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목지신’으로 보는 금융 지배구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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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 중국 통일 기초 닦은 상앙의 변법... 신뢰 세웠지만 스스로 발목 잡아
핀테크 완화하면서 거꾸로 가는 금융 규제 강화...정부, 신뢰 위해 약속 지켜야

한원석 기자페이지 + 입력 2020-06-18 00:02:31

진시황이 중국 통일을 이룬 데 기초를 세운 사람으로 상앙이라는 인물이 꼽힌다. 원래 다른 나라 출신이었던 상앙은 전국시대 진나라왕 효공이 천하의 인재를 초빙하는 포고문을 발표한 것을 보고 진나라로 건너갔다. 효공은 진시황의 5대조다.

이후 세 번의 만남으로 효공의 마음을 사로잡은 상앙은 왕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대대적인 개혁정책을 추진한다. 후대에 ‘변법(變法)’이라고 불리는 상앙의 개혁정치는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강력한 법에 의한 통치를 확립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상앙은 법의 엄정함을 보여주기 위한 이벤트를 기획했다. 상앙의 일대기를 다룬 ‘사기 상군열전’에 따르면, 상앙은 진나라 수도 남문에 나무를 심어 놓고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는 자에게 금 10근의 포상을 내리겠다’는 포고문을 내걸었다. 사람들이 믿지 않자 포상금을 금 50근으로 올렸다. 이에 나무를 옮긴 사람이 나오자 포상금을 지급했더니 비로소 백성들이 상앙이 공표한 법을 믿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나온 말이 ‘나무 옮기기 약속을 지켜서 신뢰를 얻는다’는 뜻의 ‘이목지신(移木之信)’으로, 어떤 제도나 정책을 시행할 때 신뢰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 금융당국의 행보를 두고 금융권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지배구조법)’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는데 ‘이중잣대’라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개정안을 살펴보면 특정 대주주(최다출자자) 1인으로 한정했던 심사 범위를 최다출자자는 물론 최다출자자와 연계된 특수관계인 주주까지 확장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정부는 핀테크 기업에 대해 대주주 적격성 요건을 낮추는 등 규제를 풀고 있다. 하지만 거꾸로 대형 금융사들에 대해서는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일관성이 없다”며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대해 당시 규제개혁위원회조차도 규제의 범위가 과도하게 넓고 규제에 따른 영향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았다며 금융위원회에 철회를 권고한 바 있다.

금융당국이 스스로 세운 원칙을 깬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번 개정안에는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의 이른바 ‘셀프 연임’을 금지하는 내용도 담겼다. 하지만 금융사들은 이미 자체적으로 현직 CEO는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서 빠지도록 내규를 개정해 셀프 연임을 봉쇄한 상태다. 또 사업보고서에서 급여와 상여금 등의 산정 방법과 액수를 상세히 공시하고 있는데도 당국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보수 공시 의무를 강화하는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금융 규제를 혁신해 자율적 경영을 보장하겠다”던 정부가 금융사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에도 ‘이목지신’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금융당국의 움직임을 두고 일각에서는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관치금융을 연상시킨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다시 상앙의 얘기로 돌아간다. 상앙은 태자가 변법을 어기자 태자의 스승이자 왕족의 코를 베는 처벌을 했다. 이에 앙심을 품은 태자는 왕위에 오르자 반란혐의를 받는 상앙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체포령이 떨어진 것을 안 상앙은 황급히 짐을 꾸려 야반도주했다. 국경에 도착했지만 닭이 울어야 문을 열 수 있다는 법 때문에 문은 열리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여관을 찾은 상앙은 신분확인 없이 손님을 받으면 처벌하는 법 때문에 여관에 묵을 수도 없었다. 공교롭게도 자신이 만든 법으로 인해 위험한 지경에 빠진 것이다. 여기서 유래된 말이 ‘자기가 만든 법으로 자기 목숨이 위험하다’는 뜻의 ‘작법자폐(作法自斃)’다. 우리가 흔히 쓰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이나 ‘자승자박(自繩自縛)’과 같은 의미이다.

이러한 일화를 보면 지금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개정안이 언젠가 스스로를 묶는 족쇄가 될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의 법집행은 엄격해야 한다. 이에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법집행은 원칙을 바탕으로 신뢰를 얻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금융당국이 스스로 한 말에 대한 신뢰를 지키고 자기 스스로를 묶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지 않을까.

한원석 wshan@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