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추구하는 연기는 ‘샘물 같은 것’이에요. 고여 있는 정형화된 연기가 아니라 차별화를 두고 끊임없이 변화된 모습을 보이는 것이죠. 배우의 연기가 하나의 스타일로 고정화돼 있으면 오래가지 못하거든요. 또 보는 이들도 식상하고 질리게 마련이죠. 그래서 전 비슷한 배역이라도 상황이나 시대에 맞춰 변화를 주고 있어요.”

 

“이 때문에 사람들이 저를 ‘신 스틸러’라고 부르곤 해요. 신 스틸러라는 것이 솔직히 극 중 큰 배역이 아닌 작은 배역을 말하거든요. 이 작은 배역도 얼마만큼의 준비를 하느냐에 따라 보는 이들에겐 기억에 남는 역할이 될 수도 있어요. 또 제가 준비한 노력의 시간이 잘 표현이 돼 관객들에게 ‘잘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느끼는 희열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이죠.”

 

 

이설구 씨(53)는 지난 2008년 영화 ‘놈놈놈’으로 비교적 늦은 나이인 40대에 영화계에 데뷔했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데뷔하다보니 애로점도 많았다. 40대에 자신의 프로필을 돌리고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오디션 기회도 많이 주어지지 않다보니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중학교 시절엔 홍콩영화가 정말 인기가 많았어요. 이때부터 무술에 관심이 생겼죠. 그래서 정말로 많은 준비를 했어요. 왕호 감독님이라고 액션 배우로 맹활약하신 분이 계시거든요. 이분의 제자로 들어가서 운동을 했죠. 그런데 1990년대 갑자기 홍콩영화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무술가의 꿈을 접게 됐죠. 좌절감과 절망으로 30대를 보낸 것 같아요. 그러다가 문득 무술을 하면서 즐길 수 있는 직업이 무엇인지 찾게 됐죠. 그게 바로 연기였어요.”

 

 

이 씨는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배우라는 직업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장점인 ‘무술’을 내세워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 덕분에 건달, 사채업자 등의 배역으로 인지도를 쌓아갈 수 있었다. 드라마, 영화에서 인정받기 시작하자 지속적으로 여러 가지 배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출연하는 작품이 많아졌고 단 시간에 인정받는 배우로 성장할 수 있었다.

 

“보통 깡패, 사채업자와 같은 악역 연기는 무게 잡고 목소리도 중저음으로 이야기하곤 해요. 하지만 전 이게 보는 사람들이 식상하다고 생각할 거 같았어요. 그래서 소시민처럼 투덜투덜 이야기하는 대사와 몸짓으로 강함이 묻어나는 연기를 추구했어요. 예를 들어 영화 ‘조커’를 보면 목소리를 쭉 빼고 액션이나 눈빛에 힘을 줘서 보는 이들의 긴장감을 더하는 그런 연기를 추구한 셈이죠.”

 

“이게 정말 쉬운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저는 배역이 주어지면 이 인물에 빠져들려고 노력해요. 배우마다 대본을 보는 방법이 다른데 저는 주로 산 속에 들어가 감정을 만들곤 하죠. 산속에 들어가 이 인물이 됐다고 생각하고 맘껏 소리쳐보기도 하고 혼자 대사를 읊조리면서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는 토대를 만들죠. 그러면서 초창기 제 연기보다 더 자연스럽고 좋은 연기가 나오고 스태프들과 감독님들에게 박수를 받곤 했죠.”

 

“2010년 개봉한 ‘악마를 보았다’에서의 연기가 빛을 발했던 거 같아요. 그 당시 상대 배우가 최민식 선배님이었거든요. 제가 맡은 역할은 택시 강도였는데 대사를 보며 생각했죠. 무거운 대사톤 보다 하이톤으로 대사를 하면 더욱더 극의 긴장감을 주지 않을까 하고요. 그래서 실제로 제 생각대로 연기하니 감독님이나 주변 스태프들이 ‘너무나 좋았다’고 칭찬을 해주더라고요. 이때 느꼈어요. 제가 준비했던 지난 시간이 헛된 것이 아니라고요.”

 

이 씨는 이 같은 생각으로 점차 자신의 연기를 발전시켜 나갔다.그는 지난해 11월 독립영화인 ‘범털’을 찍었다. 이 영화의 감독은 조성열 피터팬픽쳐스 대표다. 영화 범털은 올해 4월 전주국제영화제가 끝난 후 5월이나 6월 중 개봉할 예정이다. 영화 범털의 주요 내용은 교도소 안에서 진정한 상남자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씨는 지금까지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무거운 연기가 아닌 상황에 맞는 연기로 현장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었다. 그 덕분에 주변 동료 배우들은 물론 현장 스태프, 감독님까지 ‘일’이 아닌 ‘편한 친구’같이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작품을 찍게 돼 좋은 영화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확실히 배우라는 직업은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는 거 같아요. 영화 같은 경우는 그래도 촬영까지 시간이 있어 준비할 시간이 있거든요. 그런데 드라마는 정말로 시간이 없어요. 거의 하루에 15시간 동안 쉬지 않고 촬영한 경우도 있었죠. 밤늦게까지 촬영을 하고 다음날 6시까지 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일이다보니 힘들지 않았죠.”

 

“그래도 배우다 보니 조금 탐나는 배역이 있긴 해요. 제가 총을 쏘는 것을 참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전쟁물 같은 영화를 찍길 바라고 있죠. 그런데 마침 영화 ‘인랑’에서 이 배역을 맡게 됐지 뭐에요. 제가 가진 장점들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무술을 가미할 수 있어서 행복했던 시간이었어요.”

 

“최근 저의 액션과 연기를 보고 몽골 쪽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몽골에서도 배우 활동을 하고 있죠. 정말 우리나라뿐 아니라 타국에서도 이렇게 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저에게는 큰 감동으로 다가왔어요. 그뿐 아니라 제 연기를 보고 몽골 현지 팬들도 절 알아보고 응원해주시는 게 좋더라고요.”

 

인터뷰 내내 그는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진실된 행복감을 이야기 했다. 이제 50대에 접어든 그는 앞으로 연기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많은 양의 작품에 나서기보다 한 두 개의 작품을 하더라도 내가 잘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지영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