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수 앞둔 권력자여, 행한 대로 갚으리라”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기자수첩

스카이데일리 기자수첩

오주한 정치전문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0-08-11 00:02:15

근래 정치권에서의 화두는 단연 ‘레임덕(Lame Duck)’이다. 레임덕은 통상 대통령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발생하는 권력누수 현상을 뜻하는 정치·경제 용어로 임기말증후군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아직 약 2년이나 남았음에도 벌써부터 레임덕이 정계 관계자들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이다.

계기는 7일 있었던 청와대 참모들의 집단사표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 말대로 대통령이 교체하는 방식이 아닌 참모들이 단체로 사의를 표명한 건 지극히 이례적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대통령과 운명을 같이 해야 할 참모진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할 정도로 이들에 대한 대통령의 장악력이 약화됐음을 의미한다. 문 대통령에 대해 임기말증후군 진단이 내려진 까닭이다.

고래(古來)로 눈치 빠른 권신들은 임금의 파국을 예감하고 난파선과 같은 조정에서 탈출하곤 했다. 그리고 이들이 빠져나간 정권은 대부분 비참한 말로를 맞았다. 진시황의 측근이었던 조고가 대표적 간신이다. 승상 이사가 진나라의 치세를 상징했다면 환관 조고는 난세를 상징했다.

조고는 진시황이 사망하자 그의 장남 부소와 진나라 전국통일의 일등공신이었던 이사를 제거했다. 조고에 의해 2세 황제로 추대된 호해는 조고를 중용했으며 조고는 조정을 장악했다. 호해와 조고는 그야말로 수어지교(水魚之交)의 관계로 맺어져 끔찍한 폭정을 지속했지만 폭발한 농민들이 진승·오광을 필두로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며 봉기하자 조고는 호해의 수명이 다했음을 깨닫고 충성을 철회했다. 결국 진나라 정권은 유방·항우 등에 의해 3대만에 멸망했다.

조정에서 이탈한 권신들은 나아가 제 한 목숨 살기 위해 주인을 팔아넘기려 하기도 했다. 상술한 조고는 훗날 한나라를 건국한 유방과 접촉해 진나라 정권을 통째로 바치려 했다. 동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의 동생이었던 디미트리오스 팔레올로고스는 제국을 멸망시킨 적국 오스만제국을 끌어들여 모레아 전제군주국의 통치자로 인정받으려 했다. 그러나 이들의 말로는 결코 좋지 못했다. 조고는 자신이 배신하려 한 3세 황제 자영에 의해 살해당했으며, 디미트리오스는 토사구팽 당해 10년 간 연금됐다가 비참히 죽었다.

주인을 버린 권신과 이해당사자들 간의 이전투구(泥田鬪狗)가 보여준 역사의 교훈은 복잡하지 않다. ‘자업자득’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군주가 국민 눈높이에 맞는 선정·소통을 행한다면 민심은 안정되고 이반도 일어나지 않는다. 자연히 권신들도 제 살 길을 찾기 보다 임금에게 충성하게 된다. 모든 레임덕의 근본적 원인은 통치자 자신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는 국민 안위를 위하는 위정자의 통치행위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교훈은 전제군주제에서 대통령중심제로 바뀌었을지언정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도 유효하다.

[오주한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오주한 정치전문기자 jhoh@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