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의 매력은 다양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국악은 우리네 삶에 없어서는 안 될 김치와 같은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모두에게 꼭 필요한 음악이기 때문이죠. 특히 경기민요는 가사와 운율이 너무 좋아서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 대학교와 고등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 국악의 매력을 널리 알리는 일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갈 준비가 돼 있어요.”

 

국악인 정경숙 씨는 올해로 45년째 국악 활동을 하고 있는 국가무형문화재 57호 경기민요 이수자이다. 경기민요 3대 명창인 묵계월 명창의 제자이기도 하다. 40년이 넘는 세월을 오로지 경기민요라는 외길을 고집하며 걸어온 정 씨를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국악 연습실에서 만났다.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기자일행을 맞이하는 정 씨의 첫인상은 예상과는 달리 외고집보다는 포용과 여유가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간호사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지만 집안 내력이 전통음악을 하는 분위기여서 자연스레 국악을 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가야금을 연주하면서 국악의 길로 들어섰죠. 가야금은 시김새(국악을 연주할 때 사용하는 다양한 음악적 표현) 느낌이 다른 악기들과 다르고 진양조, 자진모리 등 리듬이 다이나믹한 느낌이 있어서 좋아했어요."

 

“국악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하게 된 건 중학생 때부터였어요. 고등학생 때는 유명 명창 분들의 집에 가기도 하면서 훌륭한 국악인들을 많이 만나 큰 가르침을 받았어요. 대학은 중앙대학교에서 새롭게 신설된 경기민요 전공 1기로 들어갔고 나중에 박사과정까지 마치게 됐죠. 경기민요를 40년 넘게 꾸준히 하고 학생들에게 강의도 하고 있지만 국악 공부는 평생 걸쳐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국악을 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행복한 일이죠.”

 

정씨는 현재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올해 4년째 한국국악협회 고양시 지회장으로도 활동하는 그는 가르치는 일은 곧 자신이 한 단계 성장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국악인으로서 한 길을 걸어오다 보니 어느새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게 됐고 국악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2004년 전국 국악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기쁜 한 해를 보냈던 기억이 늘 그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는 힘이 됐다.

 

“소리를 잘할 수 있는 비결은 길을 가면서도 흥얼거리면서 소리를 잊지 않으려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곡들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꾸준히 연습하는 게 중요하죠. 제가 그렇게 연습한 결과 2004년에 대통령상을 받게 된 거 같아요. 경기민요에선 ‘노랫가락’을 좋아하고 저희 스승이신 묵계월 선생님의 창법을 익히고 따라했어요. 선생님의 명성에 어긋나지 않는 제자가 되기 위해 ‘노랫가락’ ‘태평가’ ‘창부타령’을 부단히 연습했죠.”

 

“‘노랫가락’은 무속에서 무녀들이 부르던 노래인데 통속 민요들이 나오면서 저희가 부른 창법은 다른 편이죠. ‘창부타령’은 파생돼서 부르는 노래이고 태평가는 일제강점기때 만들어진 신민요 중 한곡으로 6.25전쟁 이후에 발전된 음악으로 나온 곡이에요.”

 

정 씨는 좋아하는 국악 활동을 본의 아니게 못하게 되면서 많이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고 밝혔다. 1992년에 결혼한 뒤 얻은 삼남매의 육아 등 집안일을 하게 되면서 7년간 활동을 못 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자녀를 양육하면서 동시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등 어려운 가운데서도 배움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는 묵계월 선생님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 이후에는 대학에서 강의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고 설명했다.

 

“제가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제자들을 키우고 있는 교육자이기도 한데 제자들이 훌륭한 국악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스승으로서 고민이 많아요. 제자들은 각각의 학생으로만 대하기도 하지만 다 자식 같은 마음을 가지고 각자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잘 가르쳐야겠다는 부담은 있는 거 같아요. 아이들이 잘 되면 상관이 없는데,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오면 스승으로 가슴도 아프고 내가 부족해서 아이들이 잘 안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느낀 적도 있었죠.”

 

정 씨는 교육자로서 힘든 적도 있지만 그보다는 보람이 더 크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을 대하면서 교육 철학으로 무엇보다 인성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고 강조했다. 훌륭한 국악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마음가짐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 씨의 딸들도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국악인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딸들에게는 어머니 이전에 교육자로서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고 밝혔다.

 

정 씨가 3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보내기도 한 스승 묵계월 명창은 우리나라 경기민요 3대 명창으로 알려진 국악계의 큰 스승이기도 하다.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경기소리’ 보유자로 1921년 출생이다. 11세에 귀동냥 소리로 시작해 주수봉‧최정식‧이문원에게서 경기소리와 ‘삼설기’ 등을 배웠다. 묵 명창은 경기소리를 알리는 데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1992년 국악대상, 1997년 국민훈장 보관장, 2004년 방일영 국악대상 등을 받았다. 묵 명창은 2014년 5월 향년 93세로 타계했다.

 

“1979년에 제가 처음 묵계월 선생님을 만났어요. 제가 전수 장학생이기도 했었죠. 평소에 말수가 많지는 않으셨지만 제자들에게 따뜻하게 조언도 해주시고 잘 챙겨주신 고마운 선생님이셨어요. 평소에 밥 먹었냐고 물어보고 안 먹었다고 할 때는 직접 밥도 챙겨주시기도 한 분이셨죠. 저의 국악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분이기도 하셔서 평생 잊지 않을 거 같아요. 묵계월 선생님께서 안 계셨다면 지금의 경기민요 이수자인 저도 존재할 수 없었을 거예요.”

 

묵계월 명창은 경기민요 3대 명창 중에 한 명이다. 정 씨 역시 그의 오랜 제자이기도 했다. 정 씨는 묵 명창과 함께 했던 이야기를 하면서 선생님과 함께한 기억이 생각나 잠시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담담하게 잊을 수 없는 선생님과의 행복했던 추억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정 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정말 많았다며 그 중에서 묵계월 선생님과의 공연이 살면서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새벽에 비가 많이 와서 공연을 못 하게 된 이야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지방공연에 갔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공연시작 몇 시간 전부터 기다려서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연하기도 했었다는 경험담도 말하기도 했다. 필리핀 공연 중에는 5000명이 앉아 있는데 환호성이 엄청나서 감동에 잠겨 행복하게 공연을 할 수 있었다고 공연에 관한 다양한 일화를 전했다.

 

“선생님께서 저에게 노래하는 것을 알려주시면서 하는 것도 있지만 현장에서 공연하는 것을 눈앞에서 보게끔 하시고 저로 하여금 공연하기 전에 연습을 시켜주시고 제가 잘 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주셨어요. 또 선생님 공연할 때 저를 꼭 데려가시기도 할 만큼 제자들을 많이 사랑하셨죠. 저 또한 학생들에게 선생님께 배웠던 가르침을 전하고 있어요. 공연을 많이 보라고 강조하기도 하고 또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공연을 하도록 맡겨두기도 하죠. 소리를 하는 사람은 인성이 중요하다는 것 역시 묵계월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거예요. 남들의 말을 잘 귀담아 듣고 인사 잘하고 남들을 배려하는 사람이 되라고 늘 말씀하셨죠.”

 

정 씨는 국악의 대중화를 위해 생각하는 점에 대해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이 탄탄하게 잡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젊은 국악인들에 대해서 예전과 다르게 변질되기도 하고 전통을 많이 잃어버리는 부분이 아쉽기도 하다며 예전과 달라진 국악의 전통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제가 활동하고 있는 단체인 한국 국악협회 고양시 지부는 고양시에서 시 예산을 받아 ‘고양 행주 국악경연대회’ 등 공연을 하고 있어요. 설화를 가지고 만든 경서도 소리극 ‘한씨 미녀’를 가지고 하는 전통 연극과 대공연 등으로 구성된 이 대회는 24년째 진행하고 있어요.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많은 행사가 진행될 수 없어서 많이 안타깝죠.”

 

정 씨는 올해 가장 아쉬웠던 점은 코로나로 인해 관객과 소통을 하지 못하면서 언택트 공연을 해야 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학교 강의도 학생들과 직접 소통이 이뤄져야 효과가 큰데 온라인으로 하게 되면서 한계가 많아 아쉬움이 컸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소리를 위해서는 몸을 잘 돌봐야 한다면서 스승으로서의 애정을 드러냈다.

 

“오랜 기간 활동한 국악인으로 제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국악인으로서 실기를 잘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늘 멀리 앞을 내다보면서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하죠. 소리를 잘하기 위해 목 관리는 공연 1주일 전부터 컨디션 조절을 잘 하고 잠도 많이 자야 하고 밥도 잘 먹어야 하고 감기 안 걸리기 위해 따뜻한 차를 마시는 것이 중요하죠. 옷도 따뜻하게 입어야 해요. 무엇보다 국악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