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농촌은… 노인만 마지못해 농사짓고 청년은 편의점 알바

인구 줄어드는 농촌, 벼농사 지을 농부 점차 감소
1000평 땅 벼농사에 손에 쥐는 돈 달랑 300만원
“후계농 상속공제 확대 등 농촌활성화 정책 시급”

문용균 기자(ykmoon@skyedaily.com)

기사입력 2020-09-21 00:07:00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지난해 국민의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부가 추진하는 농업·농촌정책에 만족한다는 농업인은 10%에 불과했다. 인구감소에 활력은 떨어지고 정부가 내놓는 대책들은 농민들이 처한 현실과는 동떨어진 게 많다는 이유였다. 개도국 지위 포기 결정을 내린 사실은 농업이 이미 정부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을 방증하는 결과로 분석되고 있다. 농촌과 지역, 나아가 국가경제의 한 축을 차지하는 농민들은 암울한 농업의 미래에 좌절감을 표출하고 있다. 전문가들 역시 정부가 농촌경제의 위기에 심각성을 인지하고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국가경제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힐 것이라고 지적한다. 스카이데일리가 금주 이슈포커스 주제로 ‘무너지는 농촌경제’로 정하고 농촌의 암울한 현실과 이를 해결할 대안 등을 세 편에 걸쳐 보도한다.

▲ 벼농사만으로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다. 농촌을 이끌어야할 젊은 농부들은 들이는 노동에 비해 손에 쥐는 것은 아주 적다고 말한다. 사진은 태풍 피해로 쓰러진 벼들 ⓒ스카이데일리

[특별취재팀=문용균 팀장|오주한·오창영 기자] 지난해 농민들은 정부가 발표한 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를 규탄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자신의 밥줄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움직임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수백만 농민의 생계위기를 외면한 정부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 담겨 있기도 했다.

현재 농촌에선 벼농사만으론 먹고 살기 힘들어 고강도의 노동을 감소하면서까지 다른 작물을 재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벼농사만으로 경제활동을 영위하려면 규모화·고급화가 필수이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한 농민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1년 내내 땀흘려도 손에 쥐는 것은 고작 300만원”… 편의점 알바 고민하는 농민들

통계청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등에 따르면 전국 농가인구는 1999년 421만명에서 2018년 231만5000명으로 줄었다. 지난해 추정치는 227만8000명으로 1년 전보다 더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올해 전망치는 전년보다 더욱 감소해 224만3000명으로 전망됐다. 농가인구는 2024년 208만1000명, 2029년은 191만5000명 등으로 꾸준히 감소할 것으로 관측됐다.

고령화도 심각하다. 65세 이상 농가인구 비율은 1999년 21.1%에서 2018년 44.7%로 2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 추정치는 45.5%에 달했다. 65세 이상 농가인구 비율은 올해 46.2%, 2024년 50.9%, 2029년 55.7% 등으로 꾸준히 상승할 것으로 전망됐다. 두 집에 한 집은 65세 이상 노인이이라는 의미다.

문제는 노인들이 점차 거동이 불편해지면 이들을 대신해 일할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인구 유입이 사실상 전무하다시피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농촌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새로운 인구 유입이 시급하지만 현재 상황에선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해결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노동 강도에 비해 돈벌이가 도시에 비해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충청북도 청주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권명중 청주시 4H연합회 회장은 “1000평에서 벼농사를 지어도 손에 쥐는 건 300만원이 채 안 된다”며 “피·땀 흘려 농사를 짓지만 도시 근로자가 벌어들이는 수입과 비교하면 정말 적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젊은 농업인들은 모이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자신들보다 나을 것이라고 신세한탄을 한다”며 “이것이 농업의 현실이다”고 토로했다. 그는 “만 18∼40세가 귀농 후 청년 창업농에 지원하면 월 최대 100만원의 영농정착지원금을 받을 수 있지만 많다고 사실 생계유지를 위해서는 턱없이 적은 금액이다”며 “누가 고작 100만원 때문에 힘든 농사일을 하겠나”고 꼬집었다.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그래픽=정의섭] ⓒ스카이데일리

권 씨는 “농촌경제를 떠받칠 주춧돌이 없다”며 “모판 작업 때 모인 사람들 중 젊은 사람은 나뿐이다”고 한탄했다. 이어 “뼈 빠지게 벼농사를 지어도 손에 쥐는 게 적으니 농민의 자녀들은 후계농이 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며 “결국 현재 농업에 종사 중인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 쌀을 해외에 의존하는 상황까지 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권 씨는 올해는 코로나 사태와 긴 장마·태풍으로 경제적 고충이 더욱 큰 데도 정부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견해도 보였다. 그는 “농업은 꾸준히 뒷전이다”며 “코로나가 확산되며 학교 급식을 통해 소비되던 쌀이 고스란히 남아 피해를 보고 있음에도 농업인을 위한 정부차원의 지원은 없다”고 토로했다.

농업에 종사 중인 강광선 씨(30대)도 정부가 농민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태풍에 쓰러진 벼는 수확하더라도 정부나 농협에서 수매를 받지 않는다”며 “농민이 자체적으로 팔 궁리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의치 않아 헐값에 방앗간에 넘기는 경우도 허다하다”며 “올해는 긴 장마와 태풍으로 경제적 손실이 막심하다”고 말했다.

수십년째 벼농사를 짓고 있는 김정환 씨(60대·가명)는 “쌀 가격은 다른 물가가 오르는 것과 비교해 많이 오르지 않았다”며 “농부 입장에선 의욕을 잃는 것도 사실이다”고 토로했다. 이어 “올핸 코로나다, 태풍이다… 산 넘어 산이다”고 덧붙였다.

이어 “국가에서도 스마트팜을 이야기하지만 벼농사는 빠져있는 것으로 안다”며 “기존의 농업인도 벼농사 대신 하우스에서 키울 수 있는 작물을 선택하는데 새로운 이들이 벼농사를 짓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식량안보가 송두리째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벼농사 대물림 없는 점이 가장 큰 문제… 상속공제 확대해 후계농 등장 유도해야”

농촌경제가 갈수록 위태로워지면서 벼농사를 짓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단체에선 정부 차원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이들은 식량안보 강화 차원에서라도 상속공제를 확대해 농사 노하우를 잇는 후계농이 다수 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임병희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스카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벼농사는 사실 신규 농업인이 진입하기 어려운 분야다”며 “단위 면적당 소득률이 낮아 밥벌이가 쉽지 않고 가장 필요한 이양기, 트렉터, 콤바인 등이 기본 1~2억원으로 고가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임 총장은 “이 때문에 후계농 육성이 중요하다”며 “상속공제, 후계농 육성자금 등이 있지만 아직까지 후계농이 늘어나는 게 요원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상속공제가 절대적으로 확대돼야 한다”며 “일반적인 중소기업은 공제 규모가 200억원이 넘어가는데 반해 농업 분야는 15억원으로 농지, 농기계, 농가가옥 등을 전부 포함했을 때 너무 적다”고 강조했다.

그는 벼농사의 더 많은 수익창출과 관련해선 “맛있는 쌀은 물론 당뇨 예방 쌀, 아이큐 발달에 도움되는 쌀 등 특화된 기능성 쌀들을 재배해 가격을 높여야 한다”며 “물론 국민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부 차원의 캠페인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종인 박사는 “젊은 세대가 점점 더 쌀을 먹지 않으면서 소비량 역시 점점 줄고 있다”며 “심지어 밥을 지어먹는 행위가 특별한 때로 한정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끼니를 해결하는 식이 아니라 조금 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쌀을 사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며 “쌀의 브랜드화가 벼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경제생활 영위를 지속시키는 한 가지 방편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벼 농가가 일정 수준으로 규모화되도록 유도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다”며 “그렇게 되면 생산비가 떨어져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농과 가격 경쟁이 어려운 소농은 고급화 전략을 내세울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당장은 아니겠지만 중장기적으로 개도국 지위 포기의 영향이 있을 것이다”며 “생산자 단체나 농민 개개인이 수급조절을 통해 공급량을 조절해 값을 자체적으로 유지하려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