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공통점은 나이를 잊은 채 아직까지 그라운드에서, 또 필드에서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는 ‘살아있는 레전드’들이라는 점이다. 오래전에 은퇴하고도 남았을 나이들이다. 이들은 철저한 자기 관리와 노력이 없었다면 존재 자체가 불가능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대한민국과 16강에서 맞붙었던 이탈리아의 골키퍼였던 부폰은 대표팀에서는 물러났지만 유벤투스에서 여전히 골문을 지킨다. 소속팀 감독인 안드레아 피를로보다 오히려 한 살이 더 많다. 하지만 아랑곳없이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과시하며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것이다. 22년간 국가대표로 뛰면서 176경기에 출전해 역대 이탈리아 국가대표 선수 가운데 가장 많은 출장 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실력이 없으면 냉정하게 버려지는 프로선수로 26년째 뛰고 있는 그에게 대부분의 선수들은 아들 뻘이다.

 

 

LPGA투어 최고령 선수로서 한국 골프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줄리 잉스터 또한 모범적인 가정생활로 존경받고 있는 인물이다. 굳이 대학 학번을 따지자면 79학번인 잉스터는 올해 만 60살로 37년째 꾸준히 활약하고 있다. 한 남자의 아내로, 미국 각지에서 열리는 투어에 두 딸을 데리고 다니면서 밥을 직접 해 먹이는 등 1인 3역을 해내는 억척 주부였던 잉스터는 31승을 거뒀지만 근래 들어선 예전같은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음은 당연한 현상이다.

 

딸뻘 되는 선수들 사이에서 투혼을 발휘하는 잉스터에게는 우승이 중요하지 않다. 후배들에게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투어에 나서고 있고, 어린 선수들과 함께 경쟁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거워하고 있다.

 

연말이 다가오는 요즘 국내 프로 종목들의 시즌이 끝나면서 선수들의 은퇴소식이 적지 않게 들려온다. 그중에서도 국내 프로축구에서 거행된 한 노장의 화려한 은퇴식은 인상적이었다.

 

프로축구 K1 전북 현대의 특급 골잡이 이동국(42)이 그 주인공이었다. 지난 1일 리그 최종전에서 풀타임을 뛰며 소속팀을 우승으로 이끈 뒤 이동국은 23년간 청춘을 바치고 인생을 걸었던 녹색 그라운드를 떠났다. 은퇴식은 그 어떤 선수보다 화려하고 값졌다. 차가운 가을비가 내리는 전주월드컵 경기장에서 거행된 은퇴식에는 초등학교때부터 그를 열심히 뒷바라지한 아버지와 어머니, 슬하의 다섯 자녀 등이 모두 그라운드에 함께 섰다. 자신의 오늘이 있기까지 뒤에서 묵묵히 희생해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은 가족의 힘이 컸다는 이유 때문에 온가족을 그라운드로 초대했다.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까지 나와 이동국의 은퇴와 전북 현대의 우승을 축하하는 장면은 감동이었다.

 

 

42살인 그는 “최소 1~2년을 더 뛸 수 있었지만 몸이 아픈 것은 참을 수 있는데 정신이 나약해지는 건 참을 수 없었다”는 게 은퇴의 변이었다. 약해진 정신력이 은퇴 사유였다. 20대 팔팔한 선수들과 몸싸움을 유독 치열하게 벌여야 하는 스트라이커로서 그는 K리그 통산 548경기에 출전해 228골 77도움으로 역대 최다골을 기록한 ‘전설’이었다. 20대 초반 자신의 기량만 믿고 ‘게으른 천재’라는 비아냥을 받던 그가 이렇게 롱런하고 찬란한 기록을 세우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치 못했다.

 

이동국은 은막 뒤로 떠날 때까지 십자인대 파열 등의 숱한 부상과 월드컵대표팀 탈락 등 파란만장한 길을 걸었다. 쓰라린 경험이었지만 잉글랜드와 독일 프로축구도 맛봤다. 그러나 모든 선수들의 꿈인 월드컵 무대에서는 작아졌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에는 거스 히딩크 감독의 눈밖에 나 23명의 엔트리에서 아예 탈락했고, 4년뒤 독일월드컵을 눈앞에 두고는 무릎 인대가 파열되어 병상에서 또 눈물을 흘려야 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도 대회 전 입은 부상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열린 2002년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하면서 방황과 좌절을 맛보며 축구를 그만둘 것을 고민하는 등 축구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20대 중반의 이동국은 그 고통과 방황의 무게를 거뜬히 극복해낼 수 있었기에 롱런하며 대선수로 성장했다.

 

 

이동국에게도 노화에 따른 체력과 운동수행능력이 떨어진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운동선수들의 체력은 보통 20대 후반에 절정에 도달한 뒤 이후부터 서서히 감소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것은 누구나 겪는 섭리적인 현상이다. 근력과 지구력같은 기초체력은 저하되고, 스피드와 순발력을 포함한 체력 전반에 걸쳐 문제점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이러한 핸디캡을 극복하느냐, 못하느냐는 순전히 자기 노력 여하에 달려있다. 몇 해 전 최강희 전북감독은 “얼마나 운동을 했던지 젊은 애들보다 낫다. 회춘을 하고 있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체력을 유지하려면 눈에 안보이는 끊임없는 자기노력과 관리가 필수임을 말할 나위가 없다. 자기노력을 일일이 공개하지 않았지만 생존하기 위한 처절함 그 자체였다.

 

 

우여곡절 없이 꽃길만을 걸어오는 노장들은 이 세상에 없다. 미당 서정주 시인의 말대로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소쩍새가 울었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그렇게 울었던 것이다. 노장들의 은퇴가 박수갈채를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숱하게 겪은 좌절과 어둠을 극복한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통해 많은 교훈을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난관에 부딪혀 일어서지 못하고 사그라졌더라면 노장이라는 타이틀이 붙여질 수 없었을 게다. 이러한 메시지를 통해 우리들에게 큰 교훈과 용기를 심어주는 것이야말로 스포츠의 진정한 역할이 아닌가 싶다.

 

노장들의 품격속엔 많은 사회적 편견과 육체·정신적 난관을 극복해낸 강한 의지의 향기가 그득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말없이 전하는 메시지의 울림에 감동하고 열광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