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32년만의 노골드’란 충격을 당한 레슬링 대표팀은 설욕전에 나섰다.

하지만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정지현이 그레코로만형 60㎏급 8강전에서 석연치 않은 패배로 명예회복은 다음 기회로 미뤄야 하는 상황.

그러나 젊은 피 김현우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한국 레슬링의 절망을 그는 금메달을 따내면서 희망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김현우는 1988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2남 중 차남으로 어릴 때부터 남다른 승부욕이 강했다.

그의 가족은 운동가족이다. 주로 테니스를 즐겨했던 아버지 김영두씨와 한때 어렸을 적 육상선수로 활약했던 어머니 박영효씨로 부터 유전적인 요인을 받아 운동신경도 뛰어났다.

그의 형 김민우씨도 역시 어릴 때부터 태권도를 했었고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현재는 골프선수 지망생이다.

“저희 가족이 운동을 다 했습니다. 특히 큰 아들인 민우가 어릴 때부터 태권도 선수로 활동했고 형과 가족의 영향을 받아 현우도 운동을 좋아했죠. 특히 현우는 한창 클 나이인 사춘기 시절에 체중 조절을 하기 위해 굶기 일쑤였는데 부모로서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자신의 꿈을 위해 한창 성장할 나이에 굶는 모습을 보는 어머니 박씨의 심정은 당사자가 아니면 느끼기 어려운 고통이었을 게다.

김현우는 원래 레슬링 이전에 유도를 배웠다.

강원도 원주 교동초등학교 시절, 김현우는 운동가족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유도 선수생활을 시작했고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현우는 어릴 적부터 유도 학원에 다녔습니다. 왜소한 체격에도 불구하고 상대선수를 압도하는 경기가 많았습니다. 운동에 탁월한 끼가 있었던거죠.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자 유도를 하는 학교가 없어 레슬링으로 바꾸게 된 겁니다”

박씨는 만일 유도를 하는 학교가 있었다면 지금쯤 유도를 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든다고 한다.

김현우가 레슬링으로 종목을 바꾸게 된 계기에는 평원중학교 최호순 레슬링 코치가 있었다.

박씨에 따르면 초등학교 6학년 때 최코치로부터 레슬링을 권유받았다는 것.

중학교 때 친구들하고 함께 한 기마전에서는 늘 선봉에 서 상대를 제압했고, 친구들과 팔씨름을 할 때도 결코 지는 경우가 없었다.

혹 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힘을 길렀고 다시 시합에 붙어 결국에는 이기고 말았다.

‘악바리’ 같은 김현우이지만 부모 앞에서는 딸처럼 살가웠다.

박씨는 김현우가 해외 시합에 나가게 되면 귀국하면서 어머니를 위해 립스틱을 사올 만큼 정겹고 순수한 면이 더 많다고 한다.

박씨는 예전에 경기를 기록했던 영상을 보면서 승부욕은 강했지만 룰을 몰라 어찌할 지 몰랐던 아들의 순수한 모습을 보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고 말했다.

당시 첫 대회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우수한 성적을 거뒀고 이후 전국체전, 문화관광부장관기, KBS배 레슬링 경기 등 계속된 시합에서 1, 2등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운동선수이기에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고통의 순간들은 지금도 박씨의 눈시울을 적셨다. 바로 체중조절과 부상이었다.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현우가 체중 조절을 위해 굶는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그의 형도 마찬가지였구요”

그가 중학교 시절 35kg을 유지하기 위해 식사를 거르는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 김영두씨는 운동을 포기시키려 했다.

“현우 아빠는 포기하자고 했었죠. 하지만 현우는 힘들었지만 기꺼이 레슬링을 즐겼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일단 스스로 포기할 때까지 지켜보기로 했죠”

 

“대만에서 시합이 있었는데 하루는 현우가 울면서 전화를 했어요. 체중을 재야하는데 하루 연기가 됐다는 거예요. 현우가 체중 계측을 위해 먹지 못한 상태에서 하루가 더 연기가 됐으니 또 굶어야 하는 상황이죠. 첫 외국에서 치르는 경기인데다 체중조절에 대한 압박감 등으로 컨디션 조절이 잘 안된다며 울먹이며 전화를 한 거죠”

꿈을 위해 먹고 싶어도 참았던 경우이지만 박씨는 엄마로서 잘 먹이지 못한 게 두고두고 한으로 남는다고 한다.

김현우는 그러나 카뎃 대회에서 발군의 실력을 뽐내며 당당히 35kg체급에서 1위를 했다. 이를 계기로 국제 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게 되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

졸업 후 김현우는 춘천의 강원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고 각종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고1시절부터는 체급을 68kg이하 급으로 올렸다.

하지만 부상이 재발해 또 한 번의 위기를 맞았다.

“중학교 시절 부상을 입었던 무릎부상이 또 재발했습니다. 치료 후 휴식기를 가졌어야 했지만 그러질 못했습니다. 계속된 시합 출전으로 무릎에 심각한 통증이 왔었죠”

박씨는 아들을 데리고 병원을 찾았지만 청천벽력과 같은 얘기를 듣고 만다.

“병원에 갔었는데 그 의사 선생님은 수술을 권했습니다. 수술을 하면 정상적인 생활은 가능하지만 레슬링을 못한다고 말을 했습니다”

운동선수에게는 사형 선고와 다를 바 없는 얘기였다.

선택의 기로에 선 김현우는 그러나 운동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였고 부모 역시 그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그러나 수소문 끝에 무릎치료로 유명한 병원을 알게 됐고 결국 수술을 받고 재활을 통해 완치를 하게 됐다.

수술 후 20일간 입원하는 동안에도 김현우는 재활과 훈련을 겸비한 치료를 받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김현우는 레슬링을 놓지 않은 것이다.

완치 후에도 고3시절에는 과테말라에서 열린 주니어 세계대회에서 2등을 하는 등 각종 대회를 휩쓸었다.

이런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당시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섰지만 결국 탈락하고 상비군으로서 만족을 해야 했다.

그러나 김현우는 낙심보다는 기회를 보고 있었다.

“현우가 주니어 시절부터 기량이 더 뛰어난 선배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에 오히려 다양한 경험과 실력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했었나 봅니다. 국가대표에서 떨어지고 나서 오히려 더 열심히 운동을 했어요”

이 즈음 김현우는 경남 마산에 있는 경남대학교 레슬링 특기생으로 입학을 하게 된다. 김현우는 여기에서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받아 왔다.    

하지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김현우는 또 한번 기회를 잃게 된다.

기초적인 체중 조절에 실패하고 허리부상으로 국가대표 선발전 출전을 포기하게 된 것. 첫 출전은 그렇게 무산됐다.

하지만 두 번의 후회는 없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 국가대표로 나와 그는 마침내 36년간 이어져 온 효자종목의 명맥을 잇고 한국 레슬링의 자존심을 세우고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