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매력은 다양한데 그 다채로운 매력이 대중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완벽에 가까운 미학적 아름다움을, ‘패터슨’은 특별한 것 없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오는 깊은 감동을 전하고 있죠. 저희가 예술 다양성 영화를 중심으로 수입 배급하고 있지만 영화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완성도나 예술적 성취도보다는 그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의 공감성에 더 큰 비중을 두고 많은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올해 코로나로 인해 영화산업이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어려운 코로나 시대를 슬기롭게 극복해나가고 있는 대표적인 영화수입‧배급사가 있다.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매니아라면 귀에 익숙할 만한 배급사 그린나래미디어가 그 주인공이다. 이 회사의 유현택 대표(45)는 2009년에 회사를 설립해서 지금까지 11년째 이 회사를 이끌며 작은 규모의 예술영화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11월 어느 오후 잠원동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갓 개봉한 신작 ‘안티고네’의 마케팅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던 유현택 대표가 편안하게 기자일행을 맞이해주면서 자신이 사랑한 영화 이야기와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마음껏 풀어냈다. 유 대표는 어린 시절에는 꿈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시나 그림 같은 예술을 사랑하신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그는 피아노나 미술을 동경하기도 했지만 재능이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닫고 꿈을 접었다고 밝혔다.

 

“고등학생 시절 극장에서 영화 보는 게 거의 유일한 취미였죠. 그 덕분인지 삼수 해서 별 생각 없이 경영학부로 진학을 했고 제대 후 운명적인 영화 ‘접속’을 만난 거예요. 이 영화를 보고 처음으로 제 진로에 대한 생각을 진지하게 하게 됐어요. 아시겠지만 ‘접속’이 당시 한국영화 산업에 여러모로 상당한 의미를 남긴 작품이잖아요. 지금으로 말하면 SNS 정도로 비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PC통신이라는 새로운 문화현상을 PPL로 영화에 기가 막히게 녹였고 학과 수업 중 유일하게 흥미로웠던 마케팅 관련 내용들을 떠올리며 이거다 싶었죠. 그때부터 영화 일을 꿈꾸게 됐던 것 같아요.”

 

10년간 영화 110여편 수입‧배급하며 예술영화 전문배급사로 키워

 

“2003년에 대학교 졸업 이후에 영화사 쪽으로 취업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당시는 영화 관련 회사에 들어가기가 지금보다 더 어려웠어요. 먼저 일반 회사에서 1년 반 정도 일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영화 수입사에 들어갔고 지금의 회사를 2009년 11월에 설립하게 됐죠. 2012년 8월에 ‘시스터’라는 작품으로 첫 배급을 했으니까 아직 10년까지는 아니지만 첫 배급작 이후 100편이 넘는 작품을 수입 배급하고 있어요.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따로 행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배급 10주년이 되는 2022년에는 조촐하게나마 기념을 하려고 해요.”

 

회사의 이름을 짓는 게 어려웠다는 유 대표는 고심 끝에 순우리말을 포함해 ‘그린나래미디어’라는 이름으로 정했다. 그린나래의 뜻은 그림을 그리듯이 아름다운 날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의 꿈을 펼쳐보자는 의미를 붙여 볼 수 있고, 업무상 외국인을 많이 만나야 하는데, 영어로 표기했을 때는 ‘그리다’가 아닌 초록(GREEN)의 또 다른 의미를 통해 사람들에게 편안하고 좋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배급했던 수많은 작품 중에서 대중이 기억할 만한 작품은 ‘러스트 앤 본’ ‘프란시스 하’ ‘꾸뻬씨의 행복여행’ ‘내일을 위한 시간’ ‘폭스 캐처’ ‘스틸 앨리스’ ‘유스’ ‘본 투 비 블루’ ‘재키’ ‘토니 에드만’ ‘우리의 20세기’ ‘패터슨’ ‘원더’ ‘원더스트럭’ ‘디트로이트’ ‘더 와이프’ ‘러브리스’ ‘해피엔드’ ‘부탁 하나만 들어줘’ ‘가버나움’ ‘조’ ‘돈 워리’ ‘와일드 라이프’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남매의 여름밤’ 등 누구나 한두 편 정도는 봤음직한 영화들이다. 유 대표는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그린나래미디어의 대표작 5편으로 ‘시스터’ ‘프란시스 하’ ‘패터슨’ ‘가버나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꼽았다.

 

“제가 사랑하는 영화들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아무래도 첫 배급작이었던 ‘시스터’를 꼽고 싶어요. 2009년에 회사를 설립하고 3년이 지난 시점인 2012년 8월에 첫 영화를 배급하게 됐는데 제가 정말 좋아하는 배우 레아 세이두가 주연을 맡은 작품이라 더 애정이 갔던 영화이기도 해요. 이 작품은 베를린국제영화제 특별 은곰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평단의 평가도 좋았어요. 두 번째 작품은 2014년 7월에 개봉했던 노아 바움백 감독이 연출하고 그의 연인인 그레타 거윅이 주연을 맡은 영화 ‘프란시스 하’를 꼽을 수 있을 거 같아요. 본격적으로 마케팅을 하게 된 첫 번째 영화였고 우리만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었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유 대표가 세 번째로 추천하는 영화인 ‘패터슨’은 정말 사연이 많았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칸 영화제 개막 전에 선구매를 하기도 했고 대본만 보고 이 작품을 샀는데 관객 수를 높지 않게 예상했지만 예상보다 많은 관객들이 찾아줘서 감사했다고 전했다. 유 대표가 이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로는 평범한 일상을 다루는 영화이지만 그 일상이 마법 같고 한편으론 예술적인 독특한 매력을 주는 영화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네 번째 작품은 지난해 1월에 개봉하고 지난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영화 ‘가버나움’을 꼽았다.

 

슬럼프에 빠져 힘든 상황에서 한 편의 영화가 심장을 다시 뛰게 해

 

“‘가버나움’은 칸 영화제 마켓에서 영화를 보고 구매하게 된 작품이었죠. 사실 그 때 슬럼프도 오고 힘든 시간을 보내던 차였는데 ‘가버나움’을 보고 심장이 다시 뛰는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엄청나게 좋았던 영화였어요. 레바논이라는 낯선 나라의 쉽지 않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대중성 면에서 약간 걱정도 됐지만 저는 작품이 가진 힘을 믿었어요. 개봉 이후에 영화를 보신 분들이 좋은 입소문을 내주면서 희망도 생기기도 했어요. 당시 기록했던 14만명이라는 흥행 성적은 예상치 못했던 큰 성공이라고 봐야죠. 저와 회사 구성원 모두에게 큰 선물이었죠.”

유 대표는 올해 상반기에 개봉해서 좋은 반응을 얻은 작품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다섯 번째로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 작품은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놓고 ‘기생충’과 경쟁하기도 했던 화제작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이 작품은 예술영화로는 이례적으로 10만 관객을 넘어서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유 대표는 개봉할 때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기쁘기도 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더 많은 관객이 작품을 만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설립 초기에는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꾸준히 10년 가량 영화 수입‧배급을 하면서 고민도 많이 하고 작품마다 변화를 모색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폭스캐처’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원더’같이 대중이 많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들을 수입하고 배급하려고 노력했고 폴 페이그 감독의 ‘부탁 하나만 들어줘’ 같은 작품도 저희 회사에서는 대중적인 영화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항상 팀원들과 의논하고 작품들에 대한 고민도 나누고 있고요. 최근에는 한국 독립영화에도 관심을 가져서 2018년에 개봉했던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 손님’, 올해 여름에 개봉했던 ‘남매의 여름밤’도 저희가 배급을 진행한 작품들이죠.”

 

유 대표는 영화의 흥행은 영화 자체로 판가름 나기 마련이지만 때로는 영화 외적인 요소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면서 그런 점이 영화배급사로서 겪는 애로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유 대표가 수입한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올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감독 우디 앨런과 관련된 안 좋았던 이슈로 인해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좋은 영화를 보는 기준은 저 같은 경우에는 해마다 다르지만 어떤 감독들의 영화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시나리오를 보고 수입할지 말지 결정하는 거 같아요. 지금 시류에 부합하는 소재를 다룬 영화를 선택하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야기를 찾고 수입하려고 하죠. 최근에 개봉한 신작인 ‘안티고네’는 그리스 신화 ‘안티고네’를 차용한 작품인데 소녀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법이 가진 한계를 넘어서 시민들과 함께 연대를 이루고 SNS 영웅으로 자리매김한다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예요. 주인공인 나에마 리치의 열연이 돋보이기도 하는 폭발력과 대중적인 울림이 있는 영화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