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벨로퍼(Developer)는 시공을 전문으로 하는 건설사와 달리 땅 매입부터 기획, 설계, 마케팅, 사후관리까지 총괄하는 개발사업자 또는 개발업체를 말한다. ‘땅에 가치를 불어넣는 창조적인 사업’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국내에서 최고의 디벨로퍼로 꼽히는 인물 중 신영그룹의 정춘보 회장이 있다. 그는 2005년 한국디벨로퍼협회를 설립하기도 했으며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에 디벨로퍼란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정춘보 회장은 국내에 디벨로퍼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1984년 개척정신으로 신영을 세우고 사업을 시작해 설립 이후 30여년 만에 연매출 1조원을 달성한 1세대 디벨로퍼 중 한 명이다.

정춘보 신영그룹 회장은 동아대학교 토목과를 졸업한 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부산시청 9급 공무원으로 일했다. 그는 당시 비행기를 타고 부산 시내의 개발현황을 파악하는 항측계에서 일했다. 공무원으로 일하는 동안 도시개발 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일본을 오가며 도심재개발 현장을 자주 접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그는 부동산건설과 개발업에 눈을 뜨게 됐고 1984년 신영기업을 설립해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신영기업은 설립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최고의 부촌 지역으로 손꼽히던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8채의 빌라를 지어 분양했다. 남의 아파트를 분양해 주는 게 아니라 자신이 땅을 사서 그 위에 건물을 올려 분양한 것이었다. 8가구 모두 성공적으로 분양에 성공해 좋은 성과를 거두는 듯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했던 호화주택 규제라는 암초를 만나게 된다.

정 회장은 이러한 실패를 교훈 삼아 창의력, 역발상 등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이후 1994년,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는 1988년 서울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된 뒤 강남 테헤란로에 업무용 빌딩이 우후죽순 세워지고 있었다. 이로 인해 빈 사무실이 급증했고 여기서 가능성을 본 그는 빌딩관리대행업에 뛰어들었다. 정춘보 회장은 직원들과 함께 일본에서 빌딩 관리기법을 배운 뒤 서울에 있는 빌딩 대부분을 데이터베이스(DB)로 만들었다. 그러자 빌딩 소유주들은 새로운 빌딩 관리기법을 소유한 신영에 관리를 맡기기 시작하며 매출이 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마련한 목돈으로 정춘보 회장은 본격적인 부동산개발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사업의 첫 작품은 1997년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에 분양한 오피스텔 ’시그마Ⅱ’다. 당시 이 오피스텔 부지 근처에는 고속도로가 있어 시끄러운 데다 고압선이 지나가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는 이곳에 외관을 벽돌로 꾸민 고풍스러운 유럽풍 오피스텔 ‘시그마Ⅱ’를 분양해 성공했다. 이후에도 분당구 정자동 아파트 ‘로얄팰리스’, 분당구 수내동 오피스텔 ‘로얄팰리스 하우스빌’, 용인 죽전지구 아파트 ‘죽전 프로방스’, 서울 마포구 오피스텔 ‘마포 신영지웰’ 등을 잇따라 선보이며 사세를 키워나갔다.

정춘보 회장은 ‘시그마Ⅱ’ 분양을 시작으로 한국의 ‘롯폰기 힐즈’를 지향하는 ‘지웰’이라는 독자 브랜드로 시행사업에서 입지를 다졌다. 또 사업 다각화로 신영, 신영에셋, 신영자산관리, 신영건설, 대농 등 여러 계열사를 거느린 신영그룹을 일궈냈다. 신영그룹의 전체 매출규모는 지난해 기준으로 1조원에 달한다. 이러한 성공으로 정춘보 회장에겐 ‘한국의 도널드 트럼프’라는 흥미로운 별명도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