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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무엇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거리두기’가 한몫 하고 있다. 지난 2월부터 우리나라는 다수가 모이는 것을 염려하는 지경이 됐다. 몇 년 전만 해도 혼자 사는 일, 혼자 다니는 사람 앞에는 공공연히 ‘청승’ 운운하는 말이 따라 붙었다. 이제는 떼거리로 몰려다니는 사람들이 ‘공공의 적’으로 눈총 받곤 한다. 혼자서 식당에 들어가는 일, 혼자서 카페에 앉아 있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글쓰기의 필요조건인 ‘나홀로’ 분위기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것이 글쓰기 열풍의 첫 번째 조짐이다.
글쓰기 열풍의 두 번째 조짐은 돈보다는 삶의 의미를 찾는 ‘계층’이 두터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식인 층이 큰 흐름을 만들기도 하지만, 각자 삶에 대한 존중도가 높아가는 사회 분위기도 큰 몫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알게 모르게, 글만 잘 쓰는 것으로도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시절이 온 듯하다. 아직 소수이긴 하지만 ‘젊고 잘 나가는’ 웹툰 작가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7, 80년대 인기작가였던 최인호, 조선작, 김주영, 조세희, 김성동의 인기와 수입을 능가하는 글쟁이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확인하고 싶으면 아무 사이트나 열어서 ‘웹툰 작가’라고 치면 열린다.
세 번째 조짐은 지금도 당신의 손아귀에 있을지 모를 그 물건 덕분이다. 모바일 폰의 효용성이 글쓰기와의 상관 관계를 높여가고 있다. 유사 이래 인류의 욕망을 가장 화끈하게 맞춰준 도구 중 하나가 모바일 폰일 것이다. 그 물건은 당신의 유전자 중에서 흔적 남기는 본능을 충족시킨다. 물론, 내가 찍은 사진 한 장, 단어 하나도 어딘가에 기록될 수 있다는 점은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빅브라더를 떠오르게 한다. 이렇게 불쾌한 위험성을 감수하고서도 온갖 동굴 벽화를 그려왔던 후예답게 흔적 남기기 본능은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당신은 오늘도 모바일 폰으로 누구에겐가 짧은 글쓰기나 긴 글쓰기를 날렸을 것이다.
모바일 폰으로 ‘글쓰기명상’하기
나는 몇년 전부터, 모바일 폰을 활용하여 우리 한글을 각자의 성찰 작업에 활용해보고자 했다. 글쓰기 자체가 글쓴이의 의식을 스스로 재확인할 수 있는 ‘도구’라는 점에 주목했다. 당신의 글이 설사 딱딱하고 학술용어 가득한 논문이라 해도,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면서 쓰지 않으면 좋은 논문 만들기 어렵다는 점에 착안했다. 글쓰기가 내면의 지식이나 기억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 언어에 포섭된 수많은 마음 작용을 드러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라는 용어 속에 이미 명상적 요소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 숨은 의미를 노출시켰더니 자연스레 ‘글쓰기명상’이 되었다.
‘글쓰기명상’을 학술 용어로 등재한 이유는, 모든 문자(文字)는 자기 성찰성을 담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명상 용어 두 가지만 놓고 봐도 그렇다. 어떤 글에 당신이 ‘알아차림’이라는 용어를 쓴다면 그의 마음 속에는 아마 불교적 전통의 수행터에서 공부해왔던 기억이 많을 것이다. 당신이 만약 ‘마음챙김(mindfulness)’이라는 용어를 애용한다면? 아무래도 심리학 배경을 가진 곳에서 공부해왔던 기억이 드러난 셈이다. 거의 유사한 의미면서 다른 언어를 쓰는 이유는 이렇게 글쓴이의 의도나 지적인 배경이 달라서이다. 세포 하나마다 세포지성이라고 할만한 기억들이 있듯 나열되는 언어들에도 크고 작은 개인 지성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나는 왜 ‘글쓰기에서 굳이 명상의 의미를 끄집어내어 학술적 위치를 챙기려 했을까. 글이라는 사회적으로 일반화된 도구를 활용하는 것이 소위 정좌명상 보다 대중적인 접근도가 높아서이다. 평소 낫을 사용하던 농부와 장풍(掌風)을 사용해서 농사짓는 농부가 있다면 누가 더 대중적 도구를 사용한 셈인가. 언뜻 보면 손바닥만 들고 장풍을 일으키는 사람이 훨씬 손쉬울 것 같지만, 그는 수십년 동안 산속 움막에서 격렬하게 수행해 왔을 터이다. 낫을 든 농부 또한 그에 못지않은 농사 수행을 했겠지만, 낫들고 꼴 베는 일은 누구라도 쉽게 학습할 수 있다. 왜? 낫이 보편적인 도구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치다. 이미 우리는 한글이라는 ‘낫’을 여러모로 써보지 않았던가.
내 아들은 자다가도 몸을 뒤집어 카톡 글을 쓴다. 두 손 모아 기도하거나 다람쥐가 알밤 까먹는 자세로 글을 쓴다. 그 자세를 한두 시간 거뜬이 유지하는 걸 보면 놀라운 집중력이다. 이런 세상을 20년 전만해도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에 이렇게나 갈급하다니. 세상에 없을 행복한 표정으로 카톡 공방을 펼치는 저 아름다운 글쟁이들을 길거리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니.
몇 년 전만해도 직업 작가들이나 사용했던 모바일 노트 앱을 다운 받아서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종이 낙서장이 앱으로 이동한 것이다. 당신은 이 노트 앱을 펼쳐서 술 한잔 마시고 누군가에게 마구잡이로 들이댈 말을 낙서해댈 수 있다. 곧 있을 상사와의 면접에 대비하여 그때 할 인터뷰 내용을 미리 적어보기도 한다. 자신을 영수와 철수로 나누어서 시나리오 글쓰기로 내면의 양가 감정을 가감없이 드러내보기도 한다. 살아오는 동안 나를 기쁘게 해준 말을 ‘들은 그대로’ 적어봄으로써 빵빵하게 자가 충전할 수도 있다.
어제 나는 노트 앱에 이렇게 적었다. “4차 산업시대라고 한다. 온갖 영상매체와 미디어의 다양성, AI로 상징되는 삶의 편리성, 사람과의 대체 가능성 따위가 공공연히 이야기 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별로 놀라거나 걱정하는 것 같지 않다. 인류는 마치 문명이라는 물그릇 속에 앉아 서서히 익어가는 개구리 같은 존재가 된 건 아닐까.” 내일, 조용한 카페에 혼자 앉아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이어가볼 생각이다. 이 또한 내 개인의 사유와 성찰이 투입되는 일이다. 아마 내 옆자리에도 모바일 폰에 무슨 생각인가를 쏟아내는 글쟁이가 앉아 있겠지. ㅋㅋㅋ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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