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막을 수 없다. 당신을 기다려 주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바로 허무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에서 나오는 대사다. 이 영화는 80년대 이후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지대에서 마약거래가 늘고 ‘묻지마 살인’이 발생하는 등 급격히 황폐해져가는 사회를 그리고 있다. 과거 평화롭던 조용한 마을이 돈과 마약을 얻기 위해 아무 죄 없는 사람도 서슴없이 죽이는 약육강식 사회로 변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풍랑 속에서 노쇠한 노인은 존중받지 못한 채 언제나 희생당하는 존재로 휩쓸려 간다.

 

2020년 대한민국은 어떨까? 노인을 존중하는 사회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 세계 10위권 내외의 경제대국이지만 OECD 회원국 중 노인 자살률 1위, 노인 상대적 빈곤율 1위의 가난한 노인들이 가득한 것이 우리의 현주소다. 노동생산성이 낮고 소득이 적다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전쟁을 거쳐 산업화 시기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대한민국을 변화시켰던 세대들이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최근에는 금융 부문에서 노인 소외 현상이 크게 두드러지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창궐로 모바일을 활용한 비대면(언택트) 산업이 금융권 전 방위적으로 확대되면서 동네 은행들이 줄줄이 폐쇄되고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금융권은 수익성 없는 오프라인 점포를 정리하고 인터넷·모바일 판매에 투자를 늘리는 영업전략을 세우고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4년 전 7135개 달하던 국내 시중·지방·특수은행 등의 점포수는 올해 6월 6584개로 줄어들었다.

 

문제는 노인들 대부분이 모바일 환경에 익숙하지 않아 디지털 금융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0대 이상의 모바일 뱅킹 서비스 이용비율은 8.9%에 불과했다. 전체 연령의 평균 비율이 57.1%인 점을 감안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70대 이상의 현금 사용 비율은 68.8%에 달했다. 그들에겐 모바일보단 현금이 여전히 익숙했다. 또한 영업점 상품에 비해 비대면 상품 이용률은 극히 낮았다. 한 저축은행 영업점 정기예금 상품 가입자 중 고령층 비율은 70%가 넘었지만 모바일전용 정기예금에서는 고작 4.6%에 불과했다. 디지털 금융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디지털 금융 시대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디지털에 익숙치 않은 고령인구를 위해 은행 경영의 자율성을 훼손하면서까지 점포 폐쇄를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대신 고령층을 위한 실효성 있는 디지털 금융 교육과 고령층 친화적인 서비스가 전달돼야 한다.

 

현재 미국 정부는 금융보호실을 설치해 고령층을 위한 맞춤형 교육과 디지털 기기에 접근하는데 필요한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도 이를 참고해 디지털 금융은 어렵다는 고령층의 인식을 깰 필요가 있다.

 

또한 금융사기와 정보유출에 대한 불안감도 고령층이 모바일뱅킹을 이용하지 않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므로 거래금액을 제한하고 보안을 강화하는 등 안심한 상태에서 이용할 수 있는 앱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한 사회의 수준은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정부와 금융권은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혁명 속에서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방안을 모색해 디지털 금융 소외 문제로 인한 사회·경제적 피해를 줄여야 한다.

 

[윤승준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