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방역의 핵심은 ‘국민’의 희생이죠”

정치 방역 향한 전문의의 일침 “K-방역, 과학적 근거 없는 ‘정치 슬로건’일 뿐”

김찬주 기자(cjkim@skyedaily.com)

기사입력 2021-02-04 00:05:13

▲ 최재욱 고려대학교 예방의학교실 교수**(사진)**는 코로나19 방역 정책 최일선에서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한 정책적 제언과 정치 방역을 비판하는데 앞장섰다. 하지만 전문의의 통곡과도 같은 제안에도 정부가 그들만의 방역지침을 고수하면서 의료계 현장의 현실은 더욱 가혹해져만 갔다. [사진=황정아 기자] ⓒ스카이데일리

“‘K-방역’이란 한마디로 ‘정치적 슬로건’이에요. 과학적·의학적 근거를 갖고 사용할 수 있는 용어가 아니죠. 전 세계 공중보건학 전문가들은 K-방역이란 단어 자체를 쓰지 않아요. 그저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만 쓰는 용어예요. 가령 세계에서 방역이 제일 잘됐다고 평가받는 뉴질랜드는 ‘N-방역’이 돼야 하는데 아무도 그런 말은 쓰지 않죠.”

코로나19(코로나)로 어려운 시국이 1년 이상 이어지고 있다. 점차 국민은 정신적으로 피로감을 느끼고 경제는 추락하며 자영업자들은 통곡하고 있다. 정부가 자신 있게 말하던 이른바 ‘K-방역’은 그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세 번의 대유행이라는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1년이란 기간이 지났지만 결국 코로나는 여전히 우리의 일상적 삶을 위협하며 남아 있다.

의료계의 2020년도는 ‘분골쇄신’의 한 해… 국내 방역은 제도 아닌 ‘국민의 힘’에서 나와

지난해 초 의료전문가들은 중국발(發) 입국자를 차단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으나 정부는 그들의 의견을 등한시했고, 확진자 수 줄이기에만 급급하며 늑장대응으로 일관했다. 국내 코로나 첫 확진자 발생(2020년 1월 28일)으로부터 약 1년이 지난 현 시점에 앞으로 코로나 사태의 향방과 지난 1년간 코로나 방역을 진단하는 목소리를 듣기 위해 기자는 최재욱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를 만났다.

최 교수는 여러 언론과 방송에서 코로나 방역에 대한 과학적·의학적 근거에 기반한 견해를 가감 없이 제시해왔다. 훤칠한 키에 강인한 풍채를 지닌 최 교수의 모습에서 그간 코로나 방역 현장 한가운데에 몸을 던져왔던 터라 약간의 지친 기색도 엿보였다. 최 교수에게 의료계는 지난 한 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물었다.

“가장 힘들었던 사람들은 국민이었고 환자분들이었을 테죠. 의료계 역시 코로나로 굉장히 힘들었고요. 정말 뼈를 갈아 넣는 고통과 힘듦이라고 할 정도로요. 진료 현장과 선별검사소뿐 아니라 코로나 환자를 직접 치료하지 않는 의료진까지 모두 열악한 진료환경에서 분골쇄신(粉骨碎身)의 시간을 보냈죠.”

최 교수의 말대로 지난해는 의료계로서는 가장 힘든 한 해였을 것이다. 뜨거운 여름에 무더운 방호복을 입고, 하루 18시간 이상 마스크를 착용해 귀와 콧대에서는 진물이 났지만 반창고 하나만을 붙인 채 환자들을 치료하던 의료진의 모습이 기자의 뇌리에 스쳤다. 그러나 의료계의 이런 피나는 노력에도 정부는 ‘K-방역’ 운운하며 섣부르게 자화자찬 했고, 결국 남은 것은 국민적 갈등과 소상공인들의 피눈물이었다. 최 교수에게 ‘K-방역’에 관한 정의를 물었다.

▲ 최 교수는 정부의 ‘K-방역’에 대해 “정치적 슬로건일 뿐이다”며 정면 비판했다. 그는 K-방역이란 단어는 “비윤리적이며 도덕적이지 않은 용어”라고 정의했다. ⓒ스카이데일리

“K-방역이라는 건 한마디로 ‘정치적 슬로건’이에요. 과학적·의학적 근거를 갖고 사용할 수 있는 용어가 아니죠. K-Pop, K-Food 등에는 K를 붙여도 홍보성이라 괜찮지만 방역에 K를 붙인다는 건 ‘다른 국가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가 희생자, 사망자 등에서 우월하다’는 것이죠.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타국과 비교하는 것은 의료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윤리적이지 않아요. 남의 불행과 비교해 잘했다고 칭찬하는 것과 다름없어요. 국제적으로도 부끄러운 일이죠. 우리끼리는 쓸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걸 모델화해서 세계 정상 간 회의나 유엔 등에서 K-방역이라고 말하면 안 돼요.”

최 교수는 정치권이 방역에 대해 한 국가의 앞 글자를 따서 쓰는 것을 비과학적이며 비윤리적인 단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엄중하고 심각한 코로나 상황에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들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우려했다. 그에게 ‘방역과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가’를 물었다.

“정말 안타깝지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요. 방역과 경제의 균형을 한꺼번에 아우르기는 어느 나라도 쉽지 않죠. 다만, 그런 두 마리 토끼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유연함과 신속한 대처가 과학을 기반에 두고 진행돼야 해요. 그러나 우리나라는 과학적 근거를 두고 사회적 거리두기와 자영업자가 입은 피해를 진단했느냐 하면 그렇지 않아요. 환자가 발생하면 문 닫게 하고 또 그 업종은 영업을 중지시켜버리는 방식으로만 했죠. 지금처럼 지역사회감염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정부의 이 같은 방역대응은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어요.”

“결국 전체적으로 보면 경제와 방역의 조화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어요. 방역이 그나마 이처럼 유지되는 건 정부의 역할이 아닌 오롯이 국민들께서 마스크를 잘 써주시면서 방역수칙을 지켰기 때문이죠. 우리나라처럼 전 국민이 마스크를 잘 쓰는 나라가 전 세계에 없어요. 따라서 우리나라 방역 성과는 제도가 아닌 국민에게서 나온 것으로 봐야 하죠.”

3차 대유행은 예방 가능했던 ‘인재(人災)’… “예방의학자로서 국민께 송구한 마음 커”

최 교수는 그나마 신규 확진자 수가 하루 300명대로 진입할 수 있게 된 것은 정부 정책의 힘보다 국민의 자발적 참여에서 이뤄진 결과라고 진단했다. 그에게 최근 온 국민의 관심사인 ‘백신 접종’에 관해 질문했다.

“백신에 관해서는 아직 변수가 많아요. 큰 틀에서의 계획만 나왔지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발표되지 않은 상태죠. 최근 정부가 발표한 접종 순서에도 애매한 점이 있어요. 미국, 영국, 이스라엘 등 접종을 우선 시작한 국가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접종 1순위는 의료진이라는 거예요. 치료자들을 우선 접종해야 의료체계의 붕괴가 일어나지 않죠.”

“2순위부터가 감염위험에 노출된 고령자 이어 재소자, 노숙인 등 취약계층 그리고 이런 분들을 관리하는 기관 종사자들이 접종 대상이 돼야 해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아요. 의료진과 취약계층부터 선제적인 백신접종이 이뤄져야 하는데 우려스러운 건 이제껏 그랬듯 늑장접종이 될까 하는 것이에요. 백신을 맞는 주체가 국민인 만큼 국민의 의견을 듣고 이를 공론화해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함에도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어요.”

“다만, 금년 내 코로나의 완전한 종식은 아니더라도 통제는 가능해질 것이라고 예상돼요. 팬데믹의 위험에서 벗어나고 일상생활 정상화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어요. 백신이 도입돼서죠. 아마도 코로나를 통제해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 시기를 금년 가을 정도로 보는데, 정부도 그렇게 이야기했죠.”

최 교수에게 ‘정세균 국무총리가 ‘K-접종의 모범국이 되겠다’는 말을 한 것에 대해 질문했다. 정 총리는 지난달 26일 국내에 들어올 코로나 백신의 보관과 유통을 담당할 물류센터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지난해 K-방역에 이어 올해는 K-접종으로 세계의 모범이 되겠다고 발언한 바 있다.

“접종계획은 이미 객관적으로 늦었고, 내용적으로도 부실하기 때문에 접종 모범국이 될 것이라는 정부의 말은 희망에 불과해요. 그렇게 희망하는 건 좋지만 접종에 대해 독려하고 잘 이겨내자는 분위기로 가는 것이지 그 이상으로 이번엔 ‘K-접종’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또 한 차원의 ‘정치적·선거용 슬로건’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해요.”

최 교수는 백신접종여부의 선택권 문제와 중국이나 인도가 제조한 백신에 대한 일반 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설명을 덧붙였다.

“의료진은 ‘감염병예방 및 관리법’에 의해 백신선택권 없이 강제 접종을 하게 돼요. 하지만 일반 국민은 의학 윤리상 강제 접종을 하게 할 수 없어요. 개인이 거부하면 백신 접종을 안 해도 돼요. 세간에서 ‘아스트라제네카는 맞기 싫다’는 말이 나오는데, 만약 백신의 물량이 시장에 충분히 확보된 상태라면 개인이 자비로 부담해서 백신을 맞을 수는 있어요. 다만, 충분한 물량이 확보됐다는 게 전제돼야 하겠죠.”

“또 중국이나 인도에서 만든 백신이 국내에 도입될 수 있다는 우려도 들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 정서상 중국이나 인도에서 만든 백신을 사용한다고 하면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특별한 사안이 생기지 않는 이상 해당 국가에서 백신을 들여올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봐요.”

▲ 코로나 최일선에서 국민 감염 확산 방지와 치료를 위해 누구보다 분골쇄신했던 의료계의 지난 1년이었지만 그럼에도 최 교수는 “국민께 죄송한 마음뿐이다”라며 전문의인 자신을 질책했다. 그런 그의 모습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했다. [사진=황정아 기자] ⓒ스카이데일리

인터뷰의 막바지에 최 교수에게 새해인사 겸 전하고픈 메시지를 부탁했다. 그는 먼저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고 말했다. 기자가 그간 의료진과 만났을 때 국민께 죄송하다고 말한 전문의는 처음이라 그의 대답이 마음 깊이 다가왔다. 그때 그의 모습은 ‘의업에 종사하는 일원으로서 인정받는 이 순간, 나의 일생을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한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그대로 실천하는 진정한 의사로 비쳤다.

“3차 대유행의 경우 분명한 것은 예방할 수 있었던 ‘인재(人災)’이자 ‘정책의 실패’예요. 막을 수 있었던 것을 못 막은, 예방 가능했던, 피할 수 있었던 사망이었고 감염이었는데 이런 일이 발생한 부분에 대해 공중보건 예방의학자로서 국민께 죄송하고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의료계가 정치권과 악착같이 싸워서 철저한 준비를 하고 감염을 막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한 마음뿐이에요.”

“이런 현실에서 설 명절을 맞이하게 됐네요. 다만, 지역사회감염이 워낙에 만연한 상태기 때문에 다시 또 4차 유행이 올 수 있어 지역 간의 이동, 고향 방문, 모임 등은 피해주시길 꼭 당부 드리고 싶어요. 날이 조금씩 풀리고 백신접종이 시작된 이후인 3, 4월 정도가 되면 분위기는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해요.”

끝으로 최 교수는 코로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의료진을 향한 메시지를 전했다.

“지난 1년간 코로나 현장 일선에서 치료를 맡아주신 중환자실, 병동, 선별진료소 의료진은 정말 뼈를 갈아 넣는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버텨주셨어요. 의료인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이지만, 인터뷰 자리를 빌려 격려와 지지,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어요.”

“의료인의 수고와 고생에 대해 의료진은 그 노고를 충분히 공감하며 알고 있고, 국민도 알고 계시리라 믿어요. 의료진을 향한 국민 여러분의 지지와 격려가 우리 의료인들이 조금 더 힘을 내 줄 수 있는데 보탬이 됐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