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가게를 찾아준 손님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전통주에 대한 선입견이 깨지고 인식이 변화하는 모습을 볼 때 참 뿌듯해요. 음식이 맛있다는 소문에 찾아준 손님이 어느새 궁합 좋은 전통주를 먼저 찾고 편하게 드시더라고요. 서로 잘 어울리는 전통주와 음식을 제공해 사람들에게 인정받겠다는 제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깨우쳐 주는 것 같아 참 감사할 따름이에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외출과 모임이 쉽지 않은 요즘 가족과 친구, 지인들과 화기애애하게 술을 즐기기란 당분간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 됐다. 아쉽긴 하지만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조처인 만큼 너나 할 것 없이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는 분위기가 널리 자리잡았다.

이에 최근 들어 이른바 ‘혼술(혼자 마시는 술)’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 등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면서 술을 즐기는 문화가 우리의 일상에 빠르게 정착하고 있다.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서 코로나가 낳은 새로운 트렌드로 거듭나고 있는 모양새다.

혼술·홈술 열풍으로 다양한 주류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평소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전통주의 인기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전통주들은 이색적이면서도 뛰어난 맛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어떤 음식과도 궁합이 좋아 사람들의 입맛을 빠르게 사로잡고 있다.

그러나 전통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데다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고 전통주의 매력을 제대로 소개하기 위해 힘쓰고 있는 셰프가 있어 눈길을 끈다. 전통주에 매료돼 직접 가게를 차린 김시진 진식주 대표다.

“진식주는 맛있는 전통주와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가게예요. 참 신기한 게 서울만 해도 수많은 가게가 있는데 전통주를 취급하는 가게는 거의 없어요. 소주나 맥주, 와인, 위스키 등 다양한 음식점과 술집, 펍, 바 등에서 다양한 주류를 취급하지만 정작 전통주는 쏙 빠져 있더라고요. 서울 유명 상권을 다녀 봐도 전통주를 접할 수 있는 가게를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다는 게 참 안타까웠던 나머지 결국 제가 직접 전통주를 맛볼 수 있는 가게를 차리게 됐죠.”

전통주의 매력을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앞장서고 있는 김 대표 역시 처음부터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컸던 것은 아니었다. 전통주에 대한 관심은커녕 거의 알지 못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랬던 김 대표가 전통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술을 찾기 위한 고민에서 시작했다.

“지금의 가게를 운영하기 전에 셰프로 활약했어요. 이탈리안 요리를 전공해 호텔과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등에서 셰프로서의 삶을 살았죠. 어릴 때 부모님의 영향으로 호텔에 왕래할 기회가 많았는데 그때 제 눈앞에 펼쳐지는 음식들이 그렇게 멋지고 화려해 보일 수 없더라고요. 물론 맛도 최고였죠. 그 덕분일까요. 요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스무살부터 레스토랑에서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배워야 기본기를 다질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학업적으로도 뒤처지고 싶지 않아 대학에서 호텔조리학도 전공했어요. 새벽부터 오후 늦게까지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퇴근하자마자 학교로 달려가 밤 늦게까지 학업을 병행하는 생활을 몇 년간 지속했죠. 피나는 노력 끝에 25살에 서울 소재 호텔 레스토랑에서 셰프로서 요리할 기회를 얻게 됐어요. 참 뿌듯한 순간이었죠.”

이후 김 대표는 호텔 레스토랑뿐만 아니라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유명 이탈리안 레스토랑 등에서 요리 실력을 키워 나갔다. 이러한 경험들을 인정받아 김 대표는 경복궁 근처 어느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총괄 셰프를 맡게 됐다. 뒤이어 천안에서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는 레스토랑의 헤드 셰프를 맡아 달라는 제의를 받으며 셰프로서 최고의 위치에서 요리하는 영예를 누리게 됐다.

총괄 셰프, 헤드 셰프로 활약하던 당시 김 대표는 한 가지 고민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셰프로서 레스토랑을 찾는 손님들을 위해 새로운 음식을 개발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음식과 어울리는 술을 고르는 일이 좀처럼 쉽지 않았다.

“바텐더, 소믈리에와 함께 새로 개발한 음식에 잘 어울릴 술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어요. 어떤 레스토랑이든 페어링(음식과 술의 궁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거든요. 그런데 음식에 어울리는 술을 찾는 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음식과 술이 서로의 맛을 해치지 않고 어우러져야 하는데 음식이나 술 어느 한쪽의 맛을 해치는 경우가 상당하거든요.”

“수입 주류 중에 위스키나 꼬냑, 진 등은 각자의 개성이 너무 강해 음식의 맛을 크게 저해해 페어링이 좋지 않았어요. 와인은 페어링도 좋고 대중적이지만 그마저도 어울리는 음식은 한정돼 있더라고요. 결국 몇몇 음식에만 궁합이 좋은 몇몇 술이 있을 뿐 어떤 음식에도 언제나 어우러지는 술을 찾기란 참 어려운 일이었죠.”

그때부터 김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주류 전시회가 있으면 빼놓지 않고 방문했다. 수많은 전시회에서 다양한 주류를 접하며 어떤 술이 페어링이 좋을까 공부했다. 그러던 중 김 대표는 전통주를 처음 접하고 그 매력에 빠르게 빠져들었다.

“전통주는 도수가 낮은 저도주부터 70도에 이르는 고도주까지 폭넓게 구성돼 있어요. 종류도 막걸리뿐만 아니라 약주, 증류주 등 다양해요. 게다가 쌀, 보리 등 곡물뿐만 아니라 감자, 고구마, 과일 등 여러 재료로 만들어져 이색적인 맛과 색을 자랑하죠. 가장 중요한 것은 맛도 좋다는 거예요.”

“참 신기하게도 전통주는 어떤 음식에도 잘 어울린다는 강점을 갖고 있어요. 우리가 만든 우리 술이니 만큼 한식과의 궁합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을 뿐 아니라 파스타, 리조또 등 이탈리안 요리와 스테이크, 일식 등과도 페어링이 매우 좋아요. 오히려 전통주와 궁합이 좋지 않은 음식을 찾는 게 더 어렵게 느껴질 정도라니까요.”

김 대표는 맛있는 술과 맛있는 음식이 사람들을 행복하고 즐겁게 만들어 준다는 믿음에 헤드 셰프 자리에서 과감히 떠나 나만의 가게를 차리기로 마음먹었다. 이어 김 대표가 그러했듯이 많은 사람이 전통주에 대한 매력을 느낄 있도록 진식주라는 특별한 공간을 마련했다.

“최근 유행 중인 혼술·홈술 열풍으로 젊은 세대 사이에서 전통주에 대한 인기가 꽤나 높더라고요. 그래서인지 2030세대가 많이 찾아주시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SNS 등에서 전통주에 대해 언급하는 빈도가 잦아지고 있는 게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싶어요.”

젊은 세대 사이에서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선 환영의 뜻을 내비친 김 대표는 다만 아쉬운 점도 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사람들이 전통주에 대해 잘 모르는 탓에 생길 수밖에 없는 선입견이 너무 두텁게, 아주 당연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다. 

“전통주라고 하면 막걸리만 떠올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약주도 있고 증류주도 있고 맛이며 도수며 제각기 다른 매력의 전통주가 엄청 많은데도 말예요. 그래서인지 가게를 찾는 대다수의 손님들이 전통주 종류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고 깜짝 놀라곤 해요.”

“막걸리는 참 매력적인 술이에요. 그런데 막걸리를 무작정 거부하고 싫어하는 분들도 상당히 많았어요. 막걸리를 마시면 다음날 머리가 아프다는 둥 숙취로 고생한다는 둥 확인되지 않은 몇몇 루머에 막걸리를 마시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거죠.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막걸리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만 같아 아쉬울 때가 많아요. 장담컨대 막걸리를 한 번도 안 먹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는 술이 바로 막걸리예요. 그만큼 매력적인 술임에 틀림없어요.”

김 대표는 최근에 높아진 전통주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전통주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도 함께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전통주를 수입 주류와 비교해 질이 낮다고 치부하거나 가격 면에서 터무니없이 높다고 생각하는 등 전통주가 우리나라 사람들 인식 속에서 여전히 저평가돼 있다는 우려에서다.

“전통주를 제조하기 위해선 오랜 시간과 엄청난 정성이 필요해요. 전통 누룩이나 젖산균, 잡균 등을 사용해 다양한 맛을 내고 장기간 발효를 거쳐야만 비로소 사람들에게 선보일 수 있죠. 힘든 과정을 거쳐 탄생한 술이지만 막걸리나 약주 등은 열처리를 하지 않아 오래 보존할 수도 없어요. 딱 그 순간에만 맛볼 수 있는 귀한 술인 거죠.”

“그런데 많은 분이 전통주 이면에 녹아든 시간과 정성에 대해 관심이 없어요. 그래서일까요. 전통주를 소주나 맥주와 큰 차이가 없다고 여기는 분들이 종종 있어요. 또 전통주의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볼멘소리하는 분도 있어요. 와인과 비교해보면 한 병에 몇 만원 하더라도 대다수가 그 정도 가격일 것이라고 수긍하는데 정작 전통주는 상대적으로 비싸다고 여기는 거죠. 전통주를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이 개선됐으면 좋겠어요.”

김 대표는 앞으로 페어링이 뛰어난 좋은 전통주와 맛난 음식을 부단히 개발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를 통해 진식주라는 공간을 찾아준 손님 모두가 만족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당차게 포부를 밝혔다.

“전통주를 맛보기 위해 가게를 찾아주는 손님들에게 앞으로도 더욱 맛있고 훌륭한 음식과 술을 제공할 거예요. 그렇게 노력하다보면 전통주의 매력을 더 많은 사람이 느낄 수 있도록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날이 올 거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