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가로지르는 강에는 커다란 송어가 살고 있었다. 이 송어는 무려 25년 동안 마을의 낚시꾼들을 유혹했으나 어느 누구도 송어를 건져 올린 이는 없었다. 급기야 보스톤에 있는 한 낚시용품 상점에서는 이 송어를 낚은 사람에게 25달러짜리 낚싯대를 상품으로 주겠노라는 공고를 내걸었다. 소년들이 낚싯대를 둘러메고 강을 찾은 사연이 그러했다.

 

감수성이 예민한 하버드생 퀜틴은 소년들의 대화에 주목했다. 그들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 아니 아마도 오지 않을 가능성이 큰 미래를 가정해서 대화를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자기가 송어를 잡아서 상을 받는 것이 꽤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믿는 듯했다. 그러다가 결국엔 이미 상 받는 것을 기정사실로 믿는 단계로 나아가는 모습을 퀜틴은 지켜보고 있었다.

 

한 소년이 자기는 25달러짜리 상을 받으면 그걸로 말과 마차를 사겠노라고 큰소리를 쳤다. 나머지 두 소년은 고작 25달러로 어떻게 말과 마차를 살 수 있느냐며 코웃음을 치며 면박을 줬다. 그러자 큰소리를 쳤던 소년은 입을 다물고 잠자코 다리 난간에 서서 강물을 내려다 봤다. 거기에는 커다란 송어가 헤엄치고 있었다.

 

소년의 돌연한 침묵에 대화는 거기서 중단됐다. 하지만 퀜틴은 세 소년들 사이에서 승리자가 누구인지 금새 파악할 수 있었다. 25달러로 말과 마차를 사겠다는 ‘선언’으로 송어와 25달러짜리 낚싯대를 선점한 소년이 승기를 잡고 있었고, 나머지 두 소년은 그의 기를 꺾기 위한 ‘언어’를 고르느라 골몰해 있었다.

 

이 이야기는 20세기 미국 작가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 ‘소리와 분노(The Sound and the Fury)’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이다.

 

20세기 미국 대문호를 꼽으라면 아마도 일반적으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작가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일 것이지만, 영문학에서 헤밍웨이보다 더 비중있게 다루는 작가는 윌리엄 포크너이다.

 

사실 헤밍웨이와 포크너는 여러 면에서 공통점을 지니면서도 문학기법이나 인생관에 있어서는 극과 극을 달리는 대조적인 작가로 평가된다.

 

포크너(1897~1962)와 헤밍웨이(1899~1961)는 출생과 사망년도가 한 두해 정도 차이로 동시대를 살았던 작가들로 둘 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1949년에는 포크너가 받았고 그로부터 5년 후인 1954년에 헤밍웨이도 받게 됐다.

 

흔히 짧은 문장과 냉정한 현실묘사로 ‘하드보일드 스타일’이라고 일컬어지는 헤밍웨이의 소설기법과 대조적으로, 포크너는 인간의 깊은 의식 속에 흐르고 있는 서사를 끄집어내는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는 복잡하고 난해한 문장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표현해 낸다.

 

송어낚시에 관한 세 소년의 대화는 작가의 분신인 퀜틴의 의식을 거치면서 언어를 선점한 자가 어떻게 비현실을 사실로 왜곡하고 그 왜곡된 사실을 가지고 현실을 지배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가 어쩐지 우리에게 익숙한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가? 언어의 선점과 사실왜곡, 그리고 현실지배로 이어지는 구조적 데자뷰는 우리 사회와 정치판에서 너무나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들은 먼저 아름답고 감성을 자극하는 언어를 독점한다. ‘정의, 평등, 공정, 민주, 연대, 사람’ 등등 대중을 감동시킬 수 있는 훌륭한 가치를 담은 단어들을 조합해 깃발과 완장을 만들어 내세운다. 그리고 그 저항할 수 없는 가치의 ‘선언’ 아래 행해지는 모든 행위들은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송어를 낚지 않고도 이미 송어를 잡은 듯한 소년의 ‘선언’이 사실과는 무관한 허구의 현실로 일행을 제압했듯이, 그들도 아름다운 선언으로 어린 백성을 쉽사리 속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퀜틴처럼 살아있는 의식을 가진 자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 퀜틴은 결국 스스로 세상을 버렸지만 이 땅의 의식있는 자들은 허구의 현실을 낱낱이 파헤쳐 세상 밖으로 꺼내놓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