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면은 부산을 대표하는 향토음식 중 하나다. 밀가루에 전분을 섞어 만든 면을 사용하는 밀면은 1950년 6·25 전쟁 당시 탄생해 반세기 넘게 식도락가들과 서민들의 입맛을 책임진 별미로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밀면의 탄생은 부산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전쟁통에 너나할 것 없이 배고프던 시절 미국이 대량으로 원조한 밀가루는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그 가운데 냉면의 고장 평양 등에서 대한민국으로 월남한 실향민들은 1·4 후퇴 당시 부산으로 내려와 메밀 대신 밀가루를 이용한 냉면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이 냉면이 전후 부산시민들의 입맛에 맞게 점차 변화해 자리 잡은 것이 바로 밀면이다.

 

전국 팔도의 모든 산해진미가 집결하는 인구 1000만의 대도시 서울에서 부산밀면으로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어 시민의 입맛을 평정한 이가 있다. 사업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어려운 이웃을 위한 손길도 마다하지 않는 청년사업가 김서은 대박가야밀면 대표가 주인공이다.

 

 

“밀면을 워낙 좋아해요. 여기 서울에서는 파는 곳이 없어서 편안하게 먹을 데가 없을까 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내가 해서 실컷 먹자’ 해서 가게를 열었어요. ‘그래, 나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니까 해보자’ 해서 도전하게 됐죠. 밀면을 얼마나 좋아했냐면 사업 준비를 안 할 때도 하루에 한 끼는 꼭 먹었어요. 사업을 하자고 마음먹은 이후로는 하루에 두 끼, 많으면 세 끼를 먹었죠. 그만큼 밀면을 좋아해요.”

 

서울 서초구의 매장에서 만난 김 대표의 첫 인상은 부산밀면의 깔끔한 맛과도 일맥상통했다. 그의 가게는 코로나 여파로 요식업계 불황이 극심한 가운데도 손님들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육수부터 면까지 일일이 직접 만들어 손님들께 대접한다는 김 대표는 바쁜 와중에도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 꾸밈없고 솔직담백하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놨다.

 

김 대표는 부산토박이다. 동구 수정동에서 태어난 그는 해운대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다가 약관의 나이에 서울로 상경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이모의 도움으로 중국에서 반려견을 수입해 국내에 유통시키는 무역업을 했다는 그는 사업아이템을 바꾼 계기를 묻는 첫 질문부터 부산밀면에 대한 ‘무한사랑’을 드러냈다.

 

“밀면을 정말 많이 먹었는데 질리지가 않았어요. 서울에선 전문점을 찾기 어려우니 내가 차리자고 시작했는데 어느 날 한 손님이 밀면을 보고 ‘이게 뭐예요?’ 물으시더라고요. 그 때 밀면을 알려야겠다는 욕심이 생겼죠. 서울시민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그런 욕심이었어요. 서울엔 부산밀면을 모르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하다 보니 욕심이 생긴 셈이죠. 욕심이라는 건 무서워요.”

 

실제로 서울에서 밀면은 부산 출신이 아닌 이들에게는 생소한 음식이다. 돼지국밥 등 다른 부산향토음식은 미디어 등의 영향으로 서울에도 입소문이 퍼져 지금은 전문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지만 밀면은 그렇지 않다. 낯설어 하는 서울시민들에게 밀면 소개를 청하자 김 대표는 막힘없이 설명을 시작했다.

 

“밀면은 냉면과는 육수도 다르고 면발도 달라요. 밀면 육수엔 닭발과 양지 등 여러 가지가 들어가죠. 부산에서는 어느 매장을 가든 각자 노하우가 있어요. 밀면의 매력이라면 시원한 맛이죠. 밀면은 끌림이라는 게 있어요. 그리고 깔끔함도 있죠. 부산사람들의 소울푸드라고 할 수 있어요.”

 

 

“손님들 반응이 좋은 이유는 맛의 솔직함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말 그대로 손님들은 맛을 보시면 그냥 그대로 아시잖아요. 첨부하지 않은 솔직함을 말이죠. 순수함 그대로 집에서 만든 깔끔한 맛이라고나 할까요. 말 그대로 추가하지 않은 깔끔한 맛이라고 다들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김 대표는 지금의 맛을 만들기까지 밤잠을 설쳐가면서 연구에 매진했다고 했다. 요식업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속된 말로 ‘맨 땅에 헤딩’을 해가면서 사업을 시작했다는 그는 지금도 재료 준비는 물론이고 요리 공부를 위해 수면시간을 줄였다고 했다.

 

“어려웠던 순간이 너무 많았어요. 음식점을 하는 건 처음이라서 뭐가 뭔지도 모르고 순서도 몰랐죠. 하다못해 오이 고르는 방법이나 식기 고르는 방법도 다 어려웠어요. 조금씩 배워가면서 자리 잡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죠. 잠도 2시간을 자거나 아예 날을 새곤 했죠. 솔직히 처음엔 정말 걱정됐어요. 그런데 나이 어린 사람이 전문점을 한다고 뭐라고 하실 줄 알았는데 반응이 너무 좋아서 자신감이 생기고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남녀노소 모두 좋아하세요. 더 좋은 맛을 위해 지금도 평소에 3~4시간씩 자요. 오늘까지는 3일 연속으로 잠을 못 잤어요.”

 

 

서울에서 ‘밀면전도사’로 유명한 김 대표에게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고 했다. 바로 어려운 이웃을 위한 봉사다. 그는 사업 과정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순간을 묻자 망설임 없이 손님들의 긍정적인 반응과 함께 불우이웃 돕기를 꼽았다.

 

“손님들이 다 드시고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할 때 너무 행복해요. 어떤 손님은 ‘여기에 있지 말고 너무 아까우니 조금 더 번화가로 나가서 밀면을 알리시는 게 어때요’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극찬하시니 너무 감사했죠. 또 하나는 어려운 이웃 분들을 돕는 거예요. 사정이 어려우신 분이 오면 면을 더 챙겨드리거나 하죠. 불우이웃을 돕는 캠페인에도 참여하고 있는데 제가 만든 밀면으로 그분들이 힘을 내실 수 있다는 것도 너무 감사해요.”

 

김 대표는 구체적으로 어떤 캠페인인지를 묻자 “그러면 생색내는 것 같다”며 끝내 고개를 내저었다. 홍보를 위해서라면 없는 업적도 만드는 세태라지만 김 대표는 어려운 시절 탄생해 오랜 시간 서민들의 소중한 한 끼를 책임져온 부산밀면의 소박함을 닮은 면이 있었다.

 

그는 부산밀면 요리법은 물론 역사도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부산밀면을 알리기 위해서는 본인이 먼저 밀면의 모든 것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느 순간부터 밀면은 어떤 것이라고 손님들에게 설명하게 되고 더 공부하게 되더라”고 말한 김 대표의 매장에는 실제로 부산밀면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기록한 설명문이 붙어 있었다. 부산밀면에 대한 김 대표의 고집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웃음을 잃지 않는 늘 밝은 인상의 김 대표였지만 그는 힘든 점도 있다고 했다. 요식업이라는 것이 다량의 재료로 다량의 음식을 쉴 새 없이 만들어 대접해야 하는 일이기에 강한 체력과 근력을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그 때문에 남성이 주방을 맡는 게 일반적이지만 김 대표는 그런 점에서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이런 일이 쉽지 않은데 여기에 공감하시는 손님도 있어요. ‘밀면 자체가 힘든 일인데 어떻게 여자가 이런 일 할 생각을 했나’ 하시더라고요. 실제로 면 뽑고 육수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만만치 않아요. 특히 재료 등 무거운 것을 들어야 할 일이 많죠. 그래도 의무감 하나로 피로를 잊고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김 대표에게 힘든 점은 이뿐만이 아니라고 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와 최저임금, 전반적인 경기침체 등의 영향으로 요식업계도 큰 타격을 받고 있다. 16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8월 우리나라의 식료품 및 비주류음료 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6.6％나 상승해 OECD 22개 회원국 중 3위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했다. 식자재 비용 등이 대폭 상승하자 손님이 많은데도 정작 매장 운영에는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이 김 대표 설명이었다.

 

“정부 정책에서 아쉬운 점은 많아요. 그런 것 생각을 많이 하면 머리가 많이 아프죠. 레시피 연구하는 것도 골머리가 아픈데 정부까지 저렇게 하니 솔직히 가게 문을 닫아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제가 매장에 TV를 설치하고도 안 보는 이유가 스트레스 때문이예요. 안 보는 게 좋아요. 모르는 게 약이죠. 힘들지만 찾아주시는 손님들을 떠올리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요.”

 

 

“변함없이 그대로, 한결 같은 마음으로 할 생각이예요. 여기에서 맛이 변하면 찾으시는 분들이 실망하실 것 같아요. 열심히 잘 하겠다기보다는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도 로봇이 아니라서 간혹 실수가 있을 때가 있지만 최선을 다하는 대박가야밀면 김서은이 되고 싶어요. 제가 요리장인은 아니지만 밀면을 끝까지 알릴 거예요.”

김 대표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더 좋은 맛으로 손님들에게 다가가고 더 많은 불우이웃을 돕고 싶다고 했다. 그가 근래 3일 동안 잠을 설친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겨울철 음식 레시피 때문에 잠을 못 잤어요. 준비하는 신메뉴는 단순하게 ‘온밀면’이예요. 말 그대로 따뜻한 밀면이죠. 그런데 육수를 얼마나 데워야 좋은 맛이 나는지 알아야 하고 테스트도 많이 해야 해서 잠을 설쳤죠. 만둣국과 떡만둣국도 생각 중인데 좋은 쌀도 골라야 하고 거기에 맞는 반찬도 마련해야 해서 정신이 없어요. 온밀면을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지만 저는 할 거예요. 따뜻한 면을 원하시는 분들도 있잖아요.”

 

[오주한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