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아니라는 외교부 장관의 속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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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옥 논설실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0-03-06 00:02:46

2일부터 사흘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코로나·코로나19) 발생 이후 첫 국회 대정부 질문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답변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전 세계에서 한국인 입국 제한·금지 조치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가 90개국을 초과한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이미지가 실추됐다는 우려에 대해 강 장관은 한국이 ‘왕따’ 당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국내에서 우한코로나 상황이 좋아지면 한국인을 제한했던 나라들이 조치를 풀 것이라고 답했다. 게다가 한국을 막은 여러 외교장관들이 자국의 ‘방역체계가 너무 허술’해서 이런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하더라는 취지로 답변했다.

답변을 했으되 듣는 사람에게는 와 닿지 않는 말들이어서 강 장관의 답변에 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우선, 국회에서 지적하는 국가 이미지 실추는 사실상 입국 금지나 제한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조치를 내리게 된 이유, 즉 우한코로나 확진자·사망자 수의 급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강 장관은 이런 조치를 내린 국가들이 한국을 왕따 시키려 제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 상황이 나아지면 관계가 회복될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한국 국민에 대한 우호 등엔 지장이 없는 것이고, 하루속히 정상화돼 제한조치를 풀 수 있길 바란다는 한결같은 상대국 측의 얘기가 있었다”는 강 장관의 말에는 마치 입국제한조치 여부가 ‘친소(親疎)’ 관계를 나타내는 듯한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지금과 같은 전염병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특정 국가의 국민을 대상으로 입국 금지나 제한을 두는 것은 상대국과의 우호에 지장이 생겨서 내리는 조치가 아니다. 자국민 보호라는 가치관을 우선적 기준으로 판단할 일이기 때문에 외교적 우호 문제는 개입되지 않거나 혹은 후순위로 밀리는 것이다.

강 장관의 발언으로 미루어볼 때 그토록 많은 전문가들이 여러 차례 중국인 전면 입국금지를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들의 간절한 요청을 묵살한 이유가 중국이 한국과의 우호에 지장이 있는 것으로 오해할 것이 두려웠던 것일까 하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국 국민에 대한 우호에는 지장이 없다”는 초점을 벗어난 해명을 할 리가 있겠는가.

두 번째로 생각해 볼 것은 “하루속히 정상화돼 제한조치를 풀 수 있길 바란다는 한결같은 상대국 측의 얘기가 있었다”는 강 장관의 설명에 관해서다. 상대국들이 한국 국민의 입국을 막은 것이 ‘우호’나 ‘친소’ 관계 등 주관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수치와 자료를 바탕으로 결정한 것일 터이니 한국의 우한코로나 상황이 좋아지면 한국인 입국을 막지 않을 것임은 삼척동자도 알 만한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강 장관은 이것을 마치 외교적 성과라도 되는 듯이 말하는 것처럼 비춰졌다. 더욱이 이 내용은 한국이 국제적 ‘왕따’가 아니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명제를 합리화하는데 사용됐다. 한 마디로 하나마나한 공허한 이야기를 그럴 듯한 단어들의 나열로 엮어놓은 것이다.

또 한 가지, 강 장관은 답변 중 외교적인 결례에 해당하는 표현으로 여론의 비판을 사기도 했다. “여러 (국가의) 외교 장관 얘기가 스스로 방역체계가 너무 허술하기 때문에 그것을 이렇게 투박하게 막을 수밖에 없다”는 발언이다. 이는 한국민 입국을 막은 국가들의 방역체계가 ‘허술’하다는 것, 그리고 이들 국가의 한국인 입국 금지·제한 조치가 엄밀하지 못하고 ‘투박’하다고 표현함으로써 상대국들의 의료시스템과 외교적 처신을 폄하한 것으로 외교적 결례로 지적됐다. 결국 한국인 입국 금지·제한 문제를 놓고 상대국을 탓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공허한 내용을 그럴듯한 단어들로 포장한 장관은 강 장관뿐이 아니었다. 추미애 법무장관 역시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우한코로나 사태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 조치, 즉 중국발 전면 입국금지를 하지 않은 결정이 “과학적‧객관적”이었다는 대외적 평가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 역시 잠복기에 있거나 무증상자 입국은 막을 수 없다는 현실적 증거들을 외면한 말로서 내용 없는 빈 말로 상황을 호도하려는 태도로 읽힌다.

우리 국민에게 당면한 문제는 국제적 우호나 ‘왕따’ 문제 이전에 이런 현상을 야기한 국내의 우한코로나 상황이다. 이를 지적하는 국회의원의 질문에 두 장관은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은 쳐다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고 답한 꼴이다. 못 알아들은 것인지 못 알아듣는 척 했던지 둘 중 하나다. 못 알아들었으면 바보일테고 못 알아듣는 척 했다면 국민을 바보로 여기는 태도다.

박선옥 논설실장 sobah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