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시간에 위로를 주는 동반자,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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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옥 논설실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0-03-27 00:02:17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우한코로나·코로나19) 실시간 세계 현황판의 26일 오전 9시 40분 자료에 의하면 202개 국가 중 확진자 수 기준 우리나라는 9137명으로 세계 10번째이고 그 다음이 6412명의 확진자가 나온 네덜란드다. 하지만 사망자 수는 우리나라가 131명인데 비해 네덜란드는 356명으로 거의 3배에 달한다. 네덜란드의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는 이야기다.

기자가 네덜란드의 순위를 관심 있게 본 것은 이달 20일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 때문이었다. 유럽 최대의 무역항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기반을 둔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우한코로나로 인해 연주 일정이 취소되자 유튜브를 이용해 연주 퍼포먼스를 선보인 영상이다.

로테르담 필하모닉 단원들은 각자의 집에서 악기를 들고 카메라 앞에 앉아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을 연주했다. 그리고 각 연주자들의 영상을 모아 편집해서 유튜브에 올렸다. 처음에 더블베이스가 낮은 소리로 연주를 시작하면 그 위에 첼로와 비올라가 소리를 얹고 어느 덧 바순, 오보에, 바이올린이 합류하더니 플릇, 트럼본 등이 가세해 웅장한 소리를 키워나가다가 드디어 가장 아름다운 악기라는 인간의 목소리가 합창으로 폭포처럼 힘차게 쏟아진다.

로테르담 필하모닉은 이 연주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면서 ‘우리로부터, 당신을 위해(From us, for you)’라는 제목을 붙였다. 우한코로나로 인해 지치고 힘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라는 의미일 터이다. 모두가 물리적으로 거리를 둬야 하는 요즈음 연주회 일정이 모두 취소되는 상황에서 할 일을 잃은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허탈하겠지만 평소 즐기던 문화를 향유할 기회를 빼앗긴 관객들도 마음의 위로가 필요한 시점이다.

기자가 이 동영상을 몇몇 지인들에게 보내자 집안에서 꼼짝 못하고 지냈다는 한 친구는 그만 이 연주를 보고는 마음이 울컥했다고 답장을 보내왔다. 다른 사람들 반응도 비슷했다. 평소 베토벤에 큰 관심이 없었던 이들이 이 동영상에 마음이 움직인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아마도 각자 다른 장소에 있는 연주자들이 같은 음악을 연주하면서 마음을 합치는 모습에서 음악적 감동이 배가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각기 다른 장소에서 많은 연주자들이 동영상을 만들고 이를 편집해서 하나의 거대한 연주회로 만드는 퍼포먼스는 10여년 전 미국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에릭 휘태커(Eric Whitacre)가 이미 시도했던 방식이다.

휘태커는 한 소녀가 보내준 소프라노 영상에서 영감을 받아 전 세계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아서 영상 합창단을 만들겠다는 기획을 했다. 그가 모집 공고를 내자 12개국에서 185명의 가수들이 지원했다. 가상 합장단원들은 휘태커의 지휘 영상을 보면서 각자 음역대에 맞게 소프라노·알토·베이스·테너 파트를 맡아 노래를 불러 녹화했다. 어떤 이는 기숙사 방에서 혼자 노래를 불렀고 어떤 이는 자기 집 거실에서 노래를 불렀다. 휘태커는 이들 영상을 편집해 유튜브에 올렸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어 가상합창단 2.0이 만들어졌고 여기에는 세계 58개국에서 2052명의 가수가 참여했다.

휘태커는 세계 지식인의 향연으로 일컬어지는 ‘테드(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 2013’ 콘퍼런스에서 이 과정을 소개하고 스카이프를 통해 거대한 스크린 위에 실시간으로 연결된 전 세계의 가상 합창단원들과 실제 무대에 오른 합창단의 합작 공연을 성공적으로 선보여 청중들의 기립 박수갈채를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2002년 연희동 가정집에서 출발해 작은 음악회 붐을 일으켜 온 클래식 음악 기획 ‘더하우스콘서트’가 2013년과 2014년에 ‘원데이 페스티벌’을 개최한 데 이어 2015년부터 2018년까지는 ‘원먼스 페스티벌’을 진행해 왔다. 매년 7월 한 달간 열렸던 원먼스 페스티벌의 특징은 세계 각처에서 음악 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문화적 퍼포먼스를 페이스북을 통해 생중계한다는 것이다.

이는 더하우스콘서트가 클래식 연주회장의 고정관념을 넘어 지역과 장르의 경계마저 초월하려는 시도였다. 세계 각 도시에서 수 백개의 공연이나 전시, 혹은 퍼포먼스가 열렸고 세계 예술가들이 펼치는 공연이 SNS를 통해 생중계되면서 세계의 청중이 같은 시간 속에서 공연을 함께 감상했다.

우한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로 세계에는 장소의 이동이 자유롭지 않게 된 국가나 지역이 속출하고 있다. 이로 인해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늘어간다. 장소에 구속된 인류에게 시간이 여전히 존재함은 새삼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금의 모든 시련도 시간을 따라 언젠가는 다 지나갈 것이다.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다. 힘든 시간을 흘려보내야 하는 인류에게 이 시간들을 채워주는 음악이 있어 그나마 위로가 된다.

박선옥 논설실장 sobah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