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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끝난 지 한 달이 되어 가지만 아직도 그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보수는 참패의 벼랑 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압승을 거둔 여권은 애써 표정 관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부정 선거에 대한 시시비비까지 생겨나면서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돈 풀기가 성행하면서 희비가 엇갈리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한다. 지구상의 어느 국가의 국민이 공짜로 돈을 준다는데 싫어할 리가 있겠는가. 선진국 국민일수록 이에 대해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럴 때일수록 정치 지도자들은 묘한 유혹에 이끌린다. 실추된 자신의 지도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간주한다. 반면에 잘못된 판단과 실기(失期)로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서 오히려 위기로 바꾸기도 한다. 실제로 글로벌하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들이다.
하지만 세상의 이치는 잘 나갈 때 더 신중해야 한다는 점을 깨우쳐주고 있다. 지금 한국 사회가 딱 이 모양새다. 집권 세력이 힘을 가지게 되면서 개헌을 빼고는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지지한 쪽은 강한 기대감을, 반대쪽은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반드시 대가가 뒤따른다. 지금 치르고 있는 이 홍역은 우리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전 세계가 공통으로 겪고 있는 산고이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코로나 원인을 두고 치열한 공방이 전개될 것이다. 벌써 미-중 무역전쟁의 재발과 사태가 더 엄중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온다. 경제 전쟁으로 치달을 것이 분명하고, 경우에 따라 편 가르기가 과거보다 심각하게 벌어질 수도 있다는 예측까지 분분하다.
연말 코로나의 재확산 예상 시나리오까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추측들이 난무한다. 최상과 최악의 상황이 교차한다. 위기가 엄습할 때는 모두가 피해를 보지만 회복하는 과정에서는 명암이 달라질 수 있다. 2008년 미국발(發), 2010년 유럽발(發) 위기 당시 대다수의 선진국과 신흥국들이 엄청난 피해를 보았지만, 중국은 이때 국력을 더 키웠다. 글로벌 경제의 소방수 역할을 자임하면서 2010년에 일본을 제치고 G2로 등극했다. 세계가 중국을 쳐다보게 하고, 미국에 정면 대응할 정도로 힘을 키웠다. 중국은 위기 틈새에서 다시 발톱을 내밀고 있다.
벌써 국내에서는 성공적인 방역에 대한 자축으로 들떠 있는 듯하다. 정부의 자화자찬에다 경제에서도 글로벌 경쟁에서 우리가 승자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무르익고 있다. 방역 과정에서 국가의 역할과 기능이 중요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선거로 국민의 신임이라는 보너스까지 챙겼으니 더 강한 정부가 되려고 판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이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상대 진영은 지리멸렬 그 자체다. 정부의 늘공(늘 공무원)들도 이에 반기를 들기는커녕 백기를 들고 영혼 없는 신세가 되고 있다. 세금은 더 거두고, 세출은 늘려나갈 것이다. 돈을 풀면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착각이 이들의 뇌리를 지배한다. 돈을 풀더라도 우선순위와 순환 효과를 고려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원칙과 방향이 제대로 잡혀 있는지 심히 의심이 간다. 초기에 실탄을 마구잡이로 남용하면 정작 필요한 시기에 곳간이 빌 수 있다는 고려를 하고 있지 않은 듯하다. 타이밍도 중요하지만, 정부 간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플래닝과 디테일 역시 여전히 부족하다고 감지된다.
돈을 푸는 것보다 감세(減稅)가 더 효율적, 정부 주도보다 민간의 활력이 살아나야 한다
자연스럽게 ‘큰 정부’에 대한 우려가 대두된다. 국가 만능주의와 무소불위가 싹틀 조짐마저 보인다. 이는 위기를 수습하기보다 오히려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볼멘 목소리가 여거지기서 들린다. 여기에 포퓰리즘까지 더해지면 위험을 더 키울 수 있다. 정부의 빚더미는 다소 여유(GDP 대비 40%)가 있다고 하지만 가계와 기업의 부채를 합친 총부채 비율은 이미 위험 수위에 도달하고 있는 지경이다.
작년에만 290조가 늘어났으며, 부채 늘어나는 속도가 세계 4위에 달할 정도로 경고등이 켜지고 있는 상태다. 선거가 끝났다고 하지만 또 다른 선거가 대기하고 있고, 진영을 사수하기 위한 대중영합적 정치 행위들은 더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크다. 브레이크 풀린 고장 난 자동차가 굴러가다 보면 대형 사고로 연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무늬만 포용으로 포장을 한 채 양극화는 더 심화하고, 미래 세대에 대한 부담은 눈덩이처럼 늘어난다. 이른바 지적되고 있는 ‘포용 코스프레’다. 비대한 정부는 효율적이기보다 비효율적으로 되기 쉽다. 당연히 전횡을 휘두르다 보면 규제는 늘어나고 경제 회복에도 엇박자가 날 수 있다.
정부가 중소·중견기업과 자영업자의 애로를 해소한다고 40조원의 돈이 풀렸다고 하지만 현장에서의 한숨 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정부 지원에 대한 불만족이 50%에나 달하고, 만족한다는 측은 고작 10%에 불과하다. 일부 기간산업과 소상공인에 지원이 쏠리다 보니 이번에도 ‘돈맥 경화’가 여지없이 노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경제의 젖줄과 같은 수출 제조업 혹은 부품·소재 기업이 뒷전에 밀려나 있다.
당장 자금이 필요한 기업들이 많지만, 공급이 절대 부족하다. 대출 조건이 까다롭다 보면 결국 그들이 갈 곳은 사채 시장뿐이다. 다시 고독한 사투를 하는 방법밖에 도리가 없다. 정부가 3차 추경 예산을 편성한다고 하지만 이들에겐 빛 좋은 개살구가 될 것이 확실하다. 그래서 정부가 공급할 수 있는 실탄은 최대한 비축해야 하고, 적재적소와 적기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돈을 푸는 것으로 곤경에 처한 기업을 충분히 지원할 수 없다면 일시적으로 세금 감면을 시켜주는 것이 더 현명하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를 선호한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이번 포스트 코로나 전쟁에서도 승자와 패자가 가려지려면 적어도 2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된다. 팬데믹이 종료된다고 하더라도 빨라야 가을 시점이다. 최소한 이번 겨울만큼은 지구촌 전체가 불안하게 보내게 될 확률 또한 크다. 경제가 회복되는 시기도 국가나 지역에 따라 상이하다고 본다면 글로벌 경제가 완전히 정상화되는 것은 내년으로 넘어간다.
정상화된다고 하더라도 잃어버린 손해를 만회해야 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우리 같이 수출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해외 시장의 내수가 살아나고, 글로벌 공급망이 원래 상태로 복귀되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까지 따라붙는다. 또 하나 불안한 조짐은 지금의 위기의 클라이맥스인지 아니면 진짜 위기가 장래에 닥칠 것인지도 변수이자 불안 요소이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들을 정부가 독점하는 것이 아닌 민간에게 활력을 불어넣는 쪽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큰 정부나 포퓰리즘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않으면 한국호(號)가 더 큰 위기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경고를 새겨듣는 겸손함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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