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실종 공무원 총살 사건이 국제사회에 부정적인 파문을 일으킨 가운데 문재인정부의 한반도평화프로세스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북한의 실상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은 탈북민이기에 남북관계에 있어서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여론도 적지 않지만 정부는 통일부 사무검사 등을 통해 탈북민들의 입을 사실상 틀어막고 있다.

 

스카이데일리는 김정애 국제펜클럽망명북한펜센터(망명북한펜센터) 이사장을 만나 당초 역경으로 점철된 그의 인생과 남한에서의 성공스토리를 중점적으로 들으려 했다. 그러나 총살 사건이 불러온 엄중한 시국에 대화는 자연히 해당 사건에 대한 질의응답으로 흘러갔다. 무엇보다 자유를 찾아 남한에 왔던 그는 총살 사건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평화나 종전선언 등의 단어만 난무하고 사무검사 등 탈북민 탄압이 가해지는 지금의 실상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듯 했다.

 

“자전소설 ‘밥’으로 등단했어요. 굶주린 딸을 살려야만 했던 제 인생을 담았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그러지 않나요, 백성의 하늘은 밥이라고. 밥이라는 것은 사상과 이념과 체제를 떠나서 사람의 생명과 연결돼 있고 그것을 떠나서는 아무런 삶의 의미가 없기에 그런 주제로 작품을 썼어요. 제가 탈북을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도 저희 딸의 ‘엄마, 밥 한 번만 실컷 먹어보고 싶다’는 말이었어요. 그래서 제목을 ‘밥’이라고 했죠.”

 

김 이사장은 함경북도 청진 출신으로 2003년 탈북해서 2005년 남한에 입국했다. 북한에서 주체사상을 주민들에게 강의하는 학습강사를 했던 그는 우여곡절 끝에 남한에 정착한 후 작가의 길을 걸어 망명북한펜센터 이사장 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학습강사는 주체사상을 강의하는 역할을 해요. 중앙에서 지침이 나오면 혁명실록이라든가 주체사상 등을 사람들에게 읽어주고 베껴 쓰게 하고 시험도 치는 거죠. 한마디로 세뇌시키는 역할을 해요. 강의를 안 받으면 정치적으로 나쁜 성향으로 분류가 돼요. 학습강사는 동네마다 많이 있고 지구별로도 있어요. 북한 사람들은 태어나서 3살 때부터, 즉 말할 때부터 배웠기 때문에 교육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여요. 이걸 통과 안 하면 압(비판)을 받고 사회적으로 왕따를 당하기에 날 때부터 하는 거라고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죠.”

 

김 이사장은 북한에서 문학가로서는 ‘낙제생’이었다고 했다. 체제선전만을 중시하는 북한 문학계 환경과는 달리 그는 순수문학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꿈을 접어야만 했던 김 이사장은 남한에 와서야 비로소 숨겨뒀던 재능을 펼칠 수 있었다.

 

“북한에 있을 때 작가양성 교육을 받고 공모전에도 몇 번 나갔는데 번번이 떨어졌어요. (북한에서) 작품의 결말은 항상 수령의 위대성, 사회주의의 우월성에 맞춰져야 하는데 저는 인간생활을 그대로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었죠. 모든 게 수령의 은덕이라고 해야 하니 힘들었어요. 그래도 배운 게 그거라고 탈북 과정은 물론 한국에 와서도 계속 글을 썼는데 어느 작가님께서 북한 문학은 어떤지 보자고 해서 ‘밥’이라는 작품을 보냈어요. ‘밥’은 실은 미뤄놓은 작품이었어요. 식량난을 몸소 겪은 탈북민들이 ‘그게 작품이라고 그러냐’고 핀잔을 줬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 작가님이 보시고는 공모전에 내자고 해서 냈죠. 상상 밖의 반응이라서 한번 부딪혀보자고 한 거였는데 당선이 된 거예요.”

 

 

“정말 떠나기 전에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여기에서는 나도 언젠간 다른 사람들처럼 먹지 못해 죽겠구나, 내 순서가 오겠구나’라는 생각에 죽을 바엔 가다 죽자고 해서 떠났죠. 중국에서 몇 번이고 공안(경찰)에 잡힐 뻔 했는데 한국에 쉽게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다름 아닌 ‘글’이었어요. 저는 탈북과정을 계속 기록해서 그게 두꺼운 책이 됐는데 몽골 탈북루트를 알게 돼 지도를 하나 사서 떠나기 전 그걸 제가 다니던 교회의 한국 목사님께 맡겼어요.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도 있었기에 혹시라도 공안에 잡히면 문제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목사님이 밤새 그 책을 읽고서는 떠나지 말라면서 3일만 기다려 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 분이 그날로 한국에 나와서 탈북루트를 다 마련해놓으신 덕에 우리 식구 4명은 보름 만에 한국에 도착할 수 있었죠. 결국 글이 우리를 살린 거였어요.”

 

김 이사장은 등단 후 ‘서기골 로반’ 등의 소설을 집필하는가 하면 망명북한펜클럽 이사장까지 맡게 되면서 비로소 북한에서 못 다한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국제펜클럽은 세계 각국의 시인, 극작가, 편집인, 평론가, 소설가 등 문필가들이 문학을 통한 국제사회 이해 촉진 도모를 위해 만든 유일한 범세계 작가 모임이다. 1921년 영국의 도슨 스코튼 여사가 설립해 193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존 골드워디가 초대 회장으로 취임한 유서 깊은 단체로 지향점은 ‘작가의 표현의 자유와 권리 신장’이다. 이 때문에 정치적 검열을 반대하다 투옥되거나 죽음을 맞은 작가들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왔으며 중국, 북한 등 검열이 당연시되는 사회주의 국가들은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대신 탈북민 문학가들은 망명북한펜클럽을 통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중국이나 북한은 천안문사태 등 정부에서 언론을 탄압하고 있기에 가입하지 못 했어요. 국제펜클럽은 순수 문학단체이지만 인권적인 부분도 다루고 있기 때문이죠. 망명북한펜센터에는 120명 정도의 회원이 있고 직업작가이거나 언론인인 정회원은 20명가량이에요. 대표적으로는 이길원 고문님이라고 그 분은 한국펜본부 이사장을 하시다가 은퇴한 뒤 망명북한펜센터 운영을 돕고 계세요. 도희윤 자문위원님은 ‘고발’이라는 책을 냈는데 ‘반디’라는 필명의 북한 내부 작가에게 작품을 받아 한국에서 출판한 것이죠. ‘고발’은 제목 그대로 북한 내부 실상을 고발하는 내용이에요.”

 

“김정일보다 더한 살인마로 알아요. 미래의 우리 현실이 될 수도 있죠”

 

“지금 북한 상황이 많이 안 좋아요. 식량사정은 말할 것도 없죠. 내년부터는 고난의 행군이 다시 온다는 그런 얘기가 나올 정도예요. 고난의 행군 당시 길에 죽은 사람이 널려 있었는데 그런 상황이 내년에 다시 온다는 거죠. 그런데도 김정은은 무기나 만들고 있으니 기가 막힐 지경이에요.”

 

서글서글한 인상으로 북한에서부터 지금까지의 격동의 세월을 풀어놓던 김 이사장은 격해진 감정을 숨길 수 없는 듯 남북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밥 한 공기 먹는 게 소원이라던 굶주린 어린 딸의 손을 부여잡고 목숨 걸고서 차디찬 강물을 건넌 뒤 갖은 고생 끝에 우리나라까지 왔던 그에게 공무원 총살 사건과 탈북민들을 대하는 현 정부의 태도는 참을 수 없는 분노로 다가오는 듯 했다.

 

실제로 망명북한펜센터도 통일부 사무검사 대상 중 하나였다. 김 이사장은 8월 언론에 “서류제출 요구를 받았는데 응하지 않았다”며 “단체 설립 후 9년간 통일부가 소관부처로 단체 지원이나 관리도 하지 않다가 이제 등록요건 확인자료를 요구하는 건 탄압이다. 통일부가 우리 단체 등록을 취소하든 않든 개의치 않고 북한인권 문제 개선에 꾸준히 활동할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김정은 정권이 있으면 남북문제에서 답이 없다고 생각해요. 김정은 정권은 없어져야 하죠. 3대 혈통세습 체제가 사라지고 북한이 개방으로 나아가면 방법이 있을 거예요. 우리가 김대중 정부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차관 등의 방식으로 얼마나 많은 지원을 해줬나요. 그런데 하나도 돌아온 건 없고 북한은 더 큰소리를 치고 있지 않나요. 김정은 정권보다 한국이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우위인데 더는 비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강하게 밀어붙이고 그래서 북한 정권이 붕괴돼야 북한 주민들을 살릴 수 있어요. 그 한 사람을 살리겠다고 지원하거나 정권을 유지시킬 필요는 없어요. 주민들을 봐야 해요.”

 

김 이사장은 정부 정책에 동조하는 듯한 논조의 일부 언론도 성토했다. 북한 주민들보다 오히려 우리 국민이 북한 정권에 대해 더 잘 알 정도로 일부 언론이 북한을 선전하고 미화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제가 중국을 통해서 북한 주민들과 연락하는데 거기 사람들은 전기가 없어서 TV를 못 봐요. 김정은이 되고 나서 상황이 더 안 좋아졌죠. 켜면 체제 선전선동 내용이기에 일부러 안 보는 사람들도 있어요. 심지어 조선중앙방송을 본 지가 2년이 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TV를 안 봐요. 그런데 한국 일부 언론들은 아주 탄탄하게 북한 체제를 선전해주고 있어요. 한국에서는 실시간으로 북한 상황이 나오고 있죠. 아이러니해요. 오히려 한국 사람들이 김정은 체제에 대한 선전내용을 더 많이 보고 더 동경하게 돼요.”

 

 

“공무원 총살 사건은 내가 연락하는 북한 국경 사람들은 다 알아요. 여기저기서 여러 사람과 연락하다 보니 알게 된 거죠. 또 중국에 북한 사람들이 많이 나왔다가 10월 10일 전에 귀국했는데 중국에 나오니 그런 소식을 다 알게 되는 점도 있어요. 자연스럽게 소문이 퍼질 수밖에 없는 거죠. 북한 사람들은 ‘김정은이 원래 그런 사람인 걸’ 하는 반응이에요. 처음에는 외국에서 유학한 지도자라고 하니까 살기가 좋아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고모부인 장성택을 살해하고 간부들도 막 죽이고, 그것도 김정일 시대에도 없던 화염방사기나 고사총으로 죽였던 게 다 알려지니까 김정일보다 더한 살인마로 알아요. ‘살기가 넘치는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죠.”

 

김 이사장은 총살 사건과 관련된 김 위원장의 사과통지문이나 열병식에서의 눈물은 ‘쇼’라고도 단언했다. “북한 사람들과 통화해보면 총살에 대해 김정은이 사과하지 않았느냐는 얘기를 자기들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쇼’라는 게 그들의 대답이다”고 그는 강조했다.

 

“얼마나 자기가 바빴으면(곤경에 처했으면) 눈물 흘리는 쇼까지 하겠냐고 해요. 사람들 죽이는 걸 보면 그럴 수가 없는 사람인데 바쁜 모퉁이에 몰리니까 변명하기 위해 하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10월 10일 당 창건 열병식 때의 김정은의 눈물도 쇼라고들 해요. 진정성이 없다는 거죠.”

 

김 이사장은 북한 주민들도 분명 통일을 바란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단순 민족감정에 의한 열망이 아닌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라고 했다. 전쟁까지도 불사하자는 목소리까지 있다고 설명한 그는 우리나라 국민도 자유의 소중함을 망각할 때 북한과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북한 사람들도 통일을 바라고 있어요. 다만 통일이라는 게 한국식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원하고 있죠. 우리도 먹고 살자는 거예요. 심지어 전쟁을 바라는 사람들도 있어요. ‘전쟁이나 콱 나서 김정은 정권이 망했으면 좋겠다’는 거죠. 그러면 다 중국으로 달아나겠다는 거예요. 그만큼 북한 주민들은 절박해요. 그러니 우리는 정신 바짝 차리고 자유 등 지금 갖고 있는 거라도 지켜야 해요. 그래야 통일을 위해 뭘 할 수 있을지 깨닫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오주한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