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성 없는 전 방위 돈풀기를 멈추지 않아 온 무책임한 재정확장 포퓰리즘이 끝내 국가경제의 마지막 보루인 금융권을 흔들고 있어 자칫 금융대란으로 확대될 재앙의 전조가 보인다. 국가경제 위기의 전조가 금융권에서 드러나면 회복하기 힘든 파국을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예의 심각한 국면임에도 금융당국은 눈앞의 위기만 피하면 된다는 식의 역주행 기어를 넣고 있다.

 

신호탄은 금융사령탑 금융위원회가 쏘았다. 손병두 부위원장이 금융리스크 대응반 회의에서 금융권의 신용대출 증가를 막을 사인을 보내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민간기관인 금융감독원이 곧바로 행동에 착 들어갔다. 금감원은 정부조직과는 독립된 특수법인임에도 마치 금융위 수족처럼 움직이며 사실상 총대를 자청해서 멨다.

 

코로나 위기의 시대에 정부주도로 서민 돈줄을 조이는 정책을 보란 듯이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은 절묘한 방식으로 ‘신용대출 키’를 적폐청산 대상이라던 관치의 운전대로 잡았다. 신용대출을 옥죄면 서민들의 생활자금 수요까지 억제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 뻔하기에 금융위의 비겁한 리모트 컨트롤은 금융권의 희생을 강요하는 보이지 않는 관치의 부활과 다름없다. 그 모양새가 치졸하다.

 

고신용·고소득 신용대출을 축소하라는 ‘핀셋 지휘’는 예대차에 목숨을 건 금융권을 향해 우량고객일수록 홀대하라는 주문과 다르지 않다. 추상같은 관치가 두려운 금융기관이 선택지가 없어 불가피하게 신용이 좋은 고객일수록 이자를 더 많이 내도록 하거나 대출한도를 줄인다면 도무지 말이 되지를 않는다.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역대급 역차별이다. 이는 금융기관 위기까지 부추겨 종국에는 금융 전반의 위기를 조장하고 만다.

 

정부가 의도하는 핀셋 해법은 한마디로 이상주의다. 아니면 순간의 통증을 치료하려다 몸 전체를 망가뜨리는 스테로이드 해법이다. 실제로 금감원이 5대 시중은행과 카카오뱅크에 신용대출 축소 계획을 주문하자 놀란 국민들은 신용대출 ‘막차 타자’ 행렬로 대거 몰려들었다. 대출 가수요까지 폭발하면서 대출 사재기란 말이 등장했을 정도다. 이런 현상은 금융권이 향후 우량·비우량을 막론하고 고객 전체를 대상으로 금리인상과 한도축소를 하는 카드를 잡을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준다.  

 

그것을 반증하듯 지금 금융권에서는 그야말로 ‘패닉 대출’ 현상이 확산일로다. 금감원의 신용대출 억제대책 주문 이후 단 3일간 1조1200억원의 신용대출이 늘어났다. 5대 시중은행 마이너스 대출의 경우는 역시 금감원의 ‘통보 이후’ 폭증했다. 단 4일간 신규약정이 8000억원 가까이에 달해 직전 일주일간에 비해 두 배나 불어났다.

 

결국 빈곤의 확산이 기정사실화 될 조짐이다. 제1금융권의 대출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제2금융권에서 풍선효과가 나타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위기의 자영업자 등 서민들은 돈줄에 말라죽기보다 높아진 이자 위기를 감수해야 할 처지에 빠졌다. 정부가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옥죄는 방식으로 집값 인상을 막고자 했지만 오히려 천정부지로 더 오르자 신용대출 탈출구까지 막겠다는 발상이 서민을 더 힘들게 하는 결과를 빚고 있는 셈이다.

 

현재 5대 시중은행 신용대출 금리는 1.85∼3.75% 수준이다. 은행권은 이 금리에서 개별적인 우대금리를 조정하는 식으로 대출 문턱을 높이는 방식을 최우선 고민하고 있다. 우대금리는 통상 0.6%~1%까지 적용돼 왔지만 앞으로 1%대 신용대출 금리가 사라지면 서민들은 그야말로 이판사판 막다른 지경에 처한다. 영혼까지 끌어 모은 대책없는 ‘영끌’ 대출이 더 극성을 부릴 수 있다는 의미다.

 

신용대출은 그렇지 않아도 경제위기를 타고 급격히 증가해 오던 차였다. 5대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추이만 봐도 7월 120조원에서 8월말 124조원으로 급증한데 이어 이달 10일에는 125조원까지 증가했다. 이어 금감원이 신용대출 제한 깃발을 든 이달 14일 이후 신용대출은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증가 중이다. 가수요가 가수요를 부르면서 국민적 빚잔치가 벌어지고 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의 신용대출 총량규제가 부동산 투기수요 억제보다는 내막적으로 금융위기를 직감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있다. 기업과 자영업자들의 무차별 도산과 폐업이 이어지면서 금융권 잠재부실이 날로 커지고 있는 것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금융위기가 닥치면 모든 것이 끝장이라고 판단한 당국이 은행들에 잠재부실을 숨겨달라는 ‘관치 분식’까지 주문한 것으로 알려지자 금융권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금융당국의 핀셋규제 미세조정 방정식은 현 금융기관 여건과 시장 시스템 등을 감안하면 푸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정부가 심각한 오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근본 해법은 기업의 위기를 구제하는데 있음을 모두가 안다. 궁극의 대책은 억척스럽게 제쳐 놓고 오히려 기업의 사지를 잡는 반기업 규제만 쏟아내는 상황에서 수백조 뿌려지는 혈세는 서민과 금융기관 모두를 동시에 위기로 몰아넣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다.

 

올들어 2월 이후 소상공인 대상 금융권 지원 프로그램인 대출과 보증이 200만건을 넘어서고 지원액도 무려 200조원에 달한다. 코로나 사태가 날로 엄중해 지면서 소상공인들의 자금수요는 더 넘치지만 이젠 금융권마저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대출회수가 날로 어려워지는 고객이 늘면서 넘치는 유동성이 시한폭탄이다. 위기의 금융대란이 재깍재깍 닥치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임시땜질 정책인 신용대출 대증요법을 금융권에까지 주문하는 용기가 기막힌다.

 

무계획적으로 마구 뿌려댄 돈의 가공할 역습은 본래 용서가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반드시 빈곤의 대재앙을 몰고 온다. 지금이 딱 그와 같다. 누군가의 피와 땀이 서린 돈을 마구 뿌린 결과 사회 전체가 돈의 소중함을 망각해 가고 있다. 저마다의 내가 갖고 있는 근면한 근로의식이 바로 돈을 매개로 한 상호 신뢰의 사슬이다. 그렇게 쌓여 나오는 부가가치(富)에 공동체 정신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음을 국민들이 잊어가고 있다.

 

해법은 국회에서 슈퍼의사봉의 통과의례를 기다리고 있는 기업규제 3법만이라도 우선 여당이 전향적으로 재고하거나 야당과 논의하는데 있다. 이들 법안은 누가 봐도 한국경제 밥솥을 책임진 경영인들의 족쇄를 채우는 전무후무한 융단폭격이다. 전경련·경총 등이 국민의힘 김종인 위원장에게 연일 호소하고 있는 가운데 김 위원장은 여당과 국민의당 대표에게 릴레이 호소를 이어간다. 여당이 이를 무시하고 강행하면 기업들은 금융위기를 폭발시킬 신관으로 변한다.

 

 

그릇된 것을 깨뜨리려 하는 권력의 정의감은 역사적으로 거의 대부분 정의롭지 못한 그릇됨을 자가발전 하고 결국 사악해져 몰락했다. 현재 우리에게 국가위기의 마지막 사이렌인 금융부문의 대란을 알리는 초침이 재깍거리고 있는 것은 그런 상황을 알려주는 반증이다. 참혹한 정치적 범죄가 결국 금융부문에서 드러나고 있다. 지금이라도 그 시계를 언제든 멈출 수 있다는 것을 모르거나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 공포 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