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가 주택정비 사업에 대한 전방위적 규제를 가하면서 기존 사업을 추진하던 재건축 단지들에서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해지자 조합과 시공사 간에 공사비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공사비 갈등은 결국 사업을 지연시켜 또 다른 손실을 낳고 건설경기를 악화시킨다는 점에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건설경기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정부가 급등한 서울 집값을 잡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주택공급의 한 방편인 정비사업 규제를 강화하고 있어서다. 문재인정부는 재건축 진행 자체를 어렵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비용부담도 대폭 늘렸다.

 

우선 2018년 재건축을 통해 조합원이 얻게 되는 이익 중 인근 집값 상승분과 개발비용 등을 뺀 금액이 1인당 평균 3000만원을 넘을 경우 초과금액에 대해 최고 50%까지 환수하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를 부활시켰다.

 

2006년 참여정부 시절 처음 도입된 초과이익환수제는 사유재산 침해 논란의 여지가 크고 부동산경기를 침체시킨다는 지적에 따라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유예됐었다. 이에 대해 부동산업계와 재건축 조합 등은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크게 반발했지만 구랍 27일 헌법재판소는 해당 제도를 ‘합헌’으로 판결내렸다.

 

정부는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도 대폭 강화했다. 재건축 가능 연한을 준공 후 30년에서 안전진단 기준에 따라 안전에 문제가 있을 때에만 재건축을 할 수 있도록 변경했다. 정량적 평가에서 고무줄 잣대 논란의 여지가 큰 정성적 평가로 바꾼 셈이다. 안전진단 평가항목 가운데 ‘구조안전성 평가’의 가중치를 기존 20%에서 50%로 2.5배나 높인 반면 주거환경은 40%에서 15%로 대폭 낮췄다.

초유의 부동산 규제정책이라 불리는 ‘분양가 상한제’ 카드도 꺼냈다. 서울 전 지역을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으로 설정하고 유예기간을 거쳐 본격적으로 시행한다고 밝혔다. 올해 4월 분양가 상한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신규 민간 아파트의 분양가는 주변 아파트 시세와 상관없이 택지비와 건축비를 합산한 기준금액 이하로 제한된다.

 

 

정부의 각종 주택정비사업 규제로 인해 건설사들의 수주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재건축 사업을 미루는 단지가 속출하고 있는 데다 리모델링으로 사업을 변경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일감 자체가 크게 줄어든 탓이다. 일부 재건축 단지에서는 건설사들의 경쟁 과열로 인한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기존에 없던 다른 부작용까지 나타나고 있다. 수익성 타격이 불가피해진 조합들과 건설사 간에 공사비 갈등과 이로 인한 사업지연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건설업의 경우 사업기간 연장은 곧장 비용 증가로 직결되는 만큼 결국 애꿎은 조합원들만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 정비업계 안팎에선 건설사들이 수주를 망설이게 됨으로써 건설경기 악화도 불가피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일례로 구랍 11일 시공사 입찰을 마감한 서초구 신반포21차 재건축 단지는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건설사들이 한 곳도 입찰에 참여하지 않아 자동 유찰됐다. 앞서 신반포21차는 GS건설, 대우건설, 포스코건설, 현대산업개발, 롯데건설 등 유명 건설사들의 치열한 수주 경쟁이 예상됐지만 조합 측이 제시한 공사비가 너무 낮아 결국 유찰됐다. 

신반포21차 재건축 조합이 입찰에서 제시한 공사비는 3.3㎡당 550만원이었으나 건설사들은 조합 측이 제시하는 공사수준을 맞추려면 3.3㎡당 최소 700만원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반포21차 재건축 조합은 이달 중 재입찰 공고를 낼 예정이다.

 

서초구 신반포15차는 조합과 시공사가 공사비를 두고 갈등을 빚다 결국 계약 해지 수순을 밟고 있다. 해당 단지는 지난 2017년 대우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됐다. 당시 조합과 대우건설이 합의한 공사비는 3.3㎡당 499만원이었다.

 

이후 설계 변경이 이뤄지면서 공사비 증액을 두고 조합과 시공사가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였다. 대우건설은 500억원, 조합은 200억원 증액을 각각 주장했다. 오랜 시간 동안 양측의 입장 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지난달 5일 조합은 임시총회에서 시공사인 대우건설과의 계약해지 안건을 가결하고 일반 분양을 후분양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결의했다.

 

정부의 주택정비사업 규제로 서울 내 여러 재건축 단지에서 공사비를 둘러싼 조합과 건설사 간에 갈등이 빚어지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업지연으로 인한 사업비 증가와 이로 인한 조합원 피해, 건설경기 위축, 공급차질로 인한 집값 상승 등의 부작용 발생이 불가피하다는 반응이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경인여대 교수)는 “분양가격을 통제하거나 재건축 초과이익을 환수하면 조합원들의 이익이 감소하기 때문에 조합원 입장에서는 공사비를 깎으려는 모습이 앞으로 많이 보일 것이다”며 “이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분양가상한제 등과 함께 공급을 감소시키는 또 하나의 요인이 추가되는 셈이다”고 진단했다.

 

이어 “조합과 시공사 간에 공사비 갈등이 늘면 늘수록 조합원들의 피해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건설경기 악화와 공급 차질로 인한 주택가격 상승 등의 부작용도 생겨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배태용 기자 / 생각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