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임현범 기자] 부산을 대표하는 막걸리 업체인 생탁(부산합동양조)을 둘러싼 논란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간 열악하다 못해 끔찍한 근무 환경과 직원에 대한 비인격적인 처우로 세간의 입방아에 올랐던 생탁이 진정국면으로 접어드는 듯 했으나 상황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4월 생탁 노동조합원 송복남 씨가 고공농성에 돌입한지 253일만에 서병수 부산시장의 중재를 받아들이며 노사간 원만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당초 예정됐던 4자 협의는 최근까지 단 한 차례 이뤄지지 않아 진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생탁은 부산 지역 양조장 43곳이 모여 만든 합자회사 형태를 갖추고 있다. ‘부산합동양조’라는 합자회사로 사장 수만 40명에 달한다. 총 노동자 수가 120명인데 사장의 수가 40명인 기형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문제가 된 생탁의 열악한 근무환경은 지난 2014년 설립 40년만에 처음으로 결성된 노조의 활동으로 세간에 드러났다. 당시 생탁에 근무했던 노동자의 증언에 따르면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기 전 생탁의 노동조건은 주 5일제는 고사하고 월 1회 휴무가 전부였다는 것이다. 더욱이 퇴근 시간마저 회사의 사정에 따라 임의로 늘어나기 일쑤였다고 노조는 밝혔다.

생탁 노조는 “막걸리 생산량이 늘어나면 휴일도 없이 하루 15시간 넘게 일하기도 했다. 일요일에 근무했지만 특근수당은커녕 그에 걸맞는 합당한 수당 지급마저 이뤄지지 않았다. 심지어 고구마와 삶은 계란으로 식사를 대신하기도 했다. 1인당 식대 450원이라는 충격적인 내용이 보도되며 공분을 사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노조 관계자는 또 “당시 연월차를 쓸 수 없는 생탁 공장 노동자들은 집안의 경조사에도 참여하기 힘들었다”며 “평일에 쓸 수 있는 유일한 휴가는 1년에 하루였는데 이마저도 집안의 경조사를 대비해 아껴야했다”고 토로했다.

부산고용노동청 등에 따르면 정년이 만 55세인 생탁에서 20~30년간 일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월 130만~200만원 정도를 받는 촉탁계약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을 호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었다.

생탁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이슈화된 이후 부산노동청이 실태 점검에 나선 결과 생탁은 근로기준법 위반 6건,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위반 1건,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 위반 1건,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관한 법률 위반 1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9건 등 총 18건의 불법 행위가 적발됐다.

생탁은 부산노동청으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특별근로감독과 산업안전법 위반 등의 혐의로 230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또 부산식품의약품안전청은 생탁이 평소 천연암반수를 사용해 만든다는 광고와 달리 일부 제품을 수돗물로 생산했다는 점 등을 적발해 과징금 5000만원의 행정처분을 내렸다.

익명을 요구한 전 생탁 노동자는 “사측은 생탁의 광고문구에 ‘좋은 친구 생탁’이라는 표제어를 넣어놓고 노동자를 노예 취급해왔다”고 울분을 토했다.

부산지역일반노동조합과 생탁 노조 등에 따르면 생탁 사장들은 막대한 수익을 챙겨왔다고 한다. 합자회사 형태를 갖춘 생탁은 파업이 일어난 장림제조장에만 25명의 사장이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생탁의 실적은 매출액 200억원, 순이익 71억원을 기록했다.

천연옥 부산지역일반노동조합 부위원장은 “노동자들이 끔찍한 환경에서 번 돈을 생탁 사장들은 앉아서 고스란히 챙겨갔다. 심지어 실제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사장은 2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지분만 소유한 채 배당금만 챙겨가고 있다”며 “사장 25명이 70억원을 배당금으로 챙겨갔는데 이는 사장 1인당 매달 2000만원 이상을 받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손배소송과 253일간의 고공농성…부산시의 ‘4자 협의’ 제안도 이뤄지지 않아  

지난 2014년 생탁이 설립된지 40년만에 결성된 노조는 열악한 근무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교섭을 시작했다. 하지만 사측은 노조의 요구를 완강히 거부했고 이에 노조는 같은 해 4월 생탁 설립 이후 처음으로 파업에 돌입했다.

파업 돌입 후 사측은 파업 중인 일부 노동자를 계약이 해지됐다며 해고했고 파업중인 10명의 조합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파업 노동자들로 인해 사장 25명의 명예를 훼손했고 생탁의 이미지를 실추시켜 매출액 감소를 야기했다는 이유에서다.

거듭된 개선 요구에도 사측이 무시로 일관한다고 판단한 운전일을 하던 송복남 씨는 결국 지난해 4월 부산시청 앞에 위치한 광고탑 위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송 씨가 사측에 내건 조건은 3가지로 사측의 노동조건 개선, 파업기간동안 생계비 지급, 계약직 노동자의 고용보장 등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송 씨의 요구에도 사측이 묵묵부답 행보를 보이자 지난해 12월 서병수 부산시장이 중재에 나섰다. 서 시장의 중재안은 생탁 노사, 노동청, 시민단체 등 4자가 모인 협의체를 만들어 협상을 이끌겠다는 것이었다.

서 시장의 중재 약속을 받은 송 씨는 고공농성 253일만에 땅을 밟았다. 장기간 지속된 생탁의 문제 해결을 위해 시와 시민단체와 노동청이 나섰다. 이에 노사간 원만한 합의의 실마리를 이끌어내는 듯 했지만 4자 협의가 한 차례도 열리지 않고 있어 여전히 제자리걸음 상태로 알려졌다.

천 부위원장은 “사측은 부산시의 중재 제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조측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태”라며 “4자 협의는 차일피일 미루면서 노동자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계속 진행해왔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심지어 지난 4일 열린 손배소송에서 재판부도 사측의 주장을 모두 기각하며 노조측 손을 들어줬다”며 “사측은 오히려 더 이상 걸릴 것도 없다며 4자 협의도 차일피일 미루는 등 노동자들의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생탁 사측이 현재 10명의 조합원 중 4명 이상을 계약해지 형식으로 해고시키려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조측에 따르면 생탁을 둘러싼 노사간 갈등에 부산시장이 중재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사측은 여전히 개선의지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천 부위원장은 “생탁이 노동부에 적발된 이후 바뀐 것은 법이 제한하는 최소한의 노동기준만 충족했다”며 “남성 30만원·여성 20만원 임금인상, 연차 보장 이외는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부산시민단체 관계자는 “근로기준법을 무시하며 노예노동을 강요한 생탁이 시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개선의지마저 보이지 않고 있다”며 “상식을 벗어난 행동은 결국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라고 전했다.

스카이데일리는 생탁 측의 입장을 듣기위해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사측 관계자는 매번 “담당자가 없다”거나 “답변을 할 수 없다”는 대답만 되풀이 하는 등 사실상 취재를 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