 어려움에도 비대면 시대의 AI시장은 12.3% 성장이 전망되는 등 미래산업으로 주목받고 있으나 한국의 현주소는 생각보다 낮았다”고 지적했다.

 

이 김 실장은 “코로나로 인해 AI시장 성장 및 기존산업과의 융합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AI 선진국인 미국과 중국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기술경쟁력의 원천인 인재확보와 함께 빠르고 강력한 규제완화와 투자·세제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신산업 분야일수록 민관이 함께 뛰어야 성과가 나올 수 있다”며 “해외인재 영입 및 기업의 재교육, 산학협력 프로그램 등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미국은 AI 전문인력 수준과 인터넷·네트워크 등 인프라, 학술논문 등 연구수준과 벤처기업 규모와 투자기금 등 벤처현황에 이르기까지 총 4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영국은 데이터 규제 등 행정여건을 의미하는 운영환경 부문에서 중국은 특허와 신제품 등의 개발 부문과 정부 전략에서 각각 1위를 차지했다.

 

[강주현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