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적 열정 하나로 최고의 록밴드로 거듭났죠”

▲트랜스픽션은 2000년 동갑내기 친구들로 결성돼 다양한 음악, 월드컵 응원가 등을 발표하며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메인보컬 해랑**(사진)**은 자신이 꿈이 있어서 음악을 이끈 것이 아니라 음악이 자신을 이끌었다고 밝혔다. [사진=최원우 기자]

“트랜스픽션의 매력은 겉으로 봤을 때 굉장히 파워풀해 보이고 강렬한 음악적 색채를 띤 것 같지만 대중이 노래를 따라 부르기 쉽다는 장점이 있어요. 대중에 알려지기까지 수많은 시련과 좌절이 있었죠. 앞으로 저희 그룹은 음악적 열정을 가지고 멤버들이 할아버지가 돼서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에어로 스미스나 롤링스톤스 같은 팀으로 남는 것이 목표예요.”

2000년 동갑내기 친구들로 결성된 ‘트랜스픽션’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록밴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2년 1집을 발표하며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했고 1집 타이틀곡 ‘내게 돌아와’로 공중파 방송에 출연하며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그 후 2006년 독일월드컵 당시 월드컵 응원가 ‘승리를 위하여’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아울러 2000년대 중반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온라인 게임 ‘피파온라인’의 O.S.T를 통해 2030세대에 익숙한 그룹이다.

특히 2018년 러시아월드컵 ‘카잔의 기적’이라고 불렸던 조별리그 3차전에서 당시 FIFA랭킹 1위였던 독일을 상대로 손흥민 선수가 쐐기골을 넣은 뒤 경기장 내부에서 ‘승리를 위하여’가 울려 퍼졌을땐 전 국민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천부적인 재능보다 피땀 어린 노력… “막연히 음악에 이끌려 시작”

유독 길었던 장마와 더위가 한풀 꺾이고 본격적인 가을이 찾아왔다. 9월의 어느 날 홍대입구역 인근 카페에서 록밴드 트랜스픽션의 메인보컬 ‘해랑’(최희준·45)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기자일행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강해보이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겸허한 태도와 어투, 자세 등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가짐이 몸에 밴 듯했다. 최 씨는 음악을 할 수 있었던 계기,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에피소드와 겪었던 시련과 고난 그리고 앞으로의 포부 등을 조목조목 풀어나갔다.

“1987년도쯤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저희 누나가 여러 아티스트의 팝송 뮤직비디오가 담긴 비디오테이프 영상을 집에 갖고 온 적이 있었어요. 그 당시 뭔가 헤비메탈인 ‘본 조비’나 ‘건즈 앤 로지스’ 같은 가수들을 바라보는 것만 해도 기분이 좋고 벅차더라고요. 그러다가 중학교 입학 후 갑작스럽게 집안이 기울어지기 시작했어요. 이 때문에 기분이 우울해지면서 기댈 곳이 필요했었는데 그게 바로 록음악이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스쿨밴드를 결성했죠. 같이 활동했던 친구들은 대학을 가면서 그만두기도 했지만 저는 계속 남아서 하게 됐어요.”

“1995년도에 배철수 선배님께서 진행하신 ‘MBC Rock음악제’가 있어요. 거기에 전국에서 수백팀이 왔는데 제가 당당히 입상을 하고 음반 녹음도 했죠. 특별히 가수의 꿈을 꿨다기보다는 다른 사람들보다 음악을 더 많이 들으면서 막연히 음악이 이끄는 대로 시작하게 된 거라고 볼 수 있어요.”

▲해랑**(사진)**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배경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면서 인디밴드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1집 앨범을 내기까지 무려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밝혔다. ⓒ스카이데일리

해랑은 음악적 재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선천적·후천적 재능을 따지기보다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음악을 남들보다 더 많이 듣고 불렀다고 말했다. 또한 노래보다는 평범하지 않은 서구적인 외모의 이미지가 본인만의 개성이라고 밝히면서 트랜스픽션만의 매력을 한껏 뽐내기도 했다.

“데뷔했을 때 노래보다는 범상치 않은 외모로 사람들이 봤을 때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어요. 그 전에도 제가 그런 이미지로 홍대 바닥에서 유명했거든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변하고 패션이나 문화가 발달해 다양한 사람이 존재해서 많이 순화된 편이죠. 또 저희의 파워풀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노래가 부르기 쉽고 대중적이라는 장점이 있다고 봐요.”

“요즘에도 나이 어린 친구들이 저희 노래를 다 알더라고요. 지난해쯤 공연 페스티벌을 하는데 다 같이 노래를 부르니까 굳이 노래를 할 필요가 없었어요. 그런 점이 저희 그룹의 매력이라고 봐요. 사람들이 쉽게 따라부를 수 있어서 다른 록밴드보다 대중적인 것 같아요.”

총망라한 5집 앨범 발매 목표… “죽을 때까지 무대 위서 공연할 것”

그러나 이러한 음악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시련이 찾아오기도 했다. 밴드 자체가 인디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1집 앨범을 내기까지 무려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더군다나 노래를 만들었지만 차일피일 미뤄졌고 3년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활동을 못했다고 전했다.

“1집 때 나름 히트는 잘됐지만 소속사 문제로 회사를 나오게 됐어요. 그 뒤 다른 회사로 들어가면서 잘될 줄 알았지만 그마저도 녹록지 못한 상황이었죠. 2집을 내기 직전 새로운 회사에 들어갔는데 거의 방치 수준이었어요. 노래는 만들었는데 계속 미뤄지다가 거의 3년 6개월을 저희 의지랑 상관없이 활동을 중단하게 됐고 그때 엄청난 좌절을 겪었죠.”

“정말 하루아침에 밑바닥으로 떨어진 느낌이었어요. 우여곡절 끝에 2집을 겨우 만들었고 전에 나왔던 회사와 화해해서 다시 거기로 들어갔죠. 그러면서 다시 의기투합해서 2집을 완성했어요. 개인적으로 2집 앨범이 마스터피스(Master Piece)처럼 저의 인생이 다 들어가 있고 제일 많이 노력했던 음반인 것 같아요.”

▲해랑은 이러한 음악적 성공의 원동력으로 서구적인 록음악을 어떻게 한국화할까 고민하고 수없이 연구했다고 전했다. 끝으로 에어로 스미스, 롤링스톤스 등 해외밴드처럼 할아버지가 돼서도 공연을 이어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사진은 트랜스픽션 공연 모습. [사진제공=해랑]

“가사도 그렇고 개인적인 괴로움이 다 녹아있어요. 그런데 2집 발매를 했는데 하필 그때 음반시대가 가버렸죠. 그 바람에 CD가 안 팔리고 ‘싸이월드’가 인기를 끌면서 시스템 자체가 변했어요. 안 그래도 오랫동안 쉰 터라 다시 좌절에 빠졌죠.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는데 평가를 받지 못했으니까요. 그런데 마침 2006년 독일 월드컵과 맞물렸어요. 저흰 월드컵과 상관이 없는 팀이었는데 월드컵 응원 컴필레이션 앨범에 우연히 저희 노래가 실렸어요. 그 노래가 대중에 익숙한, 2018년 러시아월드컵 독일과의 조별예선 3차전 이후 울려퍼진 ‘승리를 위하여’였어요. 사실 그게 히트할지 전혀 생각을 못했죠. 컴필레이션 앨범의 메인 팀도 아니었거든요.”

해랑은 이러한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한 원동력을 서구적인 록음악을 어떻게 하면 한국화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수없이 연구한 것이라고 밝혔다.

“록음악이 따지고 보면 서구음악이잖아요. 그런 음악을 어떻게 한국화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죠. 영어로 부르면 멋있을 수 있지만 대중화가 되거나 주류음악이 되지는 않았죠.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좀 더 대중적으로 록음악들이 불릴 수 있을까 유달리 연구를 많이 했어요. 그리고 저희를 이 자리까지 올 수 있게 만들어준 붉은악마의 영향력도 한 몫 했던 것 같아요.”

해랑은 끝으로 죽을 때까지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하고 싶다는 다짐을 밝혔다. 또 20년이란 짧지 않은 음악 경력 치고는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크라잉넛이나 체리필터 등에 비해 공식음반이 적어 겨우 4장밖에 안 된다면서 앞으로 트랜스픽션의 모든 것을 망라한 5집 앨범을 내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트랜스픽션을 결성한 지 올해로 20년이 됐는데 사실 어떻게 흘러왔는지 잘 모르겠어요. 저희 멤버들 다 동갑이고 그 사이에 가정을 꾸린 친구도 있는데 나이가 들다 보니 옛날만큼 열정이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에요. 음악을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열정이 식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에어로 스미스, 롤링스톤스 등 해외밴드들은 할아버지가 돼서도 공연을 하잖아요. 그들의 나이가 거의 70대 중후반이지만 아직까지도 무대 위에서 2시간씩 공연을 하는 걸 보면 대단하다고 느껴져요. 앞으로 저희도 그러한 팀이 되고 싶은 게 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