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SK케미칼, 애경산업, 이마트를 향해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10년여 전 참사 원인이 가습기살균제 때문임이 분명함에도 가해기업들은 피해보상은 물론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는 게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2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들로 구성된 가습기살균제기업책임배·보상추진회는 20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이마트 신촌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애경 본사까지 행진했다.

 

추진회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해당 업체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를 규탄하고 기업들의 사과와 배·보상을 요구했다.

 

이들은 “법원은 지난달 SK, 애경, 이마트, 필러물산 등 4개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들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며 “가해기업들이 빠져 나갈 수 있는 문을 사법부가 만들어준 건지 아니면 그 기업들이 사법부와 결탁해 탈출구를 만들었는지 의심스럽고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로 사법부가 억울한 국민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걸 다시 보여줬다”며 “사법부는 다수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돈 많고 인맥 좋은 소수 기업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줬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은 가해기업들이 가습기살균제 제품을 안전하다고 표시하고 판매해 소비자들을 기만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가습기살균제 주원료인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를 생산·판매한 SK케미칼의 모든 화학제품에 대한 신뢰성 문제를 제기한다”며 “제품만 받아 판매한 죄 밖에 없다는 식의 이마트와 애경산업 등 기업들은 지난 10년간 수많은 피해자들을 인정하지 않고 배·보상하지 않고 있다”고도 강조했다.

 

이어 “가해기업들이 진정한 책임인정과 사과, 배·보상을 하는 날까지 우리는 주저앉지 않고 항의하겠다”고 했다.

 

이들은 지난 10일 설 연휴를 앞두고도 서울 용산역 이마트와 홍대입구역 앞 애경 본사, 종각역 SK서린빌딩을 차례로 방문하며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를 향해 피해책임 인정과 사과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각 장소에서 피해자들은 “가해기업들은 1심 재판 내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을 주장해왔음에도 재판부는 가해기업들의 주장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황당한 판결을 내놓았다”며 “사법부가 다수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닌 돈 많고 인맥 좋은 재벌기업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어 “법이 우리를 지켜주지 못했으니 가습기살균제 제품을 판매한 기업들의 기만을 직접 알리기 위해 가해기업들 앞에 섰다”고 덧붙였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는 지난달 12일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에게 각 무죄를 선고했다. 아울러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이마트 및 제조업체의 전직 임·직원 총 11명에게도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SK케미칼은 2002~2011년 사망자 12명을 초래한 ‘가습기메이트’를 제조했다. 애경산업은 이 제품을 판매했다. CMIT·MIT 성분의 ‘가습기메이트’는 옥시 제품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희생자를 낸 가습기살균제 제품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 기준 ‘가습기 메이트’ 제품에 대한 부상 등 피해 신고자만 800명이 넘는다.

 

다만 재판부는 1심 재판에서 “CMIT·MIT 성분 가습기 살균제가 폐질환이나 천식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 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10일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자들은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가족을 잃었고 천식, 폐질환 등 질병을 앓게 됐다고 설명했다. 피해자 김 모씨, 왕 모씨, 최 모씨 등은 부인을 잃고 스스로는 폐질환을 앓게 됐다. 송 모씨는 부인과 장모를 잃었고 간질성 폐질환을 앓는다. 이 모씨는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상태다.

 

스카이데일리가 만났던 피해자들은 하나 같이 “가해기업으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 한 마디 들어본 적 없다”고 입을 모았다. 피해자들이 거리로 나온 배경이다. 피해자들은 매주 주말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할 계획이다.

 

일련의 사태와 관련해 SK케미칼, 애경산업 등에 회사 입장과 향후 계획 등에 대해 물었지만 별다른 입장은 들어볼 수 없었다.

 

[강주현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