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평 남짓 조그만 공간, 테이블 대여섯 개와 의자들. 한켠에는 기타·신디사이저·음향기기들이 빼곡한 1평 크기의 무대가 있다. 24층 건물에 위치한 덕분에 서울시내 전망이 일품인 이곳은 20년 가까이 희귀병·실종아동을 돕고 있는 ‘노래하는 천사’ 이영준 두레소리 대표의 일터 겸 언더그라운드 가수들 모임인 ‘두레소리’ 사랑방이다.

 

“돈 안 되는 자선공연만 하면 도대체 뭘 먹고 사십니까”라는 기자의 엉뚱한 질문에 “저는 지금의 삶이 너무 행복한데요”라면서 웃으며 대답하는 이 대표는 그가 ‘천상여자’라 칭하는 한 여인의 남편이자 4남매의 존경받는 아빠다. 이 대표만 바라보며 주저 없이 자선모금공연에 나서고 있는 두레소리 식구들의 든든한 버팀목이기도 하다.

 

 

이 대표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자선공연가의 이미지와는 다른 결을 갖고 있다. 대중음악가로서 뛰어난 자질을 가졌음에도 그는 수많은 대중이 모인 곳보단 세상이 잊고 있는 소외된 작은 무리의 대중을 20여 년 동안 매주 찾아 나선다.

 

스스로 택한 인동(忍冬)의 삶. 가치 지향적인 삶을 위해 20년간 곁눈질조차 하지 않고 소외된 이들을 찾아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이 대표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그의 아지트인 라이브 카페 ‘마스터즈’에서 만났다.  

 

“사실 자선모금공연을 하다보면 경제적 타격이 크죠.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이곳 라이브 카페를 찾는 손님들도 많지 않구요. 근데 저는 가게 문을 닫고 자선모금공연 하러 나갈 때가 가장 행복해요. 비장함도 있죠. ‘이번 공연은 정말 열심히 하고 와야지’하는 생각에 마음을 단단히 하고 나갑니다. 애기엄마나 가족들도 늘 응원하죠.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지금까지 부끄러움 없이, 부족함 없이 잘 살아 온 것 같아요.”

 

이 대표는 1980년대 내로라하는 통기타 가수들의 활동무대인 무교동의 ‘코스모스코러스’, 명동의 ‘영스타’ 등에서 가수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외국 번안곡부터 팝송, 아침이슬까지, 당시 젊은이들의 분노와 억압된 마음을 대변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실력파 언더그라운드 가수로 성장해 나갔다. 방송에도 출연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어요. 그때는 ‘문학의 밤’이 최고의 음악무대였는데, 그곳에 찬조출연하면서 많은 인기를 얻기도 했죠. 부모님 반대도 심했어요. 소위 명문고등학교에 들어갔는데 공부는 안하고 음악 한다고 하니 얼마나 속이 상하셨겠어요. 하지만 제 길 잘 왔다고 생각해요. 부모님 생각을 따라갔다면 일상적인 삶을 살고 있었겠죠. 지금의 삶보다 질이나 만족도에서 부족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무교동 1가에 코스모스코러스라는 아주 유명한 통기타 생맥주집이 있었어요. 그곳에서 오디션을 본 후 가수생활을 시작하게 됐죠. 처음부터 잘 풀린 셈이죠. 명동 입구에 코스모스 백화점이 있었는데 거기 지하에 ‘영스타’라는 2000평 정도 되는 업소가 있었어요. 양희은, 송창식 그런 분들이 출연하는 곳이었죠. 코스모스코러스에서 활동하다 영스타로 들어가 활동하게 됐죠.”   

 

“제가 제일먼저 오후 3시에 스테이지를 시작했어요. 제 시간이 끝나면 업소 한쪽에 앉아 영업이 끝날 때까지 ‘다른 가수들은 어떤 노래를 어떻게 부르는지’ 체크하며 공부 했죠. 제가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주변에서 좋게 봐주셔서, 현대백화점 건너편에 ‘고전’이라는 카페가 있었는데 그곳으로 스카우트됐어요. 진짜 음악은 그때부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죠.”

 

1980·90년대 잘 나가던 실력파 언더그라운드 가수 이영준의 주위에는 수많은 후배들이 모여들었고 언더그라운드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음반취입 등 그의 가수인생에 탄탄대로가 놓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대표의 인생은 2001년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던 한 소년을 만나면서 180도 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이때부터 성공이 보장된 무대 대신, 세상이 돌아보지 않는 소외된 이웃들을 찾아 거리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곳 마스터즈는 1999년에 오픈을 했어요. 술집으로 운영도 하고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의 연습실도 겸해서 사용하고 있죠. 2001년 이곳에 모인 몇몇 뜻있는 가수들과 함께 ‘가장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 도와주는 활동을 하자‘고 의견을 모았죠. 당시 희귀난치성질환이 사회적 문제로 이슈화 될 때였어요. 우선 희귀난치성 질환 환우들에 대해 알아야 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야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한테 희귀난치성 질환에 대해 제대로 홍보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관련단체의 소개를 받아 ‘근이여양증’이라는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의 집을 찾아갔죠. 건물바깥으로 철계단이 있는 4층 연립주택이었죠. 아이 엄마는 키 163cm에 몸무게는 50kg 밖에 안 돼 보이는데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인데도 60kg 정도 됐어요. 마침 학교에서 아이가 돌아왔는데 엄마가 그 아이를 지게 지듯이 업고 4층으로 올라가는 거예요.”

 

“모자의 뒷모습을 보면서 가슴에 무엇인가 꽉 맺혀 오더라구요. 아이 집으로 들어갔는데 ‘엄마 화장실’하면 엄마가 아이를 들어서 옮기고, 침대로 또 들어서 옮기고, 한 30분마다 돌려서 눕혀주고...‘ 이분들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했죠.”

 

이 대표는 곧바로 봉사활동의 구체적인 계획을 만들고 함께 할 가수들을 규합했다. 그리곤 곧장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화정역 광장으로 달려갔다. 이때부터 희귀난치병 환자들을 돕기 위한 '사랑의 날개 달기' 거리모금공연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의욕이 먼저 앞서다보니 관공서에 공연허락을 받는지도 몰랐어요. ‘시끄럽다’며 주민들의 항의도 엄청 들어왔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다보니 주민들도 ‘좋은 일 한다고 하니 소리를 좀 줄여주고 하자’며 좋은 반응을 보이시더라구요. 그곳에서 매주 토·일요일 두 번씩 2년 동안 거리모금 공연을 했어죠.”

 

 

이 대표와 두레소리가 지난 20여 년간 진행한 거리모금공연은 약 800회에 달한다. 매주 1회 이상 꾸준히 해오고 있다. 희귀난치성 환우부터 화상환자, 실종아이에 이르기까지 이 대표는 자신이 도울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모금금액은 10원짜리 하나 손대지 않고 전액 관련단체에 기부했다. 기부금으로 장만한 전동휠체어를 타며 즐거워하는 희귀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이 대표에게 더 힘을 주었고 행복한 마음으로 거리로 나설 수 있게 했다. 

 

이 대표는 오랫동안의 자선모금공연을 통해 가치있는 삶과 행복을 얻었지만 이에 대가도 뒤따랐다. “공연을 계속 하다 보니 음향기기도 필요하고, 고장 난 악기도 수리해야 하는 등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거예요. 그렇다고 저희가 다른 곳에서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니구요. 안되겠다 싶어 애기엄마한테 얘기해 마이너스 카드 1000만원을 긁었죠. ‘내가 벌어서 갚을께’ 했는데 2014년 말에 집을 팔면서 겨우 갚았어요. 이자만 거의 1000만원 이상 나갔더라구요.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리기도 했어요.”

 

자선모금공연 초창기 15명의 가수들이 함께하면서 자기 노래할 시간도 못 갖는 가수들이 있을 정도였지만,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하나둘씩 자리를 비우기 시작했고, 어떤 때는 3시간의 공연을 3명이 진행하기도 했다.

 

“요즘은 멤버들이 많이 빠지고 새로운 사람이 잘 안 들어오죠. 자선모금공연은 토요일과 일요일에 하는데, 지자체에서 주최하는 음악회나 축제도 주말에 하다 보니...경제적으로 어려운 때이기도 하니까요. 그래도 평균 7명 정도는 채워지더라구요. 지금 정기적으로 나오는 사람도 12명 정도 되구요. 두레소리가 사단법인으로 전환되면서 그래도 한 달에 30만원~40만원 후원 받고 있어요.”   

 

“주위에선 걱정과 우려가 많았죠. 무엇보다 경제문제 때문이죠. 하지만 애기엄마는 제가 하는 일에 한번도 ‘노’라고 한 적이 없어요. 아이들도 아빠가 하는 일을 늘 자랑스러워하며 커줬어요. 지금도 ‘아빠를 존경한다’고 말해줄 정도로 너무 소중한 아이들이죠.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왜 짐이 없겠어요. 지금은 다 장성해서 자신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대견스럽죠.”

 

이 대표는 얼마 전 용산역에서 진행해 온 실종어린이 돕기 자선모금공연을 마쳤다. 그는 또 다시 소외된 이웃들을 찾아 자선모금공연을 계획하고 동료들을 모을 것이다. ‘저러다 말겠지’ ‘앞가림부터 해야지’라는 억측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선모금공연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동휠체어를 타고 좋아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처음 전율 같은 것을 느꼈어요. ‘아 저런 삶도 있구나’ 근이영양증은 스무 살쯤 사망하죠. 그런데도 아이들의 사는 모습과 표정이 참 밝았어요. 이들은 도와야겠다고 생각하니 참 행복했어요. 지금도 저의 부족한 재능을 통해 세상이 돌아보지 않는 이들을 돕고 있다는 것에 행복감을 느끼죠. 사실 제가 돕는다기 보다는 제가 그들에게서 살아가는 힘을 얻죠.”

 

“아내와 자녀들의 응원이 없었다면 지금의 제 삶이 불가능했을 거에요. 제가 유명한 음악가도 아니고 많은 돈을 버는 사람도 아닌데, 아내와 자녀들이 지금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고 꾸준히 살아 온 제 모습을 지켜보면서 인정해 주고 존경해 주는 것을 보면, 오히려 아내와 자녀들이 더 고맙고 존경스러울 때가 많죠.”

 

“솔직히 저도 돈이 싫은 사람은 아녜요.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데서 한 치도 벗어나지 싶지 않아요. 세상에 쓸데없는 일이란 없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정성을 다하면 그만큼 행복한 삶이 어디 있겠어요. 저는 지금도 공연을 위해 가게 문을 나설 때가 가장 가슴이 두근거리고 행복합니다.”  

 

[김진강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