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보궐선거 당시 참패 원인으로 지목된 정부·여당의 ‘내로남불(내가하면 로멘스 남이하면 불륜)’ 행태가 금융권에서도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공정과 정의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운 정부·여당이 금융 공공기관 요직에 소위 말하는 ‘내 편’을 대거 앉힌 것으로 드러났다. 올해 초 ‘캠코더(대선캠프·코드인사·더불어민주당)’ 인사 7명이 공공기관 기관장, 감사, 이사 등으로 임명되면서 대부분의 상임감사와 절반에 가까운 비상임이사들이 캠코더 인사들로 채워졌다.

 

기은·산은·수은 등 국책은행, 與·靑·캠프 출신 상임감사 신규 선임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이달 8일 기준 기획재정부(기재부)·금융위원회(금융위) 산하 공공기관 12곳의 상임감사 12명 가운데 10명이 대통령선거 캠프나 더불어민주당 출신이다. 일종의 ‘코드 인사’가 이뤄진 셈이다.

 

12개 공공기관은 △한국조폐공사 △한국조세재정정보원 △한국투자공사 △한국수출입은행(수은) △신용보증기금(신보) △예금보험공사(예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한국주택금융공사(주금공) △서민금융진흥원(서금원) △한국예탁결제원 △중소기업은행(기은) △한국산업은행(산은) 등이다.

 

상임감사는 공공기관의 경영의사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도덕적 해이’와 ‘방만 경영’ 등 자원배분의 비효율을 감시하고 이를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국민들의 혈세가 낭비되는 것을 막고 공공재화 및 서비스 품질을 높이는 중요한 책무다. 그러나 현재 공공기관장과 상임감사 등은 역할에 걸맞는 전문성과 상관없이 정치적 인연으로 자리에 앉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은은 지난달 8일 임종성 상임감사 후임으로 정재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선임했다. 정 상임감사는 참여정부에서도 일한 대표적인 친문 인사다. 참여정부 시절 민정수석을 맡은 그는 18·19대 대선 당시 ‘문재인캠프’에서 활동하며 문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다. 이후 민주당 대외협력위원장, 문재인 대통령 러시아 특사단 등을 거쳐 20대 국회 후반기엔 정무위원회 간사까지 역임했다. 그는 21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며 1년 가까이 야인으로 지내다가 조용히 기은에 둥지를 텄다.

 

산은도 지난달 15일 서철환 상임감사 후임으로 주태현 기재부 세제실 관세정책관을 선임했다. 주 상임감사는 대선캠프 등 정치권에서 활동한 인사는 아니지만 문 대통령의 핵심 경제 정책인 ‘소득주도성장’과 관련해 정부와 호흡을 맞춘 바 있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소득주도성장추진단에 파견돼 소득재분배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데 일조했다.

 

 

수은 역시 1월 25일 조용순 상임감사 후임으로 김종철 변호사를 선임했다. 김 상임감사는 문 대통령과 경희대 법대 동문으로 19대 대선 당시 ‘문재인캠프’에서 법률 자문역을 맡은 바 있다. 그는 특히 금융·경제 전문성을 내세우기 위해 허위 경력을 기재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인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월 보도자료를 통해 “수은은 ‘김 변호사가 2004년 신보와 주금공 법률 고문을 지냈다’고 소개했지만 해당기관에 직접 확인한 결과 법률고문을 맡은 적이 없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국책은행의 감사직을 수행할 자질이 부족함에도 허위 경력을 바탕으로 임명됐다는 게 유 의원의 주장이다.

 

낙하산으로 의혹을 받는 인사는 작년 하반기에도 있었다. 예보는 지난해 10월 22일 이한규 전 민주당 정책위원회 정책실장을 상임감사로 선임했다. 이 상임감사는 민주당 정책위원회 예산결산수석전문위원과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기획분과 전문위원, 정책위원회 정책실장 등을 지낸 정치인이다.

 

금융 공공기관 수장들도 대통령 또는 여당과 가까운 인사들로 가득 찼다. 공공기관 알리오 경영공시에 따르면 12곳의 공공기관장 가운데 7명이 현 정부와 가까운 인사들이다. 올해에도 이러한 기조는 이어졌다. 반장식 전 대통령비서실 초대 일자리수석이 한국조폐공사 사장으로 선임된 것이다. 반 사장은 참여정부 시절 기획예산처 차관과 재정운용실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보수정권 9년 동안 학계에만 머물렀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일자리수석으로 화려하게 복귀하며 문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을 이끌었다. 2018년 수석에서 물러난 이후 2019년에는 차기 기업은행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비상임이사 10명 중 4명 이상은 친정부·친여당, 전문성 의심스러운 ‘낙하산 인사’

 

사외이사 역할을 하는 금융 공공기관의 비상임이사 자리도 현 정부·여당과 긴밀한 인연을 맺은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알리오 경영공시에 따르면 12곳의 비상임이사 53명 가운데 42%인 22명이 대통령 또는 민주당과 인연이 있거나 진보 성향 시민단체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신보는 2월 1일 윤영미·주두수 전 비상임이사 후임으로 김공회 경상대학교 교수와 박미혜 법무법인 믿음 변호사 등을 선임했다. 김공회 비상임이사는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국민성장 분과 위원을 역임하며 ‘소득주도성장’과 ‘경제민주화’ 정책을 이끌었던 인사다. 2015년에는 한겨레신문사 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함께 선임된 박미혜 비상임이사는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경남지부장이다. 2010년 4대강 사업 반대위, 2012년 부마항쟁 피해자 손해배상소송, 2017년 거제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소송 등에 참여했다. 2012년 18대 대선 당시엔 ‘문재인 후보 담쟁이캠프’ 경남 선거대책위원회에서 공동선대위원장을 역임하며 문 대통령을 도왔다.

 

 

총선 직후인 작년 하반기의 경우 새로 금융기관 비상임이사를 맡은 인사들을 둘러싼 낙하산 논란이 유독 많았다. 특히 논란의 주인공 중에는 민주당 출신이 두드러졌다. 21대 총선에서 민주당 용산 예비후보로 나선 선종문 변호사는 작년 8월에 예보 비상임이사로 선임됐다. 한국자산관리공사 비상임이사 자리는 박영미 민주당 부산 중구·영도구 지역위원장이 꿰찼다.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총선기획단 공약분과장을 맡은 박상현 영산대 교수도 한국자산관리공사 비상임이사로 임명됐다. 홍준기 전 대전광역시 서구의회 의원 역시 한국조폐공사 비상임이사를 차지했다. 그 밖에 박범계 민주당 의원 보좌관 출신인 우정영 전 국제방송교류재단 이사도 분야가 다른 서민금융진흥원 비상임이사를 맡았다.

 

금융기관 상임이사 중에도 민주당 출신이 일부 포진해 있다. 지난달 2일 선임된 박상진 예보 상임이사는 국회사무처 출신으로 21대 총선에서 민주당 속초·고성·양양선거구 예비후보로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당원이다.

 

정부·여당과 긴밀한 인연을 맺은 인물들이 금융기관 요직을 대거 꿰차고 있는 데 대해 다수의 전문가들은 현 정부가 최우선 가치로 내세운 정의·공정의 가치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이중적 행태라고 꼬집었다. 동시에 금융산업의 발전을 가로막아 종국엔 한국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는 적폐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국회입법조사처는 2017년 ‘금융공공기관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정책과제’ 보고서에서 “금융공공기관에서 기관장 등 임원 임명과정에서 정부의 입김이 작용해 전문성이 부족한 낙하산 인사가 투입되는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에서 조대형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일반공공기관의 지배구조가 경영진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주된 목표로 하고 있는 반면 금융공공기관은 금융 기능을 수행하는 정책금융기관으로서 정부, 금융회사, 기업, 개인 등 많은 이해관계자뿐만 아니라 관련 금융정책 및 금융시장에 대한 영향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금융공공기관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경영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관치금융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임원추천위원회가 외부의 정치적인 영향력 등에 좌우되지 않고 임원후보를 검증하고 추천할 수 있도록 독립성과 실효성이 담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승준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