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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라는 쓰나미가 큰 소용돌이 속에 마무리되었다. 결과는 충격적이다. 국민이 선택한 결과라고 한다면 겸허하게 수용하는 길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드러난 것만큼이나 후유증도 크겠지만 이를 두고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기에는 지금 우리 앞에 닥치고 있는 현실들이 너무 중차대하고 벅차다.
선거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고 또 다른 출발이자 승자에게 이 난국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라고 국민이 부여한 준엄한 명령이다. 반대편에 섰던 야권이나 국민도 협력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그리고 여권도 비위에는 거슬리긴 하겠지만 따가운 목소리를 수용하려는 진지한 자세가 필요하다. 승리에 도취한 나머지 기록적 압승으로 생겨난 막강한 힘을 만용과 아집으로 일관한다면 더 큰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 이미 한계에 와 있는 묵은 패러다임을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진영과 관계없이 모두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국면의 대전환이 요구된다. 힘을 가진 자가 먼저 협력의 손을 내밀고 화해를 만들어 가는 것이 승리자의 진정한 도리이기도 하다.
이번 선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국민은 우리 정치가 삼류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였다. 승자와 패자는 확연히 구분되지만, 초록이 동색이라는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이분법적으로 이긴 자와 진 자만 있을 뿐이다. 정치가 삼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명확하게 분간이 되지도 않는 무늬만 보수와 진보라는 가면을 쓰고 공회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국가의 이익을 지키고, 미래를 위해 국가를 어떻게 변모시켜 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뚜렷한 철학이나 비전을 국민에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세계는 엄청난 속도로 변하고 있고, 이번 코로나 사태는 또 다른 변화를 재촉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 이기주의, 각자도생, 세계화에 대한 재평가, 글로벌 공급·가치사슬의 재편, 4차 산업혁명과 경쟁력 강화 등을 놓고 국가 전략을 다시 짜고 있다. 소위 말하는 ‘뉴노멀(New Normal)’이다. 여기서 성공하는 국가와 실패하는 국가가 대조적으로 나타난다. 정치와 정부가 바뀌지 않으면 이 경쟁에서 낙오자가 되기에 십상이다.
왜 보수는 더 초라하고 별 볼 일 없는 존재로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가? 이번을 포함해서 네 번이나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듯하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리더십과 관련한 간판 브랜드가 없고, 뉴노멀을 채우는 가치 기준과 콘텐츠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이런 것이 있어야 제대로 된 인재들이 모이고, 점진적으로 유권자의 신뢰를 점진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잘 보이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진보 진영을 보면 그들은 확실한 팬덤을 확보하고 있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콘텐츠를 맞춤형으로 제공하고 있다. 중도층을 잡겠다고 진보 측의 논리를 자꾸 따라가다 보니 차별화된 경쟁적 콘텐츠를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시늉만 내고 짝퉁 메뉴만 내놓으니 궁극적으로 간택을 받지 못하는 것인 지극히 당연하다. 아직도 과거의 달콤한 향수 혹은 추억에 사로잡힌 황당한 집단으로 내팽개쳐져 있다. 산토끼 단속은커녕 집토끼도 놓치기 일쑤다. 왼쪽으로 옮겨가기보다 완벽한 오른쪽의 가치를 만들어내야 중도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왼쪽으로 자꾸 옮겨가는 것보다 매력적인 오른쪽의 완벽한 가치와 비전 제시가 급선무
상대를 비난하고 탓만 할 것이 아니라 대안(代案)을 제시해야 한다. 보수에서는 입만 열면 현 정부의 실정으로 반(反)시장·기업을 힐난한다.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 탈(脫)원전 등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포스트 코로나’ 대응 문제도 마찬가지다. 수박 겉핥기 임기응변식으로 처방전을 내놓다 보니 대중이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평소에 이런 정책 개발을 하고 대안을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어설픈 브레인들이 모여 말초적인 여론의 동향만 살피고, 상대의 약점을 파고드는 데만 급급하다 보니 갈수록 매력적이지 못한 정당이라는 구렁텅이로 빠져든다. 젊은 세대들의 눈높이에서 보면 변화를 거부하고 시대 정신이 결여된 꼰대 집단이라는 오명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보면 맞든 틀리든 간에 끊임없이 뭔가 시도를 하고 있는 진보 진영과 비교하면 너무 안일하고 속수무책이다. 이 정도 되었으면 거의 바닥까지 갔다.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여권의 포퓰리즘도 도마 위에 자주 오른다. 일반 국민은 정부의 선심성 정책에 쉽게 빠져든다. 돈을 퍼주고, 허드레 일자리도 제공한다는데 싫어할 리가 만무하다. 현실적으로 엄청난 절벽들이 우리 앞에 겹겹이 대기하고 있다. 수출 절벽, 인구 절벽, 출산 절벽, 기업 도산 절벽, 지방 붕괴 절벽, 북한 핵 절벽, 농촌 절벽 등 수도 없이 많다. 대부분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것들이고, 이미 한계에 도달하고 있는 것들도 있다. 경제가 중요하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들의 내부에 전문가 그룹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무리한 경제 입법이나 갖은 규제를 남발한다. 20대에는 경제통 의원들이 30명 정도 되었지만 21대 당선자는 10여 명에 불과할 정도다. 글로벌 경제 위기의 먹구름이 잔뜩 몰려오고 있고, 내부에선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다고 아우성치지만 제대로 된 진단이나 처방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하물며 글로벌 경험을 가진 전문가를 찾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보수에게 요구되는 또 하나의 가치는 품격이다. 그 품격은 재물이나 연고로 인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기를 낮추고, 세대를 어우를 수 있는 인격을 갖추는 것이다. 진보를 두고 강남 좌파라고 부르거나 지나친 가식과 위선을 두고 거침없이 혀를 내두른다. 과연 보수가 그들을 비난할 위치에 있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한풀 벗겨보면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보수가 거듭나려면 우선 자기 처신에 완벽한 무리로 모여져야 한다. 도덕적 청렴성이 보수의 최고 덕목이 되어야 하며, 그다음이 전문성이다.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고 돈 들지 않는 정치에 솔선수범해야 한다.
보수 인사로 배지를 단 인사들부터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서민의 아픔을 이해하고 이들과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대중교통도 타야 하고, 불필요한 보좌관 등 의정 비용을 줄여 나가는데 앞장서는 자세가 필요하다. 뼈를 깎는 자성과 노력이 동반되지 않으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자신들의 처신이나 행동 양식이 전혀 바꾸지 않고 대중의 지지로 먹고사는 정치를 하겠다면 지금 그만두는 편이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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