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막고 귀 틀어막은 지도자들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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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옥 논설실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0-02-28 00:02:58

중국 우한에서 발원한 폐렴이 세계를 점령하고 있다. 26일(현지시간) 미 CNN은 지구상에서 남극 대륙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 이 질병을 일으키는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됐다고 보도했다.

바이러스의 확산 속도는 지난해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약 6개월 동안 오스트레일리아 남동부 지역을 휩쓸었던 화재가 강풍에 의해 번져나가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재해가 번져나가는 속도가 이를 진화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인간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빈틈을 노리면서 자기복제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전 세계가 이처럼 하나의 공동 이슈에 깊은 관심과 우려를 가졌던 적이 있던가 싶다. 여태까지 인류가 알지 못했던 신종(novel)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공공의 적을 앞에 둔 인류가 역설적으로 하나 되어 합심하고 협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지도자들이었다.

시 주석이 이끄는 중국 정부는 우한에서 전에 없던 폐렴이 유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입을 막아 현실을 은폐·왜곡했다. 당국은 처음 우한 폐렴을 알린 의사에게 거짓진술서를 강요해 은폐했다. 또 이런 중국 정부를 비난하는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실종되면서 중국에서는 관영언론 이외의 스피커를 찾기 어렵다. 오로지 하나의 목소리만 남기고 다른 입들은 봉쇄했다. 중국에서의 확진자와 사망자 통계가 오락가락 하는 것도 당국이 유·불리에 따라 잣대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초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바이러스가 세계에 확산되도록 한 책임을 중국은 면할 수 없다.

시진핑이 진실을 밝히는 입을 막았다면 문재인 정부는 진실을 전하는 말에 귀를 닫았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우한코로나, 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해서 1월 26일부터 한 달 동안 무려 7차례나 ‘중국발 입국자들의 입국 금지 조치’를 내리도록 정부에 강력히 권고했다. 하지만 정부는 전문가들의 이 같은 호소에 무슨 이유에선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중국발 전면 입국 금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전문가들은 의협뿐이 아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학적 관점에서 의협보다 더 권위 있는 전문가들이 모여 있다”고 말한 대한감염학회에서도 지난 2일 “입국자 제한 지역을 중국 후베이성 이외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장관은 이에 대해 26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감염학회가 ‘중국 전역 입국 금지’를 건의하지 않았다는 거짓말까지 했다.

현재 국내의 우한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질병관리본부에서도 ‘중국 전역 입국 제한’을 요청했으나 정부는 귀를 막았다. 국내 최고의 방역 전문가들이 감염병 확산 위기를 목전에 둔 다급한 상황에서 ‘방역이 최선’이라고 외쳤으나 이들의 의견 역시 의협이나 대한감염학회의 조언과 마찬가지로 묵살 당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중국에 전화를 걸어 시 주석에게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라고 말하면서 전문가들의 호소에 귀를 꽉 틀어막고 있었던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중국과 이란을 겨냥해 두 나라가 정보 공개에 있어 투명성이 결여됐다고 말하면서 이들 정부가 반대의 목소리를 틀어막음으로써 우환코로나 확산에 일조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대한민국의 경우 정부가 반대의 목소리에 귀를 틀어막음으로써 역시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덧붙일 수 있겠다.

전염병이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전염병을 다룬 소설들도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눈먼 자들의 도시’도 그 중 하나다. 이 작품은 포르투갈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주제 사라마구가 쓴 장편 소설로 시력을 잃는 전염병이 창궐한 사회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악의 본성을 그린 것이다.

우한코로나가 세계적으로 창궐하면서 어떤 이유에선지 사실을 전하는 입을 막거나 사실을 외면하려 귀를 틀어막는 지도자를 가진 도시에서는 다른 어느 곳보다 감염이 빠르게 확산되어 가고 있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은 눈먼 것이나 다름없다. 세계인의 보건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세계보건기구(WHO)의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 역시 이번 전염병 창궐에 책임이 있는 눈이 먼 지도자이다. 그는 우한코로나 사태가 발발한 이후 끊임없이 중국의 대응이 옳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더욱이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포하면서도 중국에 대한 여행 및 무역 제한 조치는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

CNN은 이와 관련해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과 중국 사이의 관계를 의심의 눈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보도했다. WHO의 막강한 재정 후원자인 중국에 대해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이 충분히 독립적으로 일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박선옥 논설실장 sobah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