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제가 존경하는 명창이신 성창순 선생님의 소리를 흉내 내면서 판소리에 감정을 실어 표현하는 연습을 했어요. 이제는 저만의 감정을 판소리에 잘 표현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저의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하니까요. 제가 좋아하는 일이 판소리라 행복해요. 누구보다 건강하게 전문 소리꾼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도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9월 어느 오후에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에 위치한 한 연습실에서 기자일행과 만난 프로 국악인 어연경 씨(40)는 25년째 국악계에서 자신만의 음악을 보여주면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소리꾼이다.

 

2006년 제7회 ‘영광법성포단오제’ 전국국악경연대회 명창부 국무총리상 수상을 시작으로 2011년 제21회 KBS전국 국악대경연 은상, 같은해 제12회 공주 박동진 판소리 명창명고대회 명창부 최우수상 등의 수상 이력이 그의 꾸준한 노력을 대변해준다. 2014년에는 기획공연인 민속극장 풍류 ‘득음’ 공연, 2015년 남산골한옥마을 기획공연 ‘판의소리 문파전’, 어연경 ‘심청가’ 완창 판소리를 발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는 어 씨가 밟아온 자취에 대해 들어봤다.

 

“제가 처음 판소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9살 때 할머니께서 틀어놓으신 판소리 테이프 소리를 듣고 우리 국악에 관심이 생기게 된 거예요. 그 당시에 들었던 창극 ‘사랑가’를 듣고 너무 좋아서 가사를 쓰고 따라 부르곤 했는데 그 음악이 바로 지금은 돌아가신 저의 참 스승이신 명창 소정 성창순 선생님의 소리였어요.”

 

“IMF로 인해 가정형편이 조금 힘들었지만 중3 때 부모님께 판소리를 배우고 싶어서 학원을 보내달라고 말씀드렸요. ‘사철가’와 ‘사랑가’를 열심히 배워서 서울 국악예술고등학교를 들어가게 됐고, 제가 평생 존경하는 스승인 성창순 선생님을 17세에 만나 제자가 됐어요. 선생님께서는 3년 전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셨죠.”

 

25년 넘게 판소리에만 매진하며 왕성하게 활동하고있는 실력파 국악인

 

어 씨는 16세에 처음으로 판소리를 시작해 25년간 판소리를 배우면서 처음에는 어렵고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해서 국악인으로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가 국악인으로 꾸준히 활동할 수 있게 옆에서 많은 도움을 주신 평생 스승 소정 성창순 선생님과의 인연이 가장 중요한 고리였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스승에 대해서 소개해달라고 하자 어 씨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돌아가신지 3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많이 생각나는 분이라고 했다.

 

“저에게 소정 성창순 선생님은 어린 시절 제가 들었던 첫 번째 소리이기도 했었죠. 처음에 판소리를 잘 못했을 때는 선생님에게 많이 혼나기도 했어요. 20년 넘게 선생님께 배우면서 판소리에 대한 기본 기술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제가 한없이 부족했던 제자였지만 제가 할 수 있는 판소리를 원없이 할 수 있게 누구보다 많이 격려도 해주시고 저를 많이 믿어주셨어요. 판소리를 잘 할 수 있게 잘 가르쳐주시고 따뜻하게 해주신 어머니 같은 성창순 선생님이 그리워요. 두 아이의 엄마가 됐지만 제가 지금도 국악인으로 열심히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성창순 선생님께서 잘 가르쳐주신 덕분이에요.” 

“판소리 영화 중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본 작품이 ‘서편제’ ‘천년학’이고 영화 ‘소리꾼’은 성창순 선생님한테 동문수학한 동생인 봉근이가 주연으로 나와서 인상적으로 봤죠. 실제로도 정말 착하고 판소리를 열심히 하는 동생인데 영화에서 보니까 반갑기도 하고 새롭기도 했어요. 영화에서 보여줬던 소리는 봉근이가 연기하는 소리가 아니라 주인공 심학규가 돼서 소리를 보여준 게 아닌가 생각해요. 영화에서 보여준 봉근이의 연기는 정말 최고였다고 생각해요. 제가 잘하는 심청가가 영화에 많이 나와서 정말 반가웠고, 진정한 판소리의 매력을 느끼게 해준 좋은 영화였다고 생각해요.”

 

어 씨는 국악인으로서 국내활동을 넘어 해외에서도 많은 공연을 통해 우리나라 전통 음악인 판소리의 매력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2017년에만 영국 에딘버러 페스티벌 Zoo southside ‘After4(사후)’ 공연, 주 워싱턴 대한민국대사관 한국문화원 ‘메릴랜드 케네디 센터’ 공연, 주 터키 대한민국대사관 한국문화원 앙카라, 이즈미르 공연 등을 했다. 이듬해에는 돈화문국악당 수어지교 춤을 부르는 판소리 ‘편지’, 서대문 독립민주 축제 ‘역사콘서트’ 등 다양한 공연을 했으며 그해 21회 서편제보성소리축제 전국 판소리 경연대회 명창부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 심청가의 ‘눈뜨는 대목’을 부르며 심사위원들과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우리 판소리가 국내에서도 많이 사랑받고 외국에서도 판소리에 대한 관심이 꽤 많아서 말이 안 통해도 판소리의 매력을 잘 알아보는 게 국악인으로서 정말 신기했죠. 에딘버러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했을 때는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리고 외국에서 공연할 때는 관객의 반응이 좋을 때 정말 행복하죠.”

 

어 씨는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는 스승에게서 배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어릴 때는 그 말씀이 무슨 말인지 잘 몰랐지만 이제는 마음에 와닿는다면서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으려면 오랜 세월 굳은 신념으로 한 분야에서 부단히 노력하고 중간에서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창순 선생님의 소리를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선생님의 추모공연을 매년 준비하고 있어요. 그 다음에는 저만의 스타일을 찾고 싶어요. 성창순 선생님의 소리를 연구하고 싶어서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선생님의 소리를 논문으로 쓰고 있어요. 옛날 명창들의 소리로 듣고 저만의 소리도 생각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활동을 해야 할까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전통을 지키며 변질되지 않으면서 저 어연경만의 목소리로 색깔을 내는 음악을 잘 만들어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