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월 국내 대표적 동물권 단체인 ‘케어’의 박소연 대표가 유기동물 200여 마리를 4년에 걸쳐  안락사 시킨 것으로 밝혀지면서 국내 동물권 운동은 심각한 도덕적 타격을 입었다. ‘동물의 생명권 존중과 학대받지 않을 권리’를 외치면서도 동물의 생명을 자의적으로 빼앗은 행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또한 최근에는 모 동물보호단체 간부들이 개 농장을 무단 침입해 동물들을 강제로 빼앗은 사건이 발생해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는 등 국내 동물권 운동은 갈수록 위기를 맞고 있다. △유명활동가 중심의 독단적 단체 운영 △후원금 모금 목적의 보여주기 식 동물구조 활동 △불투명한 재정관리 △명망가 영입을 통한 위상 과시 등 일부 동물권 단체들의 고질적 병폐는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국내 동물권 운동을 위기로 몰아넣은 주범으로 꼽힌다.

 

하지만 동물의 생명권을 보호하고자, 지금도 길거리를 헤매는 유기동물들과 죽음 직전에 내몰린 아이들을 찾아 나서고 있는 동물권 단체와 활동가들은 우리 주위에 많다. 이들은 일부 대형 동물권 단체처럼 매스컴에 의존하지 않는 활동 탓에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을 뿐이다. 

 

 

스카이데일리가 만난 유기동물 구호·입양 단체인 ‘팅커벨프로젝트’(이하 팅커벨)는 ‘동물권 보호’라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수많은 동물권 단체 중 하나다. 무엇보다 △선제적 재정운영 공개 △회원 중심의 집단적 의사결정 △동물 중심으로 짜인 구조·입양 프로그램 등 팅커벨이 보여주는 활동과 시도들은 ‘후원금·명망가·불투명’이란 낙인이 찍힌 일각의 동물권 운동과는 결이 다른 족적을 남기고 있다.  

 

팅커벨은 동물권이 외면당한 현장 위에서 출발했다. “2013년 동물보호소에서 안락사 직전에 구조한 강아지가 다음날 파보바이러스로 죽은 적이 있었어요. 단체 이름인 ‘팅커벨’은 그 강아지 이름에서 따온 거예요. 팅커벨 처럼 안타까운 죽음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동물보호소에서 안락사 직전에 있는 유기견들을 구해와 치료하고 새 가족을 찾아 입양 보내는 ‘팅커벨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죠.”  

 

팅커벨을 이끌고 있는 황동열(55) 대표는 동물보호 활동과는 거리가 있음직한 1980년대 운동권 출신이다. 세종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그는 학생운동으로 투옥된 경력도 갖고 있다. 대학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다 헬스 트레이너로 변신했고 ‘뚱아저씨의 BMW 다이어트’란 책을 펴낼 만큼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하지만 2012년, 한 달 새 아버지는 병환으로 어머니는 불의의 사고로,돌아가시자 깊은 상심에 빠져 한동안 폭음에 빠져 살았다고 한다. 황 대표가 동물보호운동에 뛰어든 데는 서울 이태원에서 열린 유기견 거리 입양 캠페인에서 유기견을 입양한 것이 계기가 됐다. 

 

“부모님을 모두 여윈 후 많이 힘들었어요. 한 번은 강아지를 입양해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위안을 받고 싶었던 거죠. 그러다가 ‘이왕 입양할 바엔 한 생명 살린다는 마음으로 유기견을 입양하자’는 생각에 유기견 두 마리를 입양했어요.”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했죠. ‘죽음의 위기에 있는 다른 생명을 살리는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유기견 문제에 대한 관심은 유기견 보호단체 후원활동에 이어 유기견 구조 활동 참가로 이어졌고 2013년 5월 팅커벨프로젝트의 문을 열면서 황 대표는 본격적인 동물구조 활동에 뛰어들었다.  

 

“팅커벨 프로젝트는 ‘구조→건강검진→입양센터 또는 가정임시보호를 통한 돌봄→입양→입양사후관리’ 등 5단계를 하나의 매뉴얼로 진행되요. 동물보호센터에서 안락사 직전에 있는 동물들을 입양해서 동물병원에서 건강검진을 진행해요. 입양인 심사도 꼼꼼히 하죠. 입양 후에는 입양된 반려동물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정기적으로 확인해요. 입양 시 입양자인에게 10만 원을 받는데 이는 책임감을 갖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죠.”  

 

“2013년 팅커벨 설립 이후 지금까지 모두 650마리의 유기동물을 구했어요. 620마리는 반려견이고 30마리는 반려묘에요. 이중 600마리는 새 가족을 찾아 입양 보냈고, 50마리는 현재 저희들이 돌보고 있죠.”  

 

팅커벨이 국내 동물권 단체들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가장 큰 이유는 투명한 재정운영과 민주적 의사결정체계 때문이다. “운영에 필요한 동물병원비, 입양센터 운영비, 사료비 등은 전부 회원들 회비와 후원금으로 사용해요.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회원들과의 소통과 재정의 투명성이죠.” 

 

“팅커벨은 진행 중인 모든 일들은 수시로 회원들에게 보고하는 소통 체계를 갖추고 있어요. 재정의 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해 수입과 지출은 모두 인터넷 뱅킹을 통해서만 이뤄지죠. 세목들은 인터넷 뱅킹 원장을 캡처해 매일 회원들에게 보고 해요. 그러다보니 회원들은 신뢰를 갖게 되고, 안심하고 후원을 하게 됐죠.”

 

 

팅커벨에는 황 대표를 포함 4명으로 구성된 이사회, 15명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가 있다. 운영위원회는 또 구조입양위원회, 재정위원회, 교육홍보위원회로 나눠 각자 맡은 역할을 수행한다. 전체 총회는 매년 2월 20일~28일 9일 동안 매월 1만 원 이상 회비를 내는 정회원 약 800명이 참가한 가운데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총회는 전년도 사업과 회계를 보고 받고 새해의 사업과 예산을 승인한다. 

 

팅커벨의 상근직원들은 일반직장인 수준의 월급을 받는다. 4대 보험도 가입돼 있다. 지속적인 활동을 위해선 생활이 안정돼야 한다는 것이 팅커벨의 판단이다. 

 

“팅거벨을 설립할 때부터 세 가지 원칙을 뒀어요. 첫째는 재정의 투명성, 둘째는 ‘안락사 직전의 유기동물을 구해서 새로운 가족에게 입양 보낸다’는 초심을 잃지 않는 것, 셋째는 활동과정에서 어떠한 불협화음도 내지 않는다는 거였죠. 지난 7년 동안 최선을 다해 지켜왔다고 생각해요.”

 

“제 꿈은 10년쯤 후 동물복지병원과 아이들이 견학 올 수 있을 정도의 아름다운 유기동물 보호소를 설립하는 거죠. 어린아이들과 학생들의 견학을 안내하는 할아버지로 늙어가고 싶어요.”

 

박주희(47) 팅커벨 총괄팀장은 해외 생활 중 기르던 반려묘 두 마리를 떠나보낸 후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 가족처럼 사랑하는 반려동물이 죽은 뒤에 경험하는 상실감과 우울 증상)을 앓았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결국 그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직장생활 중 유기견 봉사를 하면서 팅커벨을 알게 됐고 본격적인 동물구조 활동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지난해 2월 팅커벨에 합류했다.

 

“당시 유기견 봉사활동은 직장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일종의 힐링이었어요.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었죠. 마침 팅커벨에서 간사 모집 공고가 났기에 마음을 굳히고 지원했죠.”  

 

“경제적인 부분은 직장생활 할 때가 더 풍족하죠. 하지만 경제적 이익을 따지면서 일을 한다면 제 삶이 핍박해 질 것 같더군요. 남들은 워라밸을 위해 노력하지만 저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고 있으니 금상첨화죠.”  

 

어릴 적 여군을 꿈꿨던 박 팀장은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보람있다고 밝혔다. “입양하신 분들 중에 입양일기를 저희 홈페이지 올려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아무리 케어를 잘 해도 잘 안 나오는 아이들의 행복한 표정을 볼 때가 가장 뿌듯하죠.”  

 

“저희가 안락사 직전의 아이들을 데려오는 이유는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의 잣대로 생명의 경중을 따지면 안 된다는 철직 때문이죠. 질병을 앓고 있는 아이라도 수의사가 ‘이제는 보내줘야 한다’고 판단하기 전까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가엾은 유기동물의 생명을 구하고, 또 새로운 행복한 삶을 찾아주는 일은 제 인생을 걸어도 좋을 만큼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일이에요. 반려동물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공기 같은 존재죠. 제 힘이 닿는 데까지 이 일을 계속 할 생각이에요.”

 

팅커벨의 막내 강아란(27) 간사는 팅커벨을 ‘작지만 강한’ 단체라고 소개한다. 팅커벨 활동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다. “우리나라의 많은 대형 동물보호 단체들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지만 저는 팅커벨의 발전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해요. 팅커벨은 아이들을 구조해서 입양 보내는 일에 집중하기 때문에 다른 단체들에 비해 유기동물을 더 많이 케어하고 있는 셈이죠.” 

 

“제가 동물들과 함께 있는 것 자체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지금의 일이 너무 행복하지만, 무엇보다 팅커벨만이 갖고 있는 투명한 재정 관리와 운영시스템은 저에게 이 일에 대한 자부심을 더 안겨주죠. 회원들 간의 신뢰가 강한 편이어서 의사소통도 훨씬 원활하죠.”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강 간사는 졸업 후 동물병원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을 만큼 동물복지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다. “어릴 때부터 동물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어요. 학창시절에는 수의사가 꿈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동물보호나 동물복지에 더 많은 관심이 생겼죠.”

 

“위기에 빠진 동물들을 구하고, 또 아이들을 행복한 삶으로 안내하는 일들을 늘 꿈꿔왔어요. 생명의 가치를 존중 하는데 그치는 않고 직접 행동에 나서고 싶었죠. 지금 하고 있는 동물보호 활동은 ‘저 자신과의 약속’ 이상의 의미가 있어요. 앞으로도 동물보호와 동물복지 활동과 관련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싶어요.”

 

[김진강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