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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린도 후서 5 : 17>
시끌벅적했던 4·15 총선이 끝난 지 2주가 지났다. 많은 사람들은 언제 난장판 선거가 있었느냐는 듯 떠들썩했던 정치판의 일을 벌써 다 잊어버리고 일상의 삶 속에서 오늘을 살기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이다.
신(神)은 만물의 영장이라 자처하는 인간에게 망각(忘却)이라는 귀한 선물을 주었다. 그래서 일까, 인간의 기억은 참 짧기만 하다. 그래서 역사와 유행은 수레바퀴처럼 늘 반복되는 것 같다. 다소 진정국면에 들어선 코로나 사태는 그야말로 데자뷰의 연속이 아닐 수 없다. 언젠가 본 듯한 광경, 들어본 듯한 말, 똑같이 지적되는 문제들, 불과 5년 전 38명의 사망자를 내며 우리 사회를 반 년 넘게 정지시켰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사태 당시의 혼선이 재연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메르스 사태 직후 다시는 외래전염병 감염 확산 사태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많은 다짐과 대책들이 우수죽순 쏟아져 나왔다. 제도적 장치는 물론 검역인력과 역학조사관을 증원하겠다고 약속도 했다. 국회는 메르스 특별위원회를 가동, 활동보고서까지 만들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이밖에도 공공의료를 확대하고 감염전문병원 설립과 감염병 관리 인력을 양성하며 항바이러스 연구에 대한 투자를 늘리겠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에도 질병관리본부 전문성 및 독립성 보장과 권역별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 등이 들어있다.
그로부터 5년, 이번엔 중국 발 인수공통 감염병이 유입됐다. 이참에 드러난 우리 현실을 보니 그 당시 충만했던 의욕과 공약은 모두 다 어디론가 증발했는지 찾을 수가 없다. 중앙사고수습본부는 국내에서 코로나 첫 확진자가 발생한지 일주일이 지나서야 가동됐다. 그사이 우한에서 6000여명이 거침없이 입국, 서울 거리를 활보하며 관광을 했다. 항간에선 ‘정부는 어디 있느냐’는 아우성과 초동대응 실패에 대한 질책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들여다본 문재인 정권의 방역실태는 기가 막혔다.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었던 역학조사관은 증원이 되지 않았고 예산도 삭감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감염병 전문 병원은 첫 삽을 떴다는 기사조차 없다.
문재인 정권은 임기 절반을 정적(政敵) 제거에만 혼신의 심혈을 기우려 왔을 뿐이다. 준비되지 않은 정부는 우왕좌왕했다. 코로나 발생과 관련한 시점에서 국가는 무엇이며 또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묻고 싶다.
문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이며 정부의 기본 책무”라고 했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그럴싸한 말잔치뿐이다. 바뀌고 변하는 게 없다.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그제 이천 물류센터 화재는 12년 전과 변한 게 아무것도 없다. 용접 시 튀긴 불꽃이 유증기와 뒤엉켜 폭발적 화재를 불렀고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진 건물 전체로 불길이 치솟았다.
지난 십수년 동안 세월호를 비롯한 수차례의 대형 참사를 겪으면서도 같은 일이 재발하고 있다는 데서 통탄을 금할 수가 없다.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가. 국민의 안위를 책임지고 국민 각자의 행복추구를 위한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국가가 아닌가. 이미 코로나 사태에서 지켜보았듯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데 있어 국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번 화재로 인해 문재인 정권은 가까스로 쌓아올린 국격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특히 과거 정권의 실책을 탓하며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겠다던 현 정부에서 과거 정권과 판박이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이번 참사의 정황을 들여다보면 영락없는 인재다.
앞서 시공사는 당국에 제출한 유해·위험방지 계획서 심사에서 위험 수준이 제일 높은 1등급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여섯 차례 심사 확인 중 세 번이나 화재 위험(발생)주의를 받고 조건부 적정으로 공사를 진행했던 것이다.
유해·위험방지계획서는 2008년 이천 냉동 창고 화재 등의 후속 대책으로 도입됐다. 이번에 대형 참사를 빚은 물류창고는 지난 1월과 3월에 화재위험 조심으로 지적을 받은 바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당국 또한 화재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위험을 방치해 이런 참사가 일어난 것은 명백한 인재(人災)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사건의 전말을 철저히 조사해 시공자는 물론 관리감독자가 어떤 규정을 어겼고, 어떤 점이 소홀했나를 밝히고, 사법처리를 해야 할 것이다.
왜 이런 참사가 거듭 반복되는 것일까. 하나는 공무원들의 안전 확인이 형식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사고 시 받는 처벌이 안전을 챙기는 비용보다 덜 들어간다는 것이다. 경비만 생각했지 인명은 전혀 생각지도 않는 처사이다.
실제로 12년 전 이천 냉동 창고 화재로 기소된 피고인 7명 중 실형을 받은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단지 회사 대표만 벌금 2000만원을, 시공관계자들은 집행유예로 종결된 것으로 알고 있다.
문재인 정권 들어서 제천의 스포츠센터의 화재로 29명, 밀양 세종병원 화재로 47명, 이천물류화재로 38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이들 모두가 다 자신이 흘린 땀의 무게만큼 열심히 살았던 우리의 소중한 이웃들이 아닌가. 화마(火魔)가 삼켜버린 이들의 한 서린 눈물은 세월호의 그것만큼이나 뜨겁고 비통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4월 대선을 앞두고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3주기 추모 행사 때 “안전 때문에 눈물짓는 국민이 단 한 사람도 없게 만들겠다” 고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과연 국민과의 그 약속이 얼마나 지켜졌는가 묻고 싶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약속 외에는 지킨 것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기억된다.
설상가상 이 와중에 강원도 고성에서 지난해에 이어 또 산불이 발생, 강풍을 타고 급속히 확산됐고 당국은 고성 일대 주민들과 군인들을 안전지대로 긴급히 대비를 시켰고, 다행히 곧 진화됐다.
연이어 터지는 화마도 그렇지만 우리를 더욱 더 불안하게 하는 것은 이번 4·15 총선에서 압승을 한 여권의 행태다. 4·15 총선에서 압승한 직후 몸을 한껏 낮췄던 더불어민주당에서 이해찬 대표의 함구령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단임제를 중임제로 바꾸고 책임 총리제를 적용하는 개헌론이 물씬 풍겨 나오고 있다.
이어 이용선 당선자가 토지공개념 도입을 주장하며 개헌론을 강조했다. 중임제, 토지공개념 도입은 이미 지난 2018년 청와대 개헌안에 담겨졌던 내용이다. 그 당시 야당의 거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달라졌다. 범여권 190석(민주당 163석, 더불어시민당 17석, 정의당 6석, 열린민주당 3석, 친여무소속 1석)에 추가로 10석만 확보하면 개헌 의결정족수(200석)가 된다. 사법부, 행정부에 이어 입법부, 그리고 언론까지 장악한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거대한 권력을 움켜쥐게 된다. 마음만 먹으면 못할게 없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여권이 압승을 거두면서 각종비리 혐의로 기소된 친정부 인사들이 종전과는 달리 큰 소리를 내고 있다.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출신인 최강욱 당선자는 국회의원에 당선되자마자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도록 갚아주겠다”며 윤석열 검찰총장을 겨냥 겁박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시민들의 심판은 이미 이뤄졌다”는 최 당선자의 주장처럼 이들이 총선 승리가 사법적 면죄부를 받은 것으로 착각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사법적 심사의 대상을 정치적 아전인수식으로 해석 하는 법조인 출신 예비 국회의원의 모습에서 벌써부터 21대 국회를 걱정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범법행위를 수사하는 검찰을 쿠데타 세력, 반개혁세력으로 규정하고 검찰개혁의 논리를 이끌어 낸다는 것이다. 더욱이 정제되지 않은 거친 언어와 비아냥거리는 태도는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높아지고 있는 국민들의 자긍심에 오점을 남기게 될 수도 있다.
벌써부터 법조계에서 이상한 기류가 흐르고 있는 것이 감지되고 있다. 사법부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재판을 해야 한다. 자칫 지체된 정의 실현은 국가의 법 체제에 큰 흠집을 내고 삼권분립이 무너졌다는 의심을 초래할 수도 있다. 서슬 퍼런 칼자루를 쥐고 있는 문 정권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배가 부르면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이 세상은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권력도 없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돌고 돌아간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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