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채동석 전 애경산업 대표, 최창원 SK케미칼 전 대표 등은 정부와 기업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데 왜 사과한 것인가. 이유를 모르겠다. 가해기업 및 관계자들이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가해기업이 아닌 피해자와 국민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판결과 선택이 필요하다”

 

박혜정 가습기살균제참사 비상대책원회 위원장, 송운학 개혁연대민생행동 상임대표, 환경단체 글로벌에코넷 김선홍 상임회장과 가습기살균제 ‘가습기메이트’ 참사 피해자들은 14일 오전 11시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처럼 밝혔다.

 

가습기메이트는 SK케미칼이 만들고 애경이 함께 팔았다. 이 제품을 썼다가 피해를 봤다고 신고한 이들은 800명이 넘고 12명이 숨졌다. 이에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 13명 등은 안전성 검증 없이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어 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는 “공소사실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며 12일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가습기 살균제 성분인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이 폐질환이나 천식을 유발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또 SK케미칼에 근무하면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제조·판매에 관여해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사 전직 직원 4명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은 PHMG 성분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혐의로 관계자들이 유죄를 선고받은 옥시에 이 물질을 판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SK케미칼 관계자들이) 업무 과정에서 다소의 부주의가 있었더라도 판매 경위 등에 비춰볼 때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과 상해라는 결과가 발생하는 데 본질적으로 기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과 관련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등은 입 모아 “아픈 몸이 우리의 증거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가해기업인 SK케미칼과 애경산업 대표 및 임원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를 규탄했다. 이들은 “재벌과 대형로펌이 야합한 결과 제1심 판결이 내려진 것이라는 의혹을 떨쳐버릴 수 없다”며 “이를 바로잡지 못하면 우리나라 사법부가 죽게 될 것이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날 박혜정 비상위원장은 “옥시의 가습기살균제 원료물질인 PHMG는 SK케미칼이 원료를 공급한 것으로서 SK케미칼이 현재 무죄 판결을 받은 원료물질인 CMIT, MIT 성분의 가습기살균제다”며 “1994년 안전성 입증도 되지 않은 채 최초로 세상에 나오지 않았더라면 오늘날의 가습기살균제 대참사는 없었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1991년 제정된 유해화학물질 관리법에 의해 CMIT, MIT는 처음부터 정부가 책임을 지고 관리했어야 할 유해 화학물질이었다”며 “2003년~2004년에도 환경부는 자체적으로도 마련한 시행령 규칙대로 안전성 시험을 이행하지 않았다. 2011년에도 가습기살균제 원죄 기업인 SK케미칼의 원료물질 CMIT, MIT는 유해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식으로 각 정부부처가 SK케미칼을 비호하고 면죄부를 줘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해기업과 정부의 공조 관계에서 지난 10년간 소엽중심성 말단기관지 폐섬유화만을 폐질환으로 만들어 환경 카르텔로 묶인 집단에 의해 가해기업 구제법만을 만들어왔다”며 “정부는 인과관계 입증을 위해 쥐 실험을 하면 안 된다는 전문가들과 피해자들의 주장을 묵살하며 처음부터 잘못 설정한 쥐 실험의 결과로 무죄를 선고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19년 기준 6300명 피해자 중에 5400여명이 천식 질환을 앓고 있으므로 최초 피해자로부터 인과관계를 추정했더라면 가해기업은 확실한 민형사상의 책임을 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면서도 “잘못된 실험방법임을 경고한 방법으로 역학조사를 해 무죄가 선고 될 수밖에 없게 인과관계를 만든 책임도 정부가 져야 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박 위원장은 또 “‘추가 연구가 꼭 나와야 한다’는 재판부의 판결 내용 또한 거대 로펌을 끼고 있는 가해기업이 학연·지연 등이 의심스러운 유전무죄 판결이며 비양심에 바탕을 둔 천인공노할 기계적 판결이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가습기살균제 물질이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 전체 국민이 모두 알고 있고 무려 1609명이 사망한 사건이다”며 “정부도 기업도 무죄인데 대통령과 기업 대표들이 머리숙여 사과한 이유는 무엇이냐. 무죄라면 사망한 1609명의 피해자는 가해자 없이 자연사를 했다는 것인가”고 비판하며 재판부가 정의와 진실을 밝혀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유명석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및 가족모임 대표는 “이윤추구에 눈이 먼 기업은 독성 유해물질을 흡입하게 하고 정부는 그 독성물질을 만들고 팔도록 허가해 수많은 사망자와 사상자를 만들었다”며 “참사의 해결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와 국회, 특조위, 재판부가 보여준 행태는 후진국가를 넘어선 미개한 국가 수준이다”고 한탄했다.

 

이어 “전신질환과 죽음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에 있느냐”며 “피해자의 몸이 증거인데 사람의 몸으로 역학조사를 하지 않고 쥐 실험을 통한 증상으로 사람한테 적용해서 1609명의 영령 앞에 인과관계가 없어서 무죄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분노했다.

 

유 대표는 “어머니께 효도한다고 사다가 정성들여 틀어드린 가습기살균제로 어머니를 돌아가시게 한 죄책감에 지금도 무서워서 불을 끄고 살지 못한다”면서 “가해 기업은 돈으로 거대 로펌 변호사를 사서 무죄판결을 받았고 피해자를 구제해야 할 정부와 특조위는 1000억원대의 막대한 예산으로 인과관계 하나 밝히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울분을 토했다.

 

송운학 상임대표는 “원료를 공급받아 판매한 ‘옥시는 유죄’인데 원료를 공급한 ‘SK케미칼은 무죄’라니 어안이 벙벙하다”며 “판사는 상식에 반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자기 자신도 계면쩍었던지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고 한다. 희대의 궤변이자 악어의 눈물이다”고 비판했다.

 

이어 “판결문을 검토하지 않아 성급한 주장일 수 있지만 상식적으로 폐질환을 유발하는 가습기살균제 원료와 전신질환을 야기하는 가습기살균제 원료는 서로 다른 구조와 성질을 갖고 있다고 알고 있다”며 “공통점은 흡입하거나 피부에 노출되지 않는다는 엄격한 조건 아래 살균제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 단 한 가지뿐이다. 피해자들이 그토록 요구했던 전신질환에 주목했다면 전혀 다른 판결을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고 주장했다.

 

김선홍 상임회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가습기살균제참사 피해자들을 청와대에서 만나 ‘책임져야 할 기업이 있는 사고지만 정부도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할 수 있는 지원을 충실히 해나가겠다’고 사과했다”며 “또 2019년 가습기살균제참사 청문회에서 최창원 전 대표와 채동석 전 대표는 청문회에 참석한 피해자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런데 지난해 연말 환경부가 진상규명이 다 됐다고 발표했고 정부는 사회적 참사 특조위 가습기 살균제 진상규명을 삭제했다”며 “이번에는 사법부마저 ‘무죄선고’로 가해기업에 면죄부를 줬다. 한국전쟁 이후 제일 큰 참사인 1609명이 사망한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는 별 해괴망측한 판결이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젠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사회적 참사로 인정하고 정부가 배·보상 후 가해기업에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주현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